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년차 힙합 '리스너'다. 주로 한국힙합을 듣고, 때로는 미국의 유수한 래퍼들의 곡을 들으면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어떤 방식으로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9년 전의 한국 힙합이라는 것은 욕이 난무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던, 그야말로 '혐오의 결정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힙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변 지인들한테서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가사 때문에 듣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듣는다.

최근 힙합 가사에서의 '여성혐오' 논란이 또 한 차례 있었다. 그 주인공은 브래디스트릿(Bradystreet)이다. 브래디스트릿은 2018년부터 활발하게 활동하는 신예 래퍼로, 많은 래퍼들의 곡에 참여하면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 3월 30일에 래퍼 김효은의 싱글 트랙 '머니 로드(Money Road)'가 문제가 된 것. "메갈X들 다 강간 / 난 부처님과 갱뱅 / (중략) 내 이름 언급하다간 니 가족들 다 칼빵"이라는 가사는 뭐가 문제라고 짚어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다.
 
 <쇼미더머니5> 출연 당시 김효은의 모습

<쇼미더머니5> 출연 당시 김효은의 모습 ⓒ Mnet

 
굳이 특정 종교를 언급해서 불필요하게 성적으로 소비한 것도 문젠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응징하는 수단이 '강간'이 될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사실 곡의 주인인 김효은이 아닌 브래디스트릿의 가사가 문제가 된 것이지만, 자신의 작업물을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내놓는 과정에서 당연히 내부 논의가 되었어야 마땅했다. 논란이 되자 4월 1일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의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 브래디스트릿은 사과문에서 "어휘 선택이 지나치게 과격했던 점을 반성"한다고 했다. 핵심은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문제였던 것인데, 그것을 과격하지 않고 덜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문제가 없는 걸까? 현재 해당 싱글은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간 상태다. 

사과한 릭 로스와 에미넴, 그리고 폭력에 무감각한 한국힙합

이런 일이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꽤 자주 일어난다. 미국 래퍼들도 여성혐오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2013년 미국의 유명 래퍼 릭 로스(Rick Ross)는 "그녀의 샴페인 안에 약을 넣어라 / 나는 그녀를 집에 데려가서 즐겼고 / 그녀는 그것을 알지도 못한다"라는 가사가 포함된 곡을 발매했고, 약물강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비판받은 바 있다. 
 
 영화 <8마일>의 에미넴 / <8마일> 스틸컷

영화 <8마일>의 에미넴 ⓒ UIP코리아

 
이후 거듭 사과하고 해당 가사가 삭제되는 등의 일이 있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그가 광고모델로 있었던 스포츠 브랜드인 리복(Reebok)은 릭 로스와의 광고계약을 해지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근래의 미국은 혐오발언을 서슴지 않던 힙합 문화를 적극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유명 래퍼 에미넴(Eminem)은 2018년 다른 래퍼를 디스하면서 그를 '호모'(faggot)라고 칭한 것에 대해 사과한 바 있으며, 제이지(Jay-Z) 또한 여성을 잘못된 방식으로 성적 대상화 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많은 거물급 래퍼들이 점차 변해가는 중이다.

매번 한국에서 래퍼들이 소수자 혐오적인 가사를 쓸 때마다 팬들이 옹호하며 '미국도 이렇다', '힙합은 원래 그런 문화다'라고 말하지만, 원래 그래도 되는 것은 없으며, 그랬던 미국도 점차 바뀌어 가는 중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브래디스트릿의 가사 논란은 여태껏 있어왔던 일들의 연장선일 뿐이다. 대표적으로 소수자를 폭력적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키는 래퍼 블랙넛이 있다. 

그는 2016년 발매된 싱글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에서 세월호, 노인, 아동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해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 바 있다. 문제는, 더 나아가 실재하는 인물인 여성 래퍼 키디비를 성희롱하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에 키디비는 2018년 6월 정식으로 블랙넛을 모욕죄로 기소했으며, 블랙넛에게는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성희롱성 가사' 래퍼 블랙넛 첫 공판 출석 성희롱성 가사로 여성 가수를 모욕한 혐의를 받는 래퍼 블랙넛(김대웅)이 1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성희롱성 가사로 여성 가수를 모욕한 혐의를 받는 래퍼 블랙넛(김대웅)이 지난 2018년 3월 1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이후의 행동이다. 블랙넛은 올해 2월 발매된 싱글 'IMJMWDP'에서 가사에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내 힙합은 진짜라서 징역 6개월 / (중략) 법이고 윤리고 시끄러 비켜 / 블랙넛은 랩 할 땐 라임만 지켜 / 그까짓 공권력 안 쫄려"

물론 권력을 조롱하고 비트는 일은 힙합이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린 개인을 규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집행유예는 결코 아무 죄가 없다는 처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처분을 비웃는 것은 결국 피해자를 조롱하는 일에 다름없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와 '남성성'이 만나면 

힙합에서의 혐오 발언을 지적하면 많은 이들이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옹호한다. 실제로 이번 브래디스트릿의 가사 논란과 관련하여 힙합 커뮤니티의 일부 누리꾼들은 "음악은 그냥 음악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하면 안 들으면 그만이다"라거나 "이래가지고 한국에서 힙합할 수 있겠느냐"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결과물을 대중에게 내놓을 기회가 주어졌을 때부터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후에 부적절한 내용이 있다면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고, 또 비판받아야 한다. 힙합이 예외일 수 없음은 자명하다. 힙합이라고 강간과 성희롱 등을 부적절하게 언급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없다. 앞서 말한 릭 로스의 과거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 여성의 성을 유린하고 소비하는 것이 용인되는 일종의 '강간 문화'(rape culture)와 잘못된 형태의 남성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는 저서 <지금 여기 힙합>(2017)에서 "상업화된 힙합음악은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강화하고, 여성의 성 상품화를 당연시하고, 여성을 열등한 것으로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여성혐오적인 문화를 자연스럽게 향유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한 힙합은 남성성의 문화로 인식되면서 그러한 지배적인 남성성을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에 도달하기 위해 소수자를 짓밟는 일이 용인되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힙알못(힙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취급받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하지만, '원래 그래도 되는 것'은 없으며, 힙합이라는 장르 또한 한 사회의 여러 가지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래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에 무감각한 한국 힙합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다. 언제까지 비뚤어진 남성성을 찬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힙알못’ 취급하며 눈과 귀를 가릴 것인가?

래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에 무감각한 한국 힙합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다. 언제까지 비뚤어진 남성성을 찬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힙알못’ 취급하며 눈과 귀를 가릴 것인가? ⓒ 오마이뉴스

 
결국 한국 힙합은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윤리적 수준에 대해 통렬하게 고민해야 한다. 브래디스트릿의 가사 논란은 래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한 채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에 무감각한 한국 힙합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다. 언제까지 비뚤어진 남성성을 찬양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힙알못' 취급하며 눈과 귀를 가릴 것인가?
한국힙합 소수자혐오 남성성 브래디스트릿 시대변화를_따라가는_랩가사는_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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