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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말]
 영화 <썬키스 패밀리> 메인포스터

영화 <썬키스 패밀리> 메인포스터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01.

최근 몇 년간 국내 영화계는 특정 장르에 매몰된 모습을 보여왔다. 굳이 그 계보의 작품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영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 최근에야 그 쏠림 현상이 다소 개선되었다고 느낄 만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장르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낼 정도는 아니다. 올해 초, 영화 <극한직업>(2019)의 흥행이 반가웠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2016년 가을, 반짝 흥행을 이끌었던 <럭키>(2016) 이후 거의 처음으로 좋은 성적을 이끌어낸 코미디 장르의 작품이었으니까(지난해 개봉한 <탐정: 리턴즈> 역시 괜찮은 흥행을 보여준 바 있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국내 영화 산업을 두고 많은 사람이 장르의 편중 혹은 작품 간의 극심한 격차와 같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문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모습이다. 인기를 보장할 수 없는 장르와 캐스팅, 흐름을 가진 작품들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어렵게 마쳤더라도 투자 과정에서의 힘겨운 줄다리기, 배급 과정에서의 부조리한 대우 등 어려움들과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우리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영화를 문화(Culture)로 향유하는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문화(Atmosphere). 바로, 다양성을 장려하지 못하는 문화와 더불어 최고가 아니면 기회조차 박탈하고 마는 냉혹함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 <썬키스 패밀리> 스틸컷

영화 <썬키스 패밀리>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02.

영화 <썬키스 패밀리>는 그런 분위기를 딛고 세상에 나온 아주 오랜만의 가족 코미디 작품이다. 결혼 20년 차에도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을 나누는 준호(박희순 분)와 유미(진경 분)와 그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매일 사랑하며 영원히 행복하고 싶었던 가족 앞에 등장한 준호의 어린 시절 친구라는 예쁜 아줌마 미희(황우슬혜 분)가 나타나고, 그녀가 발단이 된 작은 오해가 점차 커지는 과정 속에 가족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한번 가정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코믹함과 더불어 의외의 진중함까지 전달해내는 이 작품이 의미를 갖는 것은 <위험한 상견례> 시리즈, 이병헌 감독의 <바람 바람 바람>(2018) 이후 거의 만나볼 수 없었던 지점의 소재라는 점이다. 가족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스크린 안으로 끌고 들어와 이 작품이 가진 귀여우면서도 발칙한 내용들로 풀어냈다. 최근 관객들이 좇는 경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어떤 복잡한 장치나 기교 없이 감독 본인이 평소 생각해왔고 세상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03.

가족의 사랑과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이유로 홍보 과정에서 '섹시 코미디' 장르로 포장되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의 진짜 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에 있다. 이 이야기들은 이 작품이 코미디 장르를 이어가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성과 사랑이라는 소재가 아니더라도 '가족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다루어질 법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족 구성원 각자가 서로에 대해 품고 살아가는 스스로의 결핍에 대한 자격지심이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에게 어떻게 터뜨려지는가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부분은 영화의 수면 아래에서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자 근원적인 물음이 된다.

이와 더불어, 그 관계가 심지어 가족일지라도 누구나 말 못할 고민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주변 인물을 활용하는 부분 또한 이 작품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지점이다. 남들에 비해 늦은 초경으로 인해 스스로를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주(보라 분)와 그 누구보다 여성과의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경험과 능력이 미천한 철원(장성범 분)은 이 지점의 이야기와 가족의 성과 사랑이라는 소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낸다. 가족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혼자 병원을 찾는 엄마 유미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이 작품 속에서는 성과 사랑이라는 소재에 맞춰 그 지점을 표현했지만, 삶의 다른 지점에 대입해 보더라도 어느 한 쪽은 꼭 들어맞을 수 밖에 없는 문제를 잘 포착해냈다.
 
 영화 <썬키스 패밀리> 스틸컷

영화 <썬키스 패밀리>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04.

