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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신한엘타워 디지털캠퍼스에서 열린 제로페이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신한엘타워 디지털캠퍼스에서 열린 제로페이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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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주도하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제로페이가 시범서비스를 시행한 지 넉 달이 됐다.

시범서비스 첫 날이었던 2018년 12월 20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구의 한 카페를 찾아 제로페이 결제를 시연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자치구마다 돌면서 제로페이 사용을 독려하는 캠페인에 앞장섰다.

다른 지자체들도 함께하고 있지만, 박 시장의 공약으로 시작된 사업인만큼 제로페이가 그의 정치적 성과물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제로페이' 하면 박원순이 떠오를 정도다.

제로페이의 시장 안착은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공급 면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실적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서울 지역의 가맹점 수는 4월 들어 12만 곳을 넘었다. 서비스 시작 무렵의 2만 곳에 비해 6배 늘어난 수치다. 음식점, 카페, 약국 등 생활밀착형 소상공인 업체 40만 곳 중 30%가 제로페이의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얘기다.

휴대폰에서 네이버 지도 앱을 열어 '제로페이'로 검색하면 동네 주변의 가맹점들이 주르륵 나온다. 어느 동네에나 볼 수 있는 편의점에서도 4, 5월 중에는 제로페이 결제가 가능하게 된다고 하니 이제 "제로페이 쓰려고 해도 가맹점 못 찾겠다"는 말은 쑥 들어갈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용자가 매장의 QR 코드를 촬영하거나 비밀번호를 일일이 입력하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이것 또한 매장 상인들이 플라스틱 카드처럼 포스(POS)로 스캔하고, QR코드 촬영이 불필요한 NFC 결제방식이 도입되면 상당 부분 해소될 불편이다.

그러나 '수요' 영역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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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조와 5억.... 멀어도 한참 멀었다

제로페이의 1월 결제액은 2억 8272만 원, 2월 결제액은 5억 3000만 원에 불과했다(중소벤처기업부 자료). 3월 이후 결제액이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매달 50조 원 이상이 승인되는 플라스틱 카드(신용·체크)의 실적을 따라가려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

서울시는 법인용 제로페이를 준비하고 있다. 시금고인 신한은행과 협의해 개발한 '제로페이비즈'가 나온다고 한다. 서울시는 산하기관 공무원들에게 업무추진비와 사무관리비 등을 제로페이 가맹점에서 결제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따릉이·공영주차장·문화시설 등 공공요금을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조례안 18건을 이달 말까지 통과시킬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제로페이 10만번째 가맹점인 역사책방에서 시연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시범서비스에 앞서 작년 10월 29일 가맹점 모집을 시작한 결과 5개월 만에 가맹점 10만호(4월 1일 기준)를 돌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제로페이 10만번째 가맹점인 역사책방에서 시연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시범서비스에 앞서 작년 10월 29일 가맹점 모집을 시작한 결과 5개월 만에 가맹점 10만호(4월 1일 기준)를 돌파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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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쓸 수 있는 행정력을 이런 식으로 총동원하면, 제로페이의 사용 건수와 액수가 한동안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여기까지다.

제로페이가 성공하려면, 소비자들이 신용카드에서 제로페이로 소비 형태를 바꿔야 한다. 제로페이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는 자영업자들이 "웬만하면 제로페이로 결제해주세요", "제로페이 결제하면 이러저러한 혜택을 드리겠다"고 소비자를 꾀거나, 소비자 스스로 제로페이를 써야 하는 '확실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가 결제 수단의 '대세'가 된 것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쓰게 해서 자영업자들의 세원 포착을 더 쉽게 하려는 용도로 김대중 정부가 마련한 것이 1999년 8월 시행한 신용카드의 연말정산 소득공제였다. 지난 20년간 신용카드는 소득공제율 10~20% 사이를 오르내리며 직장인들의 대표적인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민간소비지출에서 카드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데는 소득공제 실시 후 10년이 걸렸다(2009년 52.8%, 여신금융협회 자료). 지난달 13일 정부·여당이 올해 말로 끝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3년 더 연장하기로 한 것도 직장인들의 신용카드 습관을 단기간에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제로페이 아무리 열심히 결제해도 소득공제액이 '제로'

서울시도 제로페이 도입 단계에서 신용카드와 같은 소득공제를 적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활성화 수단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해 연말 제로페이 서비스가 도입될 때 서울시는 '착한 서울시민, 당신에게 47만원이 돌아옵니다'라고 광고했다. "연소득 50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제로페이로 2500만 원을 결제하면 연말정산시 신용카드(47만 원)보다 많은 75만 원을 돌려받는다"는 계산법은 소득공제 40% 적용을 가정한 것이었다.

