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캡처.

<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캡처. ⓒ SBS


'장자연 사건' 재조사 기한이 한 달 남은 가운데 장자연이 죽기 5일 전 남긴 육성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2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고 장자연 문건 미스터리- 누가 그녀를 이용했나' 편에선 연예계와 재력가를 연결해 주는 성접대 고리가 있으며, 장자연씨가 이러한 구조에 희생됐다는 관점을 제기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제보받아 공개한 육성파일엔 소속사 대표 김아무개씨와 장씨 사이에서 계약 해지 분쟁이 일어난 가운데 또다른 제3의 인물로부터 장씨가 위협받는 정황이 드러났다.  

소속사 관계자 외 제 3의 인물

육성 파일에 따르면, 장씨가 '그 사람' 혹은 '그쪽'이라고 말하는 인물은 장씨를 불공정 전속계약으로 옮아매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소속사 김아무개 대표보다 훨씬 더 힘세고 넓은 인맥을 갖춘 인물로 묘사됐다.           

"네(장씨의 소속사 관계자)가 모르는 게 있어. 대표님이 지금 나한테 어떤 짓을 먼저 시작했어. 김 사장님은 이미 엄청난 말들과 엄청난 입을 가지고 장난을 치셨어 지금. 그 사람 굉장히 발이 넓고 힘센 사람이야. 김 사장도 가만히 소리 못 지르고 아 예, 이런 사람이란 말야. 그 OO한테 벌써 전화해서 난리를 쳤어. 내가 무슨 늙은이랑 만났다는 등, 어쨌다는 등 별의별 이야기를 다하면서.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나 죽여버리겠대."
 
 장자연이 죽기 전인 2009년 3월 2일에 녹음된 음성 파일. 소속사 관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장자연이 죽기 전인 2009년 3월 2일에 녹음된 음성 파일. 소속사 관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 SBS

  
진행자 김상중은 "김 대표도 꼼짝 못할 만큼 발이 넓고, 힘이 세다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라며 "그 사람은 왜 무명의 신인배우를 위협했던 걸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방송에 따르면, 장씨는 태국으로 가서 골프 접대를 하라는 김 대표의 요구를 드라마 촬영을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김 대표는 싸늘해졌다. 이러한 이유에선지 소속사 측에서 장씨가 타고 다니던 회사 차를 매각하는 등 계약 해지 의사를 먼저 알려왔다. 육성 파일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장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위약금 300만원과 700만원을 요구했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그때 장씨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일명 '장자연 문건'으로 알려진 문서 작성에 관여한 전 매니저 유아무개씨였다. 하지만 장씨는 유씨와도 갈등을 겪게 됐다. 이와 관련해 연예계 한 관계자는 자신이 들은 풍문을 제작진에게 귀띔했다.
 
 연예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가 제작진을 만나 진술하고 있다. 화면은 대역 재현이다.

연예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가 제작진을 만나 진술하고 있다. 화면은 대역 재현이다. ⓒ SBS

 
"장자연이란 배우가 있다(고 들었다). 술자리나 접대자리에 많이 나간 것 같고, 그걸 관계로 해서 일종의 사실확인서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죽기 직전이라고 보면 된다. 근데 그게 문제가 되니까 그걸 장씨가 달라고 했는데 유씨가 안 주고 있다. 그러면서 시끄럽다. 앞으로 더 시끄럽게 될 거 같다고 들었다. 배우 생활은 죽어도 할 수가 없고 본인이 그때 받았던 두려움, 공포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거다."

제작진은 이러한 풍문이 김 대표에게도 전달됐고, 이와 관련해 위와 같은 통화 내용이 남겨진 것으로 추측했다. 

앞서의 연예계 인사는 장씨를 위협했다는 인물에 대해 "그런 부분은 아마 제 생각엔 OOO 대표 얘기일 거 같다"면서 "당연히 그렇게 됐을 땐 김 대표하고 OOO하고 대화가 있었을 거 아닌가"라고 전했다.  
 
 장자연 사건을 수사한 경찰.

장자연 사건을 수사한 경찰. ⓒ SBS

 
장씨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도 "김 대표가 주로 다니던 바, 마담, 실장(이다). 그런 자리(술접대 및 성접대)가 이뤄지는 게 그걸 만드는 사람이 김 대표는 업무적으로 한두 번 했을 수는 있겠지만 매일 같이 이뤄지는 그 모든 건 다 그 마담들이 영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중은 "김 대표도 꼼짝 못한다는 의문의 인물은 연예계와 재력가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성접대 카르텔의 연결고리라고 한다"고 밝혔다. 

김상중은 또 "(장씨의) 죽음과 함께 증거를 찾을 수 없는 풍문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 그들은 장씨가 차마 문건에조차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며 "10년 전 미투가 없는 세상에서 장자연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깊은 침묵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장씨가 생전에 남긴 4장짜리 문건엔 전부 4명의 이름이 나온다. 소속사 대표 김씨와 제작사 대표, 잠자리를 강요했다는 방 사장, 술접대를 했다는 그 아들 등이다. 이날 방송이 공개한 성접대 카르텔 관련자는 문건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트의 존재 여부

방송에 따르면, 그간 방송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사회 유력 인사는 검경이 소속사 압수수색, 장씨의 통화기록, 계좌 추적, 참고인 조사, 카드결제내역 등을 통해 밝혀내고 소환조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장씨가 생전에 따로 리스트를 남긴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또 장씨가 생전에 접대했던 인물들을 언론사 사주 일가, 드라마 감독, 금융인(투자전문회사)들의 세 그룹으로 나누고 이중 금융계 인사가 월등히 많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전했다. 즉 이날 방송은 소속사 김 대표가 애초에 장씨를 배우로 키울 목적이 아닌 본인 사업과 관련해 투자 유치를 받는 일에 동원하기 위해 발탁한 것으로 봤다. 
 
