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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 교차로에서 사설 축구클럽 통학차량과 일반 승합차 사이의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8세 2명이 숨지고, 어린이 및 행인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15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 교차로에서 사설 축구클럽 통학차량과 일반 승합차 사이의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8세 2명이 숨지고, 어린이 및 행인 6명이 부상을 입었다.
ⓒ 인천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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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어떤 아이가 죽거나 다칠지 모릅니다. 우리가 운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니에요. 언제 어디서라도 터질 수 있는 일입니다."

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 피해자 가족의 말이다. 지난 15일 오후 7시 58분께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 교차로에서 어린이를 태운 스타렉스 승합차와 카니발 승합차가 충돌해 차량 안에 타고 있던 어린이 2명(8세)이 세상을 떠났고 어린이 및 행인 6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축구클럽 승합차는 정차 신호를 위반한 채 시속 85km로 달리며 교차로에 진입했다가 사고를 냈다. 사고 발생 구역의 제한속도는 시속 30km. 게다가 차량 내 동승 보호자가 없어 안전벨트 착용 확인 등 안전지도·확인이 불가능했고, 그로 인해 사고 피해가 더 커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탑승한 어린이들의 안전벨트 착용 유무 경위는 도로교통공사 정밀조사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도 축구클럽 통합차량 운전자(24세)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치상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 30일 검찰에 송치됐다.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났다. 그 사이 피해자 가족들은 두 아이의 장례를 치렀고, 부상당한 아이들의 회복을 지켜보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사고 소식과 제도 개선 내용이 담긴 청원을 올리자 애도의 메시지 그리고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청원 일주일이 지난 31일 현재 11만3000여 명이 동참했다(청원 바로가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0402).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야 이 같은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지난 30일 송도국제도시에서 만난 피해자 가족(A군 엄마·아빠, B군 엄마, C군 아빠)들은 "이번 일은 학원의 학생관리 부실, 도로 신호체계 문제, 도로교통법의 사각지대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예견된 사고"라면서 "언제 어디서라도 터질 수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총체적 과실이 낳은 예견된 사고" 
 
지난 18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사설 축구클럽 승합차 사고현장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과자와 음료수 등이 쌓여 있는 모습. 하지만 30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추모공간은 사라졌다.
 지난 18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사설 축구클럽 승합차 사고현장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과자와 음료수 등이 쌓여 있는 모습. 하지만 30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추모공간은 사라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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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 엄마는 "처음에는 운전자의 과실, 교차로에서 시속 85km로 달려서 발생한 사고로만 알았다"라고 운을 뗐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사고 배경과 원인을 알면 알수록 운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C군 아빠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을 이어받았다.
 
"부조리가 아닌 게 없더라고요. 총체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사고가 난 교차로 주변의 교통신호 체계가 제각각이고, 과속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없어요. 축구클럽 통학차량 위치에서 봤을 때 40미터 남짓한 거리에 신호등만 7개가 있고, 연동형 신호도 아닙니다. 사고가 난 교차로 신호등의 신호와 앞뒤 교차로 신호등의 신호가 각각 다르기도 합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혼선이 생길 수 있어요.

게다가 신호위반 단속 카메라 장비도 없고, 과속 방지턱도 없습니다. 신호·도로 체계가 이렇다 보니 3개의 교차로마다 운전자의 속도 위반과 신호 위반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진 뒤 인근에 아파트 단지 주민이 저희들에게 '예전부터 신호가 이상해 개선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는데 바뀌지 않았다'라고 알려줬습니다. 민원이 제기됐을 때 신호·도로 체계가 개선됐다면 운전자의 신호위반 가능성이 낮아졌겠죠.

사고가 났던 차량의 관리도 엉망이었습니다. 폐차장에 가서 확인해보니 목받침대가 없는 좌석이 있는가 하면, 안전벨트가 빡빡해 빼내기 어려운 것도 있었어요. 코치들이 아이들을 잘 관리했는가? 그것도 아니었어요. 평소 데리러 오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통학차량 하차 장소 등이 불분명했어요.

사고 차량은 30대 이상 운전자에 적용되는 책임보험을 들어놓고선, 정작 운전자는 20대였습니다. 자격 없는 사람이 운전을 했으니 결국 무보험차량인 거죠. 게다가 과속했지, 신호위반했지... 이중 하나만 지켜졌어도 일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겁니다."


피해자 가족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아픈 기억을 소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B군 엄마는 "내 자식 죽었다고 구속된 운전자만 탓할 게 아니라,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구조적인 문제를 알리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세림이법'의 사각지대... "땜질식 대처는 안돼" 
 
도로교통법 중 어린이통학버스 운전자 및 운영자 등의 의무를 규정한 조항. 이번에 사고가 난 송도 축구클럽은 도로교통법이 규정하는 어린이통학버스 운행 해당 시설이 아니었다.
 도로교통법 중 어린이통학버스 운전자 및 운영자 등의 의무를 규정한 조항. 이번에 사고가 난 송도 축구클럽은 도로교통법이 규정하는 어린이통학버스 운행 해당 시설이 아니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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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가 난 뒤 여론은 '도로교통법(세림이법)의 사각지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해당 축구클럽이 도로교통법이 규정하는 어린이통학버스 운행 시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승 보호자가 탈 법적 의무가 없었던 것.

2013년 충북 청주에서 김세림(당시 3세)양이 통학차량에 치어 숨진 뒤로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어린이 통학차량의 경우 보호자가 동승하도록' 하는 세림이법이 생겼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유치원, 초등학교 및 특수학교, 어린이집, 학원, 체육시설은 어린이 통학에 이용되는 차량을 '어린이통학버스'로 신고하고 운영해야 한다. 체육시설의 경우, 태권도·수영 등 종목이 한정돼 있어 상당수 체육 관련 사설 스포츠클럽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고가 난 축구클럽은 서비스업으로 등록돼 있었다.