지금은 제로페이를 아무리 열심히 결제해도 소득공제액이 '제로'다. 금융전문가 길진세씨는 "소상공인들을 살리기 위해 제로페이를 써야한다는 메시지는 선하지만 소비자는 냉정하다"며 "서울시가 이런 홍보 전략은 접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제로페이법)은 제로페이에 신용카드(15%), 체크카드(30%)보다 높은 40%의 소득공제율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 연 소득의 25% 이상을 제로페이로 결제해야 하고 ▲ 소상공인 점포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소득공제 40%'가 가능하다. 그런 악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일단 '제로페이 소득공제'로 이익을 보는 소비자들이 나와야 제로페이에 활로가 열릴 것이다.

문제는 입법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

김태희 서울시 경제일자리기획관은 18일 오후 간편결제 활성화 간담회에서 "법령 개정이 진행 중인데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 일자리수석에게 "제로페이는 소상공인 자영업 핵심정책인데 왜 이렇게 (사업 추진이) 더디냐"며 "일자리수석이 직접 챙겨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던 시대에는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곧 법이었고, 국회에서 그대로 관철됐다.

그러나 '날치기 법안 통과'와 '의회 내 폭력사태 방지' 등을 명분으로 2012년 국회법을 개정한 후에는 원내 1, 2당이 합의하지 못한 법안은 본회의 표결이 사실상 봉쇄되어 버렸다. 

한국당 반대 분위기, 민주당 원내대표 교체... 험난한 국회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원내대책회의 주재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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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라도 올리려면 국회 재적 의원의 60%(180명) 이상 또는 해당 상임위 재적 60%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제로페이법은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심사하도록 되어있는데, 총원 26명 중 자유한국당(10명)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제로페이법에 찬성해야 가능한 숫자다. 최근 선거법, 공수처법의 표류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패스트트랙에 제로페이법을 올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기재위에는 한국당의 '법안' 당론을 좌지우지하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있다.

한국당에서는 오래전부터 제로페이에 대해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페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발표만 안 했을 뿐, 나 원내대표는 제로페이법은 반대 당론으로 가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당 민주당의 분위기는 어떨까? 민주당은 5월 8일 새 원내대표를 뽑는다. 안 그래도 말길이 막혔는데, 퇴임을 앞둔 원내대표가 제로페이법 통과로 '유종의 미'를 거둘 것 같지는 않다.

새 원내대표가 자리를 잡고 성과를 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국회 관계자들은 제로페이법의 협상 시한을 6월말~7월초로 잡았다. "이때를 놓치면 20대 국회에서는 통과하지 못 할 것"(사무처 관계자)이라는 말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국회의원들도 일반 시민처럼 7, 8월이면 알음알음 휴가를 가기 때문에 본회의 소집이 쉽지가 않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 인상 결정으로 자영업자들 민심이 들썩이는 와중에도 국회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데에는 이런 시즌의 특성 탓도 있다.

9월부터 정기국회가 열리지만, 통상 9~10월은 국정감사로 날이 샌다. 해마다 연말 국회는 숙제처럼 밀린 쟁점법안들을 예산안과 묶어서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정당들의 기 싸움으로 어수선했다.

'6월'을 놓치면 '12월'로 잡아야 하는데,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여야 대치가 절정으로 치닫는 정국에서 제로페이법이 국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명확하다.

제로페이의 미래는 생각만큼 밝지가 않다. 물론 시행 초창기 3년, 4년 비판 받더라도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정책을 만들겠다는 뚝심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정치권의 협상을 들여다보면, 대화 자체가 안 돼서 일이 틀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제로페이법에는 아직 '골든타임'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태그:#제로페이, #나경원,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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