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왕복서간> 중 한 장면.

연극 <왕복서간> 중 한 장면. ⓒ 벨라뮤즈

 
3부작의 첫 스타트로 더할 나위 없는 출발이 아닐까.

연극 <왕복서간往復書簡: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이하 왕복서간)이 지난 21일 마지막 공연을 마쳤다. 다양한 곳과 협업을 하며 솜씨를 쌓고 <세상친구>, <붉은 정원>, <그와 그녀의 태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을 제작해온 벨라뮤즈의 최신작으로 마리코 역에 신의정, 진소연, 준이치 역에 에녹, 주민진, 어린 마리코 역에 한보배, 어린 준이치 역에 안재현, 김인성, 가즈키 역에 황성훈, 야스타카 역에 임종인이 출연했다.

연극 <왕복서간>은 일본에서 영화화도 된 소설 <고백> 등을 만든 미나토 가나에의 서스펜스 드라마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5년 전의 사건'을 묻어둔 채 오랜 기간 연인으로 함께한 마리코와 준이치는 준이치가 갑작스럽게 해외자원봉사를 떠나며 떨어지게 된다. 두 사람은 전화나 메일도 어려운 곳에서 지내는 준이치를 위해 편지를 통해 자신들의 심정을 전하게 되며 15년 전의 사건에 다가간다.

연극 <왕복서간>은 유려한 흐름이 우선 눈에 띈다. 추리, 서스펜스 장르는 대체로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끌고 가며 독자들의 주의력이 닿지 못하는 미싱 링크를 만들어내기 마련인데 연극 <왕복서간> 역시 서로의 이야기를 편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단서들이 관객에게 반전을 선사한다.

물론 무대화된 <왕복서간>은 반전 자체가 중요한 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흐르는 무대의 특성상 적극적으로 내용을 찾아봐야 하는 소설과 달리 관객에게 답을 떠먹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극 <왕복서간>은 서스펜스의 형식을 빌어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매력적인 연출이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무대 위 배우들의 진한 감성이 담긴 연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우리나라 공연에선 식상하고, 당연하기까지 한 칭찬이다. <왕복서간> 역시 상당량의 독백을 소화해야하는 주연 배우들은 물론이고 적은 비중을 가진 조연들도 모두 호연을 펼친다.
 
 연극 <왕복서간>의 한 장면.

연극 <왕복서간>의 한 장면. ⓒ 벨라뮤즈

 
그러므로 <왕복서간>의 매력 포인트는 다른 곳에서 찾아봐야 한다. 필자가 보기엔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줄리엣과 줄리엣> 등을 통해 풍부하고 아름다운 극을 만들었던 이기쁨 연출과 한송희 작가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활용된 무대에 있다.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되는 것에 '연극을 올리기엔 무대가 너무 넓지 않을까?' 싶었던 것은 기우였고 준이치와 마리코의 심리적인 거리, 물리적인 거리를 자연스럽게 넓은 무대로 표현했다.

이를 직관적인 표현을 넘어 편지를 읽고 있는 인물(현재의 나)은 실제로는 현실의 시간에 존재하고 있으나 대사 없이 가만히 앉아있고 그 편지를 쓴 인물(과거의 너)은 대사와 행동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나가 상상으로 그려낸 인물이다.

그러나 상상 속의 인물이 현재의 인물을 오히려 다그치게 하고 이끌게 하기도 하며, 두 사람의 심리가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서로가 마치 직접 소통하는 것처럼 연출하기도 한다. 준이치와 마리코 두 사람의 심리나 관계를 둘의 독백에만 의지하지 않고 다채로운 연출을 통해 세심하게 드러내는 <왕복서간>은 종국에 이르러 두 사람이 서로의 과거 모습과 마주하며 끝난다.

영화나 소설에서 한국 번역자가 의역을 기가 막히게 잘하면 이를 '초월번역'이라고 부른다. <왕복서간>의 결말 역시 원작 소설을 넘어선 이른바 '초월연출'이라고 꼽을 수 있다. 원작자도 호평한 것은 물론이다. 소설 <왕복서간>은 총 3부로 이뤄져있기에 연극 <왕복서간>도 후속작을 기다리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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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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