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6명에게 부상 입히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피의자가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조현병 환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언론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범죄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진주시 사건뿐만 아니라 범죄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그게 사건의 본질인 양 보도되는 경우도 많았다. 2016년 5월 강남역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시다. 지난 21일 방영된 MBC < PD수첩 >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편에서는 진주 아파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문제를 파고 들었다.

조현병, 편견의 대상이 되다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 MBC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에서 거주 중이었던 피의자 안인득은 지속적으로 이웃과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올해만 7차례 112에 안인득의 이상행동을 신고했는데, 그 중 4건은 안씨의 윗집 주민이 신고했다고 한다.

안씨는 이미 그 전에도 범죄경력이 있었다. 9년 전인 2010년 20대 남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입힌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것. 당시 판결문에는 '피고인은 편집형 정신분열증을 앓아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라고 안씨의 증상을 진단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정부는 등록된 정신질환자를 전수조사 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많은 언론들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우려를 표했다. "안 그래도 불안해하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더욱 음지로 숨어들게 될 것이고 치료는 중단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취재진이 조현병 환자들을 만나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더니, 상황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했다.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 MBC

  
정신장애인 인권단체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는 "급성기 환자들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옆에서 보면 위험해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아파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급성기란 증상이 심각해지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때 조현병 환자들은 망상과 환청을 심하게 겪게 된다. 

적절한 시기에 처방을 받고 환자의 대처능력을 강화한다면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강력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나타나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그들을 숨게 한다는 것이다. 안인득 역시 그랬다. 그는 약물치료를 거부했고, 급성기가 왔을 때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그들을 더 아프게 한다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 PD수첩


정신질환자를 숨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입원치료도 있었다. 강제입원은 당사자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정하 대표는 8차례의 강제입원을 경험했는데, 폐쇄병동의 조건은 너무나도 열악했다고 말했다. 

"병원을 갔다 오면 나아야 하는데 자살 충동은 더 심해지고 심각한 우울증이 오는 등 증상이 더 악화되었다. 전문 상담자들도 환자들에게 입원 치료를 권하지만 과연 이것이 좋은 선택지인지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이정아 대표의 도움을 받았던 조현병 환자의 말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입원을 결정하는 것'과 강제로 입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일이다. 방송에 나온 이들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았지만, 병원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백 교수 역시 "한 명의 간호사가 옆에 붙어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말을 걸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역시 인력 부족이다.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MBC PD수첩 <나는 안인득이 아니다> 방송 갈무리. ⓒ MBC

  
강제입원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로 인해 환자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었고,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규제만 있고 준비와 지원은 없는 개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입원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갖추어야 할 서류와 절차도 늘어났다. 이후 정말로 입원해야 하는 환자들의 입원이 지연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예산 문제도 심각하다. 2019년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 72조 5148억 원 중에 정신건강서비스에 배정된 예산은 1713억 원으로 전체 보건 예산 중 1.5%다. OECD 국가들이 평균 5%를 정신건강 예산으로 쓰는 것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안인득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현재 진주시의 정신건강 인프라는 열악하다. 자살예방센터, 정신요양시설은 하나도 없고 정신건강 복지센터와 국공립 정신의료기관, 정신재활시설이 각각 하나씩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진주시의 관련 센터 직원 한 명 당 관리 대상자가 180명으로, 제대로 된 관리나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안인득은 관리 대상자로 등록되지도 못했다. 

진주 방화 살인사건 이후 조현병 환자들을 향한 악플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편견에 맞서는 것을 더 이상 조현병 당사자들과 그 가족에게 오롯이 맡겨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른 안인득 사건을 막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PD수첩 #조현병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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