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서울로 연극을 보러 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할까.

지난 9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러 강원대학교에서 서울 명동예술극장까지 직접 가 봤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7시 30분까지 도착해 연극을 보고 집에 안전하게 돌아오는 게 목표였다.

오후 3시 50분,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8200원짜리 ITX 청춘열차 대신 40분 늦게 도착하지만 2950원이면 충분한 전철을 타기로 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수업이 늦게 끝났고, 강원대학교에서 남춘천역으로 향하는데 보통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하지만 전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내버스는 돌아가기 때문에 빠르게 가는 택시를 탔다. 비용은 4000원. 
 
 지하철을 기다리는 남자.

ⓒ pexels

 
돈과 시간을 맞바꾸면서 전철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34개 역과 2번의 환승, 그리고 2시간 15분이라는 기다림이다. 그러나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퇴근길 지하철이다. 한 시간쯤 자는 동안 탑승객은 2배로 늘었다. 다행히 자리에 앉아 있지만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망우역에서 하차했다. 조금씩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이촌역에서 내려, 4호선으로 환승했고 명동역까지 가야 한다. 북적이는 사람들에 몸과 마음이 괴롭다. 오후 6시 26분 명동역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으러 혹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길거리가 붐볐다. 전철 요금으로는 총 2950원을 썼다.

근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극장에 도착해 표를 받아 좌석으로 향했다. 대학생 할인을 받아 티켓값 2만5000원을 냈다. 연극이 끝난 시간은 오후 10시40분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묵을 곳이 없는 나는 집에 가야만 했다. 선택지는 심야버스뿐이다.

오후 11시 14분 전철을 타고 강변역에 도착했다. 1350원이 교통카드에 찍혔다. 이어 25분 춘천행 심야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비는 8500원이었다.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밤 12시가 넘었고 버스도 끊겼다. 택시를 타야만 했다. 야간할증이 붙은 택시를 이용해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시였다. 택시비는 5000원이 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중인 명동예술극장 전경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중인 명동예술극장 전경 ⓒ 권채영

 
이날 내가 이동에 소비한 총 시간은 6시간 10분이었다. 비용은 총 4만 6800원이었다. 연극 티켓값과 교통비가 얼추 비슷했다. 비용은 둘째 치더라도 연극을 보기 위하여 6시간을 이동해야만 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 슬픈 현실이다. 만약 ITX청춘열차를 타고 이동했으면 5만 3300원을 쓰는 대신 5시간 30분 만에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긴 시간인 것은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서울에 살았다면, 얼마가 들었을까. 홍대입구역 기준 명동까지, 티켓값을 포함해 2만7500원 이동시간 25분이면 충분했다. 춘천에서 서울로 연극을 보러 가려면 서울 내에서 이동하는 것보다 평균적으로 1만9300원 정도를 더 써야 한다. 이동시간은 5시간 이상 더 늘어난다. 왜 우리는 30분 거리, 1시간 거리 내에서 양질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러한 현실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사실 춘천은 그나마 나은 상황인 편이다. 백령아트센터와 일송아트홀, 춘천문화예술관이 존재해 뮤지컬이나 콘서트 같은 단발성 공연이 종종 열린다. 미술관은 총 3개이며 영화관은 CGV 2개, 메가박스 1개, 몸짓 극장, 봄내 극장도 있다.

그러나 춘천, 원주, 강릉을 제외한 강원도 내 다른 지방은 작은 공연장조차 없는 곳이 많다. 또한 공연장이 있더라도 규모와 시설의 한계 때문에 대형공연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도 있다. 아예 공연이 없어서 실제로 1년에 한 달도 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 <노만파킨슨 전> 입구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 <노만파킨슨 전> 입구 ⓒ 권채영

 
춘천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백령아트센터는 2018년 기준 1년에 9일, 9번만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미술관 경우 세 개중 두 개만 운영 중이고 나머지 하나인 권진규미술관은 장기 휴관 중이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같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문화공간은 물론 전시 혹은 체험활동이 가능한 공간도 수도권과 비교하면 현저히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등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만 보더라도 이제 사람들은 질적으로 보다 행복한 삶을 바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식주 중심으로 삶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얼마나 풍부하게 살고 있는지 측정한다면 아직 우리 사회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충분하고 편리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문화평준화 지역발전 문화생활 문화시설 문화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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