이 영화 <썬키스 패밀리>의 마스코트이자 극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족의 막내딸 진해(이고은 분)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홀로 모두 소화하며 인물들 모두를 극의 중심으로 엮어내는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했던 작품의 모든 지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인물이면서도 심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이 위치해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전달해낸다. 그동안 다양한 영화를 통해 아동의 시선을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표현해내고자 했던 시도들은 계속되어 왔지만, 진해의 경우에는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진해가 어떤 행동할 때마다 관객들의 입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는 이 작품의 코미디를 이끌어나가는 핵심적인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진해의 시선에서 극을 이끌어나가는 내러티브가 중심축이 되어 작품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 받은 것은 작품 외적인 지점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 바로 작품의 수위와 관련한 부분이다. 작품을 연출한 김지혜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의 15세 관람가의 가족 코미디를 사수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19세 관람가로의 전환에 대한 유혹이 많았다고. (2019년 3월 31일 <엑스포츠뉴스> '썬키스 패밀리' 감독 "사랑 충만한 영화, 흥행 떠나 많이 배웠다" [엑's 인터뷰])

"하지만 그럼에도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 관련된 일도 했었고 사회복지 쪽 일을 했다. 그때 얼마나 아이들이 순수하고 표현에 거리낌 없는지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점을 어른들의 시선에서 오해하는 건 편견인 것 같다. 이 작품을 한 고은이가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가 봐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인터뷰에서 밝힌 이유로 인해 그녀는 작품의 현재 모습을 지켜냈다. 물론, 진해 역을 맡은 이고은 아역 배우의 캐스팅은 이미 결정된 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인터뷰에서처럼 아역 배우에 대한 책임감이 감독에게 있지 않았다면 현재의 가족 코미디는 지키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또한, 진해의 시선이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는 그 비중이 크게 줄거나 아예 삭제되어 지금의 모습은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가능성들이 현실화 되었다면 지금의 <썬키스 패밀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가족 코미디 장르의 작품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기약을 다시 한번 해야만 했을 것이다.

05.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난장은 극의 러닝타임 속에서 쌓여온 모든 인물 사이의 갈등을 일거에 해소하는 장면이다.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카메오 이준익 감독의 대사와 같이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보고 믿으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유미가 특히 더 그렇지만 다른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대난장 장면에서 인물들이 모두 모인 뒤에도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이야기만 하기 바쁘다. 그렇게 계속되어 온 오해들은, 영화 <스물>에서의 난장이 그랬던 것처럼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온 여러 시퀀스를 포기한다는 의미의 극적인 전환은 결코 아니다. 영화는 중반이 넘으면서부터 이미 클라이막스를 향해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인물들의 난장은 영화 속 오프닝의 댄스 신과 합을 맞추며 작품 속 또 하나의 큰 액자를 완성한다. 이런 전환은 하나의 시퀀스를 통해 작품 속 관계를 재설정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메타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춤을 추는 첫 장면과 춤을 추는 후반부의 장면 사이에 가족의 위기를 위치시킨 것은 '같이 살고 부딪히고 같이 밥 먹고, 아무튼 우리는 여전히 행복한 가족이다'라고 이 작품이 말하고 있는 부분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삶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춤을 추듯 행복한 뒤에 조금의 어려움을 겪고, 다시 춤을 추듯 행복한 뒤에 또 조금의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끊임없이 계속해 반복해나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영화 <썬키스 패밀리> 스틸컷

영화 <썬키스 패밀리>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06.

일반적인 가족 코미디 장르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썬키스 패밀리> 역시 전체적으로는 간단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큰 복선이나 반전의 코드를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니기에, 애초에 진폭의 높이가 큰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진폭의 높낮이와는 무관하게 잔잔하게 지속되는 소소한 웃음들 속에서 충분한 미소를 짓고 영화관을 나오기에 모자람이 없다.

더불어, 어떤 인물을 작품의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미를 극의 중심에 놓는다면 오해가 부풀어가는 과정을 극대화할 수 있고, 진해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면 부모의 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 집중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매 시퀀스를 놓치지 않고 이어내는 몰입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07.

다만 한가지, 이 글의 처음에서 잠깐 언급했던 대로 어떤 작품이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문화는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현재 개봉한 다른 큰 작품들에 밀려 이 작품이 확보한 스크린 수는 현재 370여개 남짓(영화진흥위원회 공식 통계 3월 31일자 기준), 그나마도 대부분의 영화관에서는 일명 '퐁당퐁당'(흥행성이 떨어지는 영화를 다른 영화와 교차상영하는 방식) 상영으로 이른 오전 혹은 늦은 저녁밖에 배정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돌아오는 수요일, 영화 <샤잠!>까지 개봉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비단 이 작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한 현장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노력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모두 최고가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누구나 최고를 바라볼 수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장르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장르의 저변이 풍성하게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하고, 이와 같은 작품들이 선순환의 구조 속에서 제대로 호흡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 무비 썬키스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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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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