 김아무개 대표는 술자리에 동석한 투자회사 관계자에게 투자제안서를 제출한 것을 인정했다.

김아무개 대표는 술자리에 동석한 투자회사 관계자에게 투자제안서를 제출한 것을 인정했다. ⓒ SBS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장씨가 참석한 이들과의 술자리는 투자 유치를 위한 접대 자리가 아니다"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되레 법정에서 "매니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일반인들이 여배우를 성접대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여 안타깝다. 장자연이 천국에서 행복하길 바란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김 대표를 수사했던 경찰도 제작진에 "장자연씨가 조금만 조심했으면 김 대표가 잘 키워줬을 거다"라며 "우리가 볼 때 수사할 가치가 없는 사건인데 언론에 떠밀려 한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기획사 건물 1층에 있었던 와인바 관계자는 "엔터 쪽 사람보단 전 관리나 경제 쪽 사람이 더 많았다"면서 "엔터 쪽이 1이면 금융 쪽이 9다. 사업하려나 그랬다"고 진술했다.   

앞서의 연예계 관계자도 김 대표에 대해 "연예계에서 영향력이 큰 친구가 아니었다"면서 "광고, 투자 유치 쪽으로 관심이 있었던 친구다. 매니지먼트 확장보다는 투자를 받아서 자기 사업을 하려는 플랜이 있었던 것 같다"고 봤다.
 
 김대표와 알고 지낸 모델 지망생의 진술.

김대표와 알고 지낸 모델 지망생의 진술. ⓒ SBS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한국으로 송환된 김아무개 연예기획사 대표.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한국으로 송환된 김아무개 연예기획사 대표. ⓒ SBS

   
 장자연에게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전 매니저 유아무개씨.

장자연에게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전 매니저 유아무개씨. ⓒ SBS

 
이 연예계 인사는 또 "(장자연이) 키와 체격이 커서 역할에 한정이 있어서 배우로서의 미래를 보고 계약한 것은 당시에도 아니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고 장자연 문건과 관련해 사회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연일 언론을 장식했지만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벌받은 사람은 김 대표와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 매니저 유씨뿐이었다. 그나마도 김씨는 폭행·감금 혐의만 인정돼 집행유예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정작 핵심 혐의였던 술접대·성접대 '강요' 혐의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죽음으로써 항의한 망자의 억울함에 비하면 결과는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지난해 4월 고인의 사망 10년 만에 재조사가 결정됐으나 정작 밝혀진 것은 미미하고, 조사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건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부정확한 이슈만 확대 재생산되면서 망자가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장씨가 사실상 철저히 이용당한 삶을 살았고, 빠져 나올 길을 거의 차단당했던 매우 불행한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을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가 잘 드러냈다.

다소 어긋난 논점
 
 수사기관이 지목한 20여명의 대상자는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수사기관이 지목한 20여명의 대상자는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 SBS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술접대 동석은 기업의 이해 관계를 위해, 혹은 남성의 목적을 위해 여성을 도구로 활용한 것"이라며 "장자연 사건은 가해자가 권력형 성범죄와 관련해 문제가 밝혀지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장씨의 생전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했지만 딱히 알맹이가 있다고 느끼긴 어려웠다. 연예계와 권력자를 이어주는 성매매 구조의 존재는 새삼스런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제작진이 제시한 성접대 카르텔의 연결고리가 그다지 선명하지 않고, 장씨의 죽음과 관련해 뚜렷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전히 사건의 핵심은 권력형 성범죄이고, 누가 권력을 앞세워 망자를 유린했으며, 윗선이 어디까지 개입됐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는 누구인지에 대중의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번 방송은 다소 논점을 벗어나 있고, 기존에 이미 밝혀진 사실을 복기했다는 인상을 줬다.
     
다만 "김 대표가 비록 권력형 성범죄의 주범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신인 배우를 이용하거나 그와 관련해 위증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을 덮는 데 일조했다"는 김상중의 문제 제기는 전적으로 옳다. 김 대표는 장씨의 죽음에 깊이 연관돼 있고, 사망의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사실상 불공정한 전속계약과 위약금에 대한 압박이 망자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김상중은 "김 대표를 조사하는 것이 선행돼야 사회유력층에 대한 의혹도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며 방송을 마쳤는데, 성을 제공하도록 강요한 자와 제공받은 자 양쪽의 조사가 모두 충실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장자연이 죽기 5일 전인 2009년 3월 2일에 녹음된 육성 파일. 소속사 관계자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장자연이 죽기 5일 전인 2009년 3월 2일에 녹음된 육성 파일. 소속사 관계자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 SBS

 
성접대 그알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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