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블 스튜디오가 지난 11년간 선보여 온 대서사의 대미는 화려했고, 충분히 진정성 있었다. 23일 서울 용산 CGV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된 <어벤져스 : 엔드게임>(아래 '어벤져스4')를 두고 여러 기자들이 감탄하거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가상의 이야기, SF 판타지 장르로 범위를 넓혀 보면 아마 2000년대 초반 <반지의 제왕> 때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제 의식과 캐릭터를 단편적으로 비교할 거린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를 구축하는 세계관이 탄탄했고, 수많은 캐릭터들이 대부분 허술하지 않고 매력적이었다는 건 공통점으로 뽑을 수 있다. 

180분 57초. 한 작품을 감상하기에 매우 부담스러운 러닝타임이다. 하지만 <어벤져스4>는 그 시간을 충분히 견디게 만든다. 다소 느린 전개와 설명적 장면들이 영화 초중반까지 이어지지만 그간 보기 어려웠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캐릭터들이 툭툭 등장하니 눈을 떼기 어렵다.

영화의 시작은 호크아이(제레미 러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이후 종적을 감췄던 그의 등장만으로도 팬이라면 설레기 충분하다.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가족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지만 타노스의 핑거스냅(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이용해 지구를 포함한 우주 생명의 절반을 사라지게 한 행위)은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모든 걸 상실한 호크아이는 다시금 어벤져스 대열에 서게 된다.

뿌리 깊은 가족주의... 그들이 지켜야 할 것들 

'지구를 지키는 영웅들의 이야기'. 지난 21편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을 거칠게나마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문장이다. 그만큼 보편적이면서도 간단하다. 물론 이 가족주의는 마블 스튜디오를 인수한 디즈니의 오랜 철학이기도 하다. <어벤져스4>는 바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자들의 마지막 연대를 동력 삼아 서사시를 마무리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많은 팬들이 예상했듯 이번 영화엔 거의 모든 MCU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동시에 일부 캐릭터들이 작별을 고한다. 이를 위해 영화는 각 캐릭터들의 전사와 가치, 의미를 충분히 조명해주면서 감정을 쌓아간다. 쪽대본을 받아든 배우 몇몇이 '이 대목에서 자신을 죽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처럼 <어벤져스4>엔 마블이 구축해 온 캐릭터들에 대한 존중이 충분히 담겨 있다.

영화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계획, 그러니까 수십만분의 1 확률로 타노스를 이길 그 방법을 준비하는 과정과 이를 알아챈 타노스의 재반격이 큰 축이다. 여기에 더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오랜 앙금의 해결 여부, 아무 것도 지키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휩싸인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타노스의 딸로서 분노에 가득찼다가 어벤져스를 돕는 쪽으로 전향한 네뷸라(카렌 길런) 등 이전 시리즈에서 이어 온 작은 이야기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서로의 입장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만 결국 소중한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만큼은 일치한다. 이런 가족주의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마블 영화 시리즈 물 역시 크게 재미로 다가오지 않겠지만, 각 영웅들이 쌓아왔던 전사들을 <어벤져스4> 한 편에서 풀어 헤치고 그 결과를 알려주는 만큼 그 지점을 즐겨도 좋을 법하다.

따라서 이 영화 관련한 스포일러를 강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단편적으로 누가 죽고, 사는지 그런 결과도 중요한 요소지만 오히려 <어벤져스4>는 MCU 팬이라면 더욱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넘쳐 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언론 시사에서 눈물을 보인, 혹은 오열한 기자들은 아마도 각 캐릭터들의 등장과 퇴장 자체만으로 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MCU와 함께 10년 이상을 보내면서 쌓아왔던 어떤 특별한 감정이 터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그만큼 <어벤져스4>는 팬들과 출연 배우에 대한 충분한 예우가 담긴 작품이다.

세대교체와 여성 연대

이미 공식석상에서 루소 형제 감독이 밝혔듯 <어벤져스4>는 다음 대서사로 넘어가기 위한 여러 설정을 깔아놨다. 스스로 영웅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인물은 차기 영웅을 지목하고, 죽음을 맞이한 영웅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또한 타노스와의 재결투에서 캡틴 마블(브리 라슨)을 위시한 여성 영웅들의 연대도 흥미롭다.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이 또다시 타노스 손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많은 영웅 캐릭터들이 분투하는 가운데 캡틴 마블, 와스프(에반젤린 릴리), 발키리(테사 톰슨),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물론 이런 설정이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전통 가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거대 상업영화에서 이렇게나마 도식적으로 연대와 세대교체를 표현했다는 건 꽤 고무적이기도 하다. 남성 히어로의 조력자 정도로 그려졌던 다른 시리즈 물이 아쉬웠다면 <어벤져스4>는 각 위기에서 큰 활약을 보이는 여성 영웅 캐릭터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등장하기에 팬에 따라서는 원하는 캐릭터가 충분히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할 소지도 있다. 그루트(빈 디젤)나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등은 인기 캐릭터임에도 그 분량이 미미하다. 또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서 활약했던 비전(폴 베타니 분)은 등장하지 않는다. 스톤과 혼연일체였던 만큼 설정상 최후의 전쟁에선 존재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진성 팬이라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할 가능성이 높다. 한 영웅의 장례식에 모인 많은 히어로들이 가족 단위로 모여 있고 카메라는 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클로즈업으로 훑는다. 여러모로 MCU를 위한 MCU의 대서사 마무리였다.

참고로 마블 영화 특유의 쿠키 영상은 없다.

한 줄 평: 충분히 몸의 수분을 빼고 관람할 것
평점 : ★★★★(4/5)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관련 정보

감독 : 안토니 루소, 조 루소
출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마크 러팔로, 스칼렛 요한슨, 제레미 러너, 브리 라슨, 크리스 햄스워스 등
러닝타임 : 180분 57초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북미개봉 : 2019년 4월 26일
국내개봉 : 2019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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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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