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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서 참석자들이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서 참석자들이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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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광화문 프레스 센터 앞에서 낙태죄 위헌을 주장하는 집회가 막을 올렸다.

오후 3시에 시작된 낙태죄 폐지 집회는 오프닝 멘트 이후 다양한 여성들의 발언을 듣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자기 삶에서 '낙태죄'라는 죄목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주장했다.

청소년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청소년기 낙태를 한 한 여성의 경험이었다. 그녀는 애인과 함께 자신이 사는 지역의 병원을 찾았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울까지 와서 여러 병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때도 역시 낙태 시술을 해줄 병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병원이 보호자 동의 없이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사회에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청소년도 성욕을 가진 존재입니다. 저는 청소년의 성욕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대 소녀들도 보호자의 동의 없이 자기 몸에 관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성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녀의 주장은 내 청소년기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사회에서 공부 좀 하는 학교로 분류되는 특수목적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 학교에는 연애 금지 조항이 있었다(찾아보니 지금은 학생의 항의 등에 따라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연애 금지 조항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당시 몇몇 남학생들과 데이트를 했었다.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산책도 하고 스킨십을 한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10대부터 성적인 호기심이 있었지만, 부모와 학교의 '안 된다'라는 가르침 때문에 그저 쉬쉬했을 뿐이다.

그런데 청소년의 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회라고 해서 청소년의 성적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성에 관해 제대로 교육시키고, 상호 동의와 피임의 중요성 등에 관해 알려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는 청소년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터부시한다. 그러나 10대 시절 성 혹은 연애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은 드물다. 청소년의 성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였으며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이 겪을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여성 청소년들이 단지 청소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성적 관계 이후에 발생한 모든 문제들을 가정 혹은 주변에 꼭 알려야 하는지, 그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할 수는 없을지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더군다나 낙태에 대한 보수적 시각이 존재하는 문화 속에서 그들에게 끼칠 사회적 차별이나 비난 등이 가해질 수 있을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낙태'라는 태아 중심의 명칭  
 
2018년 7월 7일 오후 5시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들은 헌법재판소를 향해 낙태죄 위헌 판결을 요구하며 한목소리로 여성의 자기결정권 쟁취를 결의했다.
 2018년 7월 7일 오후 5시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들은 헌법재판소를 향해 낙태죄 위헌 판결을 요구하며 한목소리로 여성의 자기결정권 쟁취를 결의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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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보수성은 학습된다. 그리고 학습된 보수성은 우리 사회에서 '낙태죄'라는 죄목을 만들고 또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이 보수성이라는 것이 누구에게 적용되는 보수성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들어온 쪽은 여성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 임신에 대한 비난은 해당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간다. 임신에 있어 남성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성은 남성에게는 '즐겨도 되는 것',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에게는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그야말로 이중적인 논리다.

성에 대한 이중잣대는 낙태죄에도 반영되어 있다. 임신이란 여성 혼자 행위를 함으로써 발생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오로지 여성만이 받는다. 이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이며, 왜 존재하는 것인가. 왜 인간의 성적 행위에 따르는 '두 사람 분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만 가하는 것인가.

이렇게 낙태에 대한 사회적 처벌과 비난이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현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성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낙태죄는 명백히 '성행위를 한 여성'에게 '문란한 여성', '무책임한 여성'이라는 보수적 시각에서의 비난을 내포하고 있다. 

낙태, 명칭만으로 여성을 죄악시해

낙태라는 용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여성의 몸에서 발생하는 '임신'이라는 사건에 대해 임부를 중심에 두지 않고, 오로지 '태아의 생명권'을 중심에 둔 용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의미의 낙태에는 이미 낙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들어가 있다. 중립적이지 않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퍼뜨리는 것이다.

이런 용어 때문에 내가 처음 낙태라는 용어를 접했을 때에도 낙태하는 여성을 살인마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었다.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토론을 앞두고 우리에게 낙태라는 주제에 관해 설명해주셨다.

"여러분, 낙태는 소중한 생명을 없애는 일이에요. 이것을 찬성하는 것이 맞을까요?"