"근본적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방향으로 도로교통법이 개정돼야죠. 이번에 축구클럽에서 사고가 났으니 축구클럽만 체육시설에 넣어주는 땜질식 대처는 안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을 태우는 목적으로 운행되는 모든 차량이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안전의무의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 C군 아빠

피해자 가족은 사고가 난 뒤에야 자신의 아이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B군 엄마는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학원차량 유리에 '어린이 보호'라고 붙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차량은 법이 정해놓은 어린이통학버스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스티커만 붙여놨을 뿐이다. 그 때문에 이정미 정의당 의원(비례대표)은 '어린이를 운송하는 모든 차량에 세림이법을 적용하자'는 취지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발의 의사를 밝혔다.

'어린이통학버스'에는 법적 의무가 뒤따른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고, 운행시 반드시 동승 보호자가 차량에 타야 한다. 게다가 운전자는 정기적으로 안전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비용이 따르는 문제다. 피해자 가족들은 "아이들이 다니는 소위 학원들이 비용문제로 안전관리를 소홀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보조금을 줘서라도 학원들이 안전관리에 신경 쓸 수 있게 하고, 이를 어기면 문을 닫게 할 정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정부나 국회가 이런 식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법 개정만큼 심각하고 현실적인 문제 
 
아이들 즐거우라고 축구클럽에 보냈지만,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자료사진).
 아이들 즐거우라고 축구클럽에 보냈지만,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자료사진).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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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가족들은 도로교통법 개정만큼 중요한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발생한 송도 축구클럽 같은 '학원'들의 평상시 안전관리 미흡, 그리고 원장(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 피해자 가족들은 최근 한 제보를 받고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B군 엄마의 말이다.

"지난 4월, 이번 사고가 나기 불과 한 달 전이에요. 그 축구클럽 차량이 송도국제도시에서 일반 승용차와 접촉사고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사상자는 없었다고 해요. 그때도 축구클럽 운전자는 20대였고, 운전자 과실 100으로 종결됐더라고요. 그때 축구클럽 대표가 가입한 보험 종류를 손봤다거나, 운전하는 코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줬더라면..."
 
 
사고가 발생한 축구클럽의 대표는 지역 내에서 평가가 좋다고 했다. 대표는 인천광역시축구협회 임원이기도 하고, 최근엔 인천광역시체육회장(인천시장) 명의의 표창장도 받았다. 피해자 부모들은 "평판도 좋고 유능하신 분이 운영하는 곳이 이 정도라면 다른 업체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라고 보고 있다.

학원 혹은 체육시설로 등록돼 있지 않은 시설의 통학차량에 사고가 났을 때, 그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도 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현행법은 이런 사고가 나면 운전자 혼자 소위 독박을 쓰는 구조예요. 그 운전자를 고용한 사용자(원장·대표)에게는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요. 사용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원장들이 안전에 더 신경을 쓰고, 결과적으로 아이들도 더 안전해질 거라고 봅니다." - A군 아빠

학부모들은 사설 학원이나 체육시설의 '안전하다' '보험가입 완료' 등의 홍보문구를 믿고 아이들을 보내는데, 정작 사고가 나도 운영자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구조가 문제라는 말이다. 이 축구클럽도 홍보물에 "픽업 차량 보험가입 완료"라고 적어놨다.

"유난 떠는 부모로 비칠까 못 물어봤는데... 그러지 마세요" 
 
지난 30일 찾은 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 현장. 교차로에는 정의당 명의의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추모 현수막 뒤로 노란 승합차가 신호 대기 중이다.
 지난 30일 찾은 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 현장. 교차로에는 정의당 명의의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추모 현수막 뒤로 노란 승합차가 신호 대기 중이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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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가족들이 바라는 '문제의 해결'은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을까.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법안이 발의된다 하더라도 바로 시행되는 게 아니다. 국회 상임위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고, 본회의 안건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세림이법'은 2013년부터 그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2015년에서야 시행됐다. 

"사고가 난 뒤 뭐가 바뀌었나요. 바뀐 것 없어요. 신호·도로 체계가 문제라면 그 체계를 점검하고 바꿔야 하는데 그대로고요. 단속을 한다는데 단속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인천시가 전수조사를 한다는데, 그럼 다른 시는요? 인천 차량만 위험한 건가요?" - B군 엄마

"사실... 결국엔 모든 게 바뀌지 않을까봐 벌써부터 겁이 나요. 사고가 난 뒤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바꿔야 할 수많은 것들과 그것을 가로막는 수많은 벽이 있음을 느낍니다." - A군 아빠


오늘도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버스나 승합차를 타고 사교육의 세계에 간다. 지금이라도 아이의 안전을 위해 부모가,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피해자 가족들은 눈물 섞인 조언을 내놨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올 때마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많은 부모들이 노란차는 다 안전하다고 믿었을 겁니다. 혹시나 걱정이 돼도 학원에 물어보지 못했어요. '유난 떠는 부모'로 여겨질까봐, 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겁이 나서요. 우리는 지금까지 '요령껏' 생명을 유지해온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마세요. 믿지 마세요." - A군 엄마

아이들 더 즐거우라고 보낸 축구클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들의 가슴엔 대못이 박혔고, 가족의 일상은 뒤바뀌었다. B군의 형은 동생이 축구클럽에 갔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한단다. 그 말을 들은 B군 엄마의 억장은 무너져 내렸다.

언제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활동을 '안전하게' 오가며 할 수 있을까.

태그:#송도축구클럽, #송도신도시, #축구클럽, #어린이통학버스, #학원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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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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