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영화 포스터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영화 포스터 ⓒ 알토미디어

 
지난 3월 29일.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아녜스 바르다. 그의 삶은 예술로 가득했고, 작품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사진작가, 영화감독, 비주얼 아티스트로서 90해의 충만한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아녜스는 또 한 편의 멋진 영화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그의 유쾌한 유언이자 회고록인 동시에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강연으로 아녜스 바르다가 직접 자신의 작품들과 예술가로서의 여정에 대해 설명해주는 작품이다.

무대 위, 촬영장에서 흔히 쓰는 접이식 의자 뒤에 'AGNES V.'라는 이름이 쓰여 있고, 사람들로 가득 찬 객석은 웅성거린다. 곧이어 그가 등장하면 사람들의 시선과 호흡이 집중되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스크린 밖에서 이 강연에 동참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장편 극영화, 단편, 중편,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여러 설치미술 작품들(시간순서대로 설명이 진행이 되지는 않는다)이 등장하는데, 그 작품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의 설명은 단순한 동시에 섬세하고 다정하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만든 특별한 영화

'영감', '창작', '공유', 아녜스는 자신에게 중요한 키워드로 이 세 단어를 꼽았다. '왜 영화를 만드는가?'에서 시작한 고민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실질적인 작업으로 이어지고,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줌으로서 관객의 존재로 완성되는 과정 속에서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창작자는 많은 것을 고민해야한다. 단지 자신의 영감을 실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의 목적과 결과(그것이 상업적인 성공이든, 영화제 수상이라는 명예든)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자신이 가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열악한 여건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라 푸엥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를 만들 당시, 그는 영화를 공부한 적도,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 작업을 해 본적도 없었다. 예산은 충분하지 않았고, 두 명의 주연배우들을 제외하고는 현지 마을 사람들을 출연시켰다. 또한 이 작품은 그 어떤 영화보다 혁신적이고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다준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는 동시대 사람들이 겪고 있던 암에 대한 집단적인 공포를 한 여인의 2시간(정확히는 90분)을 따라가며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 또한 예산이 충분치 않았지만 그 한계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녜스의 카메라가 담아낸 시대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한 장면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한 장면 ⓒ 알토미디어

  
무대 위에서 한 마리의 새와 같이 너무도 가볍게 날아오르는 발레리나의 몸짓을 보고 있으면 나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것처럼, 떠오르는 영감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영화를 참 쉽게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오직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거장들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첫 영화에서부터 비주얼 아티스트 JR과 함께 완성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8)까지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공간이 있고, 그 곳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녜스 바르다의 카메라가 그들을 비춘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 속에선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감동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그의 카메라가 담아내는 사람들을 통해 관객은 시대 또한 보게 된다. 너무 쉽게 포착된 우연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왜, 찍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의 인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의 영화를 봄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그의 시력은 망가졌지만 세상을 보는 통찰력에는 변함이 없고, 창작을 향한 에너지는 시들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아녜스는 아티스트였다. 관객들과 실제로 마주한 자리에서 그는 그들(곧, 우리)과 함께 자신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영화의 의미, 더 나아가 예술의 의미를 되짚는다. 작품 속에 숨겨 둔 작은 비밀들도 알려준다. 유쾌한 수다 끝에 그는 이별을 고한다. 마지막 인사를 해주어서 고맙다는 답인사는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는 오는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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