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 OAL(올)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먹는다."
 
누군가 내 자식의 죽음에 대해 저렇게 말한다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인터넷 '악플러'가 썼다고 해도 깜짝 놀랄 이 글을, 대한민국 제1야당의 전직 국회의원이 SNS에 올린 글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세월호 5주기 하루 전날인 15일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SNS에 해당 글을 올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모욕했다. 

다음날 정진석 의원 역시 SNS에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글을 올렸다. 두 사람은 논란이 일자 해당 글을 삭제했다.

비단 차명진 전 의원, 정진석 의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순례 의원은 2015년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시체 장사' 등을 표현을 써 조롱했고 안상수 의원 또한 "세월호 같은 교통사고에 5000억 원을 쓴 나라"라고 발언해 논란을 불렀다.

또 김재원 의원은 2015년 세월호특별조사위를 향해 "세금도둑"이라 비하했으며 김태흠 의원은 2014년 8월 국회에서 단식 농성중이었던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노숙자들 같다"라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켰다. 세월호를 향한 도 넘는 막말과 시선은 이뿐만이 아니다. 극우 온라인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 일부는 2014년 8월 단식투쟁 중인 유가족 옆에서 치킨 피자 등을 시켜 먹으며 폭식 집회를 열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에 떠오른 한 편의 영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참사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영원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길 바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막말 사태를 지켜보려니, 5년 전 개봉한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바로 <또 하나의 약속>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백혈병 사망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려 온 택시기사 상구(박철민)는 딸 윤미(박희정)가 대기업 삼성에 취직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항상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던 윤미는 입사 후 2년 만에 백혈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 OAL(올)

  
회사에서 온 직원은 윤미의 일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돈을 내민다. 하지만 윤미는 회사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며 화를 낸다. 상구는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데...'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윤미가 백혈병으로 죽은 후에야 상구는 알게 된다. 윤미 말고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여러 명의 직원들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변호사 난주(김규리)와 함께 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상구의 노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막히게 된다.
 
첫째는 '삼성'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삼성은 반도체 공장을 공개하지만 그곳은 상구가 윤미에게 들었던 곳과 완벽하게 다르다. 상구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1인 시위를 하지만 회사는 버스로 네 면을 모두 막아 상구를 가둬버리기도 한다. 또한 언론을 이용해 병에 걸린 전 직원들과 유족들이 거액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힘을 주던 사람들의 변화다. 상구와 그의 부인 정임(윤유선)의 이웃들은 두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며 윤미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혀야 된다고 말한다. 한데 뉴스에서는 '유족들이 돈을 뜯어내고 기업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려고 한다'며 매도하고 지인들은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된다. 상구와 정임이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딸의 죽음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외부에서 아무리 강하게 자신을 공격한다 하더라도 지지 또는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편이라 여겼던 사람들의 변심은 큰 상처를 준다. 이 순간 꿋꿋하게 딸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나아갈 것만 같았던 어머니 정임은 정신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딸의 죽음 원인 밝히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이야기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 OAL(올)

 
<또 하나의 약속>은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고 싶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다. "대기업은 국가의 기둥이고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여겼던 아버지는 딸의 죽음을 돈으로 무마하려는 대기업의 횡포 앞에 분노를 느낀다.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싶었고 더 이상 이런 피해자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했던 마음은 "자식의 죽음을 통해 돈 몇 푼 더 벌어보려 하는 속셈"으로 왜곡된다.

이런 여론 왜곡을 조장하고 키우는 것 중 하나가 일부 국회의원 등 유명인들의 '막말'과 '망언'이다. 한 번 퍼져 나간 막말은 당사자가 사과하고 나선들, 모두 바로잡혀지지 않는다. 결국 피해자들은 그런 왜곡 속에서 두 번, 세 번 아프게 되고 지쳐가는 것이다.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부모를 두고 "징하게 해먹는다"란 막말을 한 전 국회의원이나, 딸이 죽은 원인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부모를 향해 돈을 건네며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는 대기업의 모습은 인간에 대한 존엄은 물론 스스로 인간됨을 버리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사건을 통해 변하지 않는 세상과 그런 세상 속에서도 변화를 위한 외침을 반복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놓은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대한민국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건 어떨까. 이 영화가 말하는 '또 하나의 약속'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가 지켜야 될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또하나의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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