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이후 침체에 빠졌던 MBC 일요 예능 <일밤>은 2013년 <아빠!어디가?>와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를 편성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물론 <아빠!어디가?>는 < 1박2일 >의 아기버전, <진짜 사나이>는 군대를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함과 군대라는 낯선 환경에서 보여주는 뜻밖의 상황들에 시청자들은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일밤> 1부는 <아빠!어디가?> 종영 후 <애니멀즈>라는 과도기를 거쳐 2015년 4월부터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을 론칭하면서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밤> 2부는 2016년 11월에 폐지된 <진짜 사나이> 이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코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실제로 <진짜 사나이> 이후 편성된 <은밀하게 위대하게> <세모방> <오지의 마법사> <두니아> <공복자들> 모두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MBC는 지난해 10월부터 차인표, 김용만, 권오중, 안정환 등을 내세운 <궁민남편>을 편성해 지난 12일까지 약 7개월간 방송했다. <궁민남편>은 지난 4월 7%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상승세를 잇지 못하고 폐지됐다. 그리고 <궁민남편>의 빈자리는 조금 새로운 느낌의 예능이 차지했다. 시골마을 할머니들과 걸그룹 멤버들의 조화가 기대되는 여성 중심 예능 <가시나들>이다.

여성 예능인들의 전성기에도 좀처럼 성공하기 힘들었던 여성 예능
 
 <영웅호걸>은 아이유라는 여고생 가수를 대스타로 만들었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종영됐다.

<영웅호걸>은 아이유라는 여고생 가수를 대스타로 만들었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종영됐다. ⓒ SBS 화면캡처

 
개그우먼 이영자는 지난해 연말 시상식에서 KBS와 MBC의 연예대상을 휩쓸며 데뷔 후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이영자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보고 극찬을 했던 간식이 이제 전국 분식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메뉴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그는 영향력이 큰 예능인이 됐다. 작년 연말 시상식에서 이영자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던 인물 역시 여성 예능인 박나래였다. 바야흐로 '여성 예능인의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예능인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큰 반응을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성 예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2004년 KBS <해피 선데이-여걸 파이브>는 이경실, 정선희, 현영, 강수정 등 여성 출연자들이 다양한 게임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걸 파이브>는 <여걸식스>로 멤버를 늘리면서 시즌2까지 이어져 왔는데 당시 <여걸 식스>로 연출 데뷔를 한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나영석PD다.

하지만 <여걸 파이브> 이후 여성 예능을 대표할 만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2007년 노골적으로 <무한도전>의 자매 프로그램을 표방한 MBC Every1의 <무한걸스>는 송은이, 김숙, 신봉선, 김신영, 안영미, 정시아, 황보 등 많은 여성 예능인이 출연해 시즌 3까지 방영되며 6년 간 다양한 재미를 선사했다. <무한걸스>는 2012년 6월 지상파 주말 시간으로 옮겨지는 파격 편성을 받았지만 '<무한도전>의 아류'라는 태생적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2009년과 2011년 두 시즌에 걸쳐 방송됐던 농어촌 버라이어티 <청춘불패>는 당시 범람하던 인기 걸그룹 멤버들이 대거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세월이 흐른 후에 보면 소녀시대의 유리와 써니, 효연, 카라의 구하라와 강지영, 브아걸의 나르샤, 포미닛의 현아, F(X)의 빅토리아, 시스타의 보라, 미스에이의 수지 등 출연진의 면면이 매우 화려했다. <청춘불패>는 대만과 일본에 수출되며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0년 SBS에서 방송된 <일요일이 좋다-영웅호걸>은 노사연부터 아이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연예인들이 출연해 직업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방송기간 동안 니콜이 팀 문제로 이탈하는 기간이 늘어났고 아이유의 인기는 너무 높아져, 결국 프로그램은 10개월 만에 폐지됐다. 2016년에 첫 방송된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여성 연예인들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시즌2 이후 시청률이 떨어지며 조용히 폐지됐다.

첫 방송에서 보여준 할머니와 출연자들의 의외의 조화
 
 신인 걸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이브는 이남순 할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신인 걸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이브는 이남순 할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 MBC 화면캡처

 
<가시나들>은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의 약자로 이미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룬 바 있는 전형적인 '시골 예능'의 향기를 강하게 풍긴다. 한글 선생님으로 출연하는 배우 문소리는 성균관대 교육학과 출신으로 선생님 캐릭터에 꽤나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실제 문소리의 예능 경험은 JTBC의 단편영화 제작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와 영화 감상 프로그램 <방구석1열> 정도다.

나머지 출연자들은 대부분 걸그룹 멤버들로 구성됐다. <가시나들>에는 시골마을 학생 역으로 위키미키의 최유정과 우주소녀의 수빈, (여자)아이들의 중국인 멤버 우기, 이달의소녀의 이브, 그리고 배우 장동윤이 출연한다. I.O.I 출신의 최유정이 그나마 예능 경험이 많은 편이지만 화려한 무대에 익숙한 걸그룹 멤버들이 또래 아이돌이 아닌 예능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 할머니들과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결국 <가시나들>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은 일반인 할머니 출연자들의 활약(?) 여부다. 제작진은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시점> 등에서 화제가 됐던 일반인들이나 <미운우리새끼>의 '母(모)벤져스'처럼 <가시나들> 할머니들의 푸근함과 엉뚱한 매력을 잘 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 출연자들이 연예인 출연자들과 좋은 호흡을 보인다면 <가시나들>도 새로운 개념의 여성 예능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가시나들>은 19일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사로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할머니들은 저마다 글을 배우는 사연들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문소리의 진행도 기대 이상이었다. 애교 많은 최유정과 수업 시간에 풀 죽어 있는 할머니에게 당당해지라는 이브, 할머니와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면서 함께 즐기는 우기, 채소 이름을 몰라 구박 당하는 수빈 등 짝꿍 역할의 학생들도 낯선 시골에서 기대 이상의 적응력을 선보였다.

'인생은 마스터했지만 한글이 어려운 할매들과 한글은 알지만 인생이 궁금한 짝꿍들의 이야기'를 다룰 착한 여성 예능 <가시나들>이 이제 첫 걸음을 뗐다. 아직 '3주 짜리 파일럿 프로그램'이란 딱지를 붙이고 있어 섣불리 <가시나들>의 정규편성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여성 예능과 시골 예능의 장점을 잘 섞는다면 <가시나들>은 일요일 저녁에 편하게 접근하기 좋은 '힐링예능'으로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일 첫 방송된 <가시나들>은 시골 할머니들과 화려한 걸그룹 멤버들이 의외의 조화를 선보였다.

19일 첫 방송된 <가시나들>은 시골 할머니들과 화려한 걸그룹 멤버들이 의외의 조화를 선보였다. ⓒ MBC

 
가시나들 일요예능 문소리 최유정 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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