교사의 질문은 학생들에게 토론을 요구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질문 속에 답을 포함하고 있었다.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며 나쁘다라는 것이 그가 제시한 답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되물었을 뿐이다. 그때 내가 교사의 언어를 통해 받아들인 낙태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곧 '죄인'이자 '악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정도 흐른 지금, 거리에서 내가 만난 여성들은 자신의 낙태 경험을 이야기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은 '아이를 죽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녀들의 목적은 소중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잉태하게 되었지만 자신과 사회적 상황 등 여러 맥락을 고려했을 때 임신중절이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선택할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말한다. 자신이 잉태한 생명만큼이나 자기 자신의 생명과 사회적 권리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주장한다.

여성을 위험으로 내모는 낙태죄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익명의 여성모임 BWAVE가 지난 3월 9일 오후 보신각 앞에서 '임신중단 전면합법화 시위'를 열었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익명의 여성모임 BWAVE가 지난 3월 9일 오후 보신각 앞에서 "임신중단 전면합법화 시위"를 열었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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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는 수많은 여성을 위험으로 내몬다. 현장 발언을 하러 무대에 오른 한 청소년은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낙태를 하기 위해 위험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많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이나 예상치 못한 임신 등에 있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안전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태아의 생명은 중시하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임신중절에 대해 위험한 방식으로 그것을 행하도록 음지로 내모는 일은 부당하다.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여성에게는 자신의 몸을 통해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가 존재한다. 국가가 태아의 생명만 소중히 여길 것이 아니라, 아이를 가진 여성들의 생명 또한 소중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 

사회로부터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성경험을 하게되어 임신을 하게 된 10대 청소년에게 '낳지 않을 권리'는 중요하다. 피임을 했으나 임신하게 된 사람에게도 낳지 않을 권리는 주어져야 마땅하다. 설령, 피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출산 이후의 본인의 삶과 아이의 삶에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에게도 낳지 않을 권리는 필요하다.

낳지 않을 권리는 각각의 다른 인간들에게 처해진 상황 등 특수한 맥락에 의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권리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일부러 태아를 없애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성욕과 성이 완벽히 통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성관계 안에서 임신이 된 이후, 낳을 것인지 말 것인가에 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1순위로 주어져야 한다.

출산이 여성의 삶을 가로막지 않는 그날
 
2017년 11월,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에 응답한 조국 민정수석은 정부가 현행 낙태죄 유지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에 응답한 조국 민정수석은 정부가 현행 낙태죄 유지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다고 밝혔다.
ⓒ 청와대 유튜브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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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금지하자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싶다.

"출산경험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낙태를 금지하지 않아도 자연히 출산율은 증가할지도 모릅니다. 여성들 개개인만 비난하지 마시고, 이 사회를 바라보고 여성들의 선택을 이해하려 노력해보십시오."

현재 사회는 여성이 혼자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낳은 몸'으로서의 존재 안에 갇혀 버린다. 즉, 아이를 낳고도 동시에 사회적 성취를 이루며 아이를 안전하게 기를 수 있고 사회적 비난을 받지 않는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낳는 몸을 가진 여성에게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맡기지 않는 사회가 온다면 여성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여성도 미혼모라는 명칭에 따르는 불합리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면 여성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사회가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세상이 온다면 여성들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설령 그런 세상이 온다고 해도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몸에서 10개월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자기 행복을 중심에 두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홀몸으로 임신한 여성이나 가정을 꾸리지 않고 임신한 여성 등 다양한 여성들이 임신한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차별받지 않고 꾸려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최대한 힘써야 한다. 출산이 반드시 여자와 남자의 2인조로 이루어진 '이성애적 가정 모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어도 될 때, 여성은 국가를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국가로 가는 첫 걸음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낙태는 위헌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이 갖는다.
그것은 여성이 가진 천부적 인권이다.

태그:#대법원, #낙태, #낙태죄, #낙태죄폐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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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사회의 다양한 인간군상, 갈등과 현상을 관찰하며 그 안의 모순과 다양한 얽힘에 관해 질문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제가 기록으로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당신의 가슴 속에 날아드는 화살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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