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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것과 경험한 것, 배운 것, 느낀 것 사이에는 늘 이해할 수 없는 틈이 있었다. 아무도 그 차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여자인 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12쪽)
 
저자가 말한 그 '차이'를 철이 들어가면서 하나둘 발견하게 됐다. 읽은 것이 내 삶에 그대로 개입되지 않는 경우가 늘어갔다. 어른이 되면서 더 큰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뒤늦게 그 근원을 탐색했고, 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습득한 남성주의적 관점이 나도 모르게 내면화된 것임을 깨닫게 됐다.

남성 화자들의 삶이 여성 독자의 삶으로 진입할 때 어떤 괴리가 일어나는지 고민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이다혜 기자의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를 권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뭐길래
 

이 책을 쓴 이다혜 <씨네21> 기자는 어려서부터 책을 끔찍이 사랑했다고 한다. 흥미 있는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해 밤을 지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나 또한 이런 적이 종종 있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졸지언정 책을 놓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손바닥만 한 '삼중당' 문고판으로 소설을 뗀 소녀 시절이 내게도 있다.

그때는 몰랐다. 나를 잠 못 들게 한 그 많은 소설 속 주인공이 모두 남성이었다는 것을. 딱 하나, 여주인공이 나온 책이 있긴 했다. 여성이 이렇게 살다간 결국 불행해진다는 괴상한 암시를 주었던 <안나 카레니나>였는데, 이를 빼곤 거의 남성의, 남성에 의한 소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저자는 "바람둥이 남성을 사랑한 여자의 이야기로 읽기보다, 정치적 격동기에 동정심이 드는 여자를 사랑하는 바람에 더 좋은 삶을 포기한 남자의 이야기로 읽었다"라고 감상을 밝힌다. 나는 이 책에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 읽다 말았다. 훌륭한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을 중간에 포기한다는 건 성숙한 독자가 아님을 밝히는 것과 같은 일로 여겨졌기에, 읽은 척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는데, 교수들이 강의 때마다 등장시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곤 했다. 여성인 내게 전혀 존재하지 않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나의 콤플렉스로 내면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루었던 텍스트가 모두 남성 화자의 서사였고, 그 남성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개념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었다. 영문과에서 배우는 텍스트가 어째서 모두 남성 작가의 것이어야만 했는지, 그때는 따져볼지 몰랐다. 당시 교수들 또한 모두 남성이었다. 평소 근엄하던 한 교수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주제로 강의하던 모습이 또렷히 기억난다. 그는 남성으로서의 성장 서사를 설명하느라 흥분에 달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너무 괴로웠었는데 말이다.

교수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여성인 학생들에게 얼마나 강요된 내면세계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수업에서도, 시험에서도 나와 같은 여학생들은 남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상징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외워서 각인해야만 했다. 엄마를 욕망하느라 아버지를 적대하다가 그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제거하려 든다는 상상을 여성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교수들은 이런 식으로 남성의, 남성에 의한 책들을 '보편'의 삶으로 탈바꿈했다. '보편'이라 말하며, 여성에게 남성이 되어 그 세계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여성도 남성과 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걸까?
 
"백인 남성의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세상에 하지 못할 모험이 없고, 원하지 못할 대상이 없으며, 이루지 못할 꿈이 없다. 일단 다 해버린 다음에 근사한 말로 경험을 치장하고 나 자신을 혐오하며 반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19쪽)

'그낭 여자'는 안 되나요?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표지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표지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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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왜 그 많은 소설 중에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말고는 왜 작품 속에 없는 건데? 그냥 여자 어디 없어요?"라고 묻는다. 많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을 절절히 사랑하다 못해 그 사랑의 포로가 된다. 포로의 사랑이 어떤 결말일지는 뻔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소설에는 여성을 동동한 파트너로 바라보지 않고, 고작 마음 내키는 대로 다뤄도 되는 노예쯤으로 다루려는 남성의 시각들이 만연하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여성성을 대거 배치함으로써, 여성은 한심하고 미숙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버림받거나 남성에 의해서 겨우 구제받는 여성상은,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을 똑똑히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주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남성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도록 내면화한 여성들은 이야기를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조차도 여성의 시선이 아닌 남성의 시선으로 플롯을 좇게 되는데, 이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바라보고 있지?'를 깨우치는 것도 각성을 자극하는 훈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그토록 싫어했으면서도 그에 젖어버린 나도, 내 시선이 지독히 남성의 시각에 맞추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곤 했다.

나는 이제 어떤 텍스트를 보든 '지금 나는 온전한 나의 시각으로 읽고 있나'를 재우치곤 한다. 나의 '노오력'은 가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탈남성화된 렌즈를 장착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계속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노예의 시선으로는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없으니까.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크게 감명받았다는 지인이 있었다. 나는 그 책에 공명하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무엇이 그리 감명 깊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조르바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은 '초월성'에 반했다고 했다. 그 초월성을 부각시키느라 가벼이 다룬 여성성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녀는 조르바의 자유를 갈망하는 초월성이, 여성인 자신도 도달해야 하는 인간의 어떤 덕목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가 삶의 비루함에도 굴하지 않는 조르바의 인간 됨을 찬양하고 있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전전하는 곳마다 여성을 자신의 해방구에 놓여진 도구쯤으로 전락시키는 그의 모험심(?)을 나는 상찬할 수 없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감명 받은 그 지인은 타자화된 자신의 초월성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을까?

여성에게는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한 여학교에서 고3을 앞둔 여성들에게 한 강연 일화를 소개하면서,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 <아가씨>, 2016년 작 <고스트 버스터즈> 등을 언급한다. 이러한 작품에 담긴 여성성들이 선택의 순간에 놓인 여성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녋혀줄 수 있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도전하며 쟁취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새로운 선택의 문을 열게 할 열쇠를 쥐여줄 거라는 뜻이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은 '내가 할 수 있을까'를 갈등하는 순간에 큰 차이를 낳습니다." (82쪽)

저자가 말하는 그 '차이'는 남성의 욕망에 나를 맞추는 타자화된 여성성을 밀어내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슬픈 패배적 여성성은 이제 지워내도 되지 않을까.

책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적 책 읽기'라는 부제의 목적을 적절히 성취한다. 비교적 성차별이 드러나지 않는 학교라는 공간의 여성들이, '차이'가 가시화되는 세계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겪을 혼란을 조곤조곤 알려 준다.

목 터지게 '페미니즘'을 외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남성의 시각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여성의 생각 회로가 텍스트를 통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소상히 알려주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위험이 도사린 부분을 동그라미 쳐준다. 종국엔 스스로 찾아 제거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먼저 겪은 언니가 사려 깊게 안내하고 있다. 충분히 귀 기울여볼 만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현암사(2017)


태그:#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페미니즘, #남성주의 문학,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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