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타계한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지난 29일 타계한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 영화사 진진

 
지난 29일 타계한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1928-2019)는 1950-60년대 태동한 프랑스 영화운동 '누벨바그'의 일원으로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언급되는 독보적인 존재다. 영화 외에도 사진,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조예가 깊었던 바르다 감독은 극영화 외에도 다큐멘터리, 미디어 아트 전시 등 전방위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나갔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지난해 국내 개봉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외에도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신작 <바르다 바이 아녜스>(2019)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감독이기에 그녀의 부고는 바르다를 사랑했던 수많은 영화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지난 3월 26일부터 오는 4월 1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획 상영 중인 '시네마테크 아카이브 특별전-아녜스 바르다(이하 바르다 특별전)'는 바르다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으로 본의아니게 고별전, 추모전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된 아녜스 바르다의 단편영화 <3개의 단추(Les 3 Boutons)>(2015)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된 아녜스 바르다의 단편영화 <3개의 단추(Les 3 Boutons)>(2015) ⓒ 미우미우

 
팬들이 사랑했던 바르다

전세계 영화팬들 사이에서 '누벨바그의 할머니'로 불리며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 했던 바르다는 주류 영화의 문법을 과감히 해체하며 매번 낯선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낸 독창적인 작가이자, 여성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한 페미니즘 감독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계의 어른으로 후배 예술인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열린 제71회 칸영화제에서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맡았던 케이트 블란쳇, 크리스틴 스튜어트, 레아 세이두 등 총 82명의 여성영화인들과 함께 영화계 성평등을 요구하는 레드카펫 시위에 참여하며 행동하는 예술가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5년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캠페인 일환으로 바르다와 협업하여 제작한 단편 <3개의 단추(Les 3 Boutons)>는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멤버로 전세계 영화 흐름을 주도 했던 할머니가 자라나는 손녀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선물 같은 영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7mkuSTzf_Pw&feature=youtu.be

영화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에 거주하는 14살 소녀 재스민은 우체부에게 정체모를 소포를 받는다. 소포 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녀보다 몇 배 더 큰 다홍색의 무도회 드레스. 호기심에 이끌려 드레스 주름 속 들어간 재스민은 동굴과 같은 드레스 안 세계에서 또다른 빨간 드레스를 마주한다. 그런데 재스민이 드레스를 만지는 순간, 화려한 드레스가 누더기 옷으로 탈바꿈 된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재스민은 무도회 드레스, 누더기 옷으로 상징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자신과 맞지 않으며, 오직 동화에서만 존재하는 물건이라고 선을 긋는다.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된 아녜스 바르다의 단편영화 <3개의 단추(Les 3 Boutons)>(2015)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된 아녜스 바르다의 단편영화 <3개의 단추(Les 3 Boutons)>(2015) ⓒ 미우미우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된 아녜스 바르다의 단편영화 <3개의 단추(Les 3 Boutons)>(2015)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된 아녜스 바르다의 단편영화 <3개의 단추(Les 3 Boutons)>(2015) ⓒ 미우미우

 
이윽고 동굴 밖으로 나온 재스민은 교복을 입고 무리를 지어 걷는 또래의 여학생들과 마주한다. 재스민 또한 재빨리 교복으로 갈아입고 그녀들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이 때 단추 하나가 슬그머니 떨어진다. 이후에도 재스민이 길을 걸을 때마다 단추 2개가 연이어 떨어지는데, 단추가 떨어질 때마다 재스민은 새로운 다짐을 하고 변화를 선언한다. 

첫번째 단추가 떨어졌을 때, 교육에 눈에 뜬 재스민은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각성한다. 이후 시내 거리로 나선 재스민은 두번째 단추가 떨어지는 도중,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소년의 시선과 마주한다. 하지만 재스민은 남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세번째 단추가 떨어졌을 때 재스민은 무언가 잃는 것을 싫어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11분 남짓의 다소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짧은 단편 영화이지만, 바르다가 <세 개의 단추>를 통해 젊은 여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명료 하면서도 구체적이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질문하고 선택하고 사랑하는 주체적인 삶.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뜬 14세 소녀는 예쁜 드레스를 입으면 백마 탄 왕자님이 자신을 구원해준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대신 소녀는 교육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계획, 결정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지난 29일 타계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지난해 국내 개봉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외에도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신작 <바르다 바이 아녜스>(2019)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후배 영화인들의 귀감이 된 바 있다.

지난 29일 타계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지난해 국내 개봉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외에도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신작 <바르다 바이 아녜스>(2019)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후배 영화인들의 귀감이 된 바 있다. ⓒ 영화사 진진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든 바르다는 여성운동가가 되기 전부터 영화 속 여성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서 끝없는 고민을 이어왔다. 바람난 남편으로 인한 여성의 파멸을 통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행복>(1964), 결혼과 출산, 육아, 낙태를 둘러싼 두 여성의 연대기를 다룬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6) 등 누벨바그 다른 남성 감독들과 다른 시선과 관점에서 여성의 삶을 보고자 했던 바르다의 영화에는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성이 있었고, 그녀들을 응원하는 연대 정신이 있었다. 

후배, 여성 영화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녜스 바르다의 대표작으로는 <행복>,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외에도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방랑자>(1985),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2008) 등이 꼽힌다.

오는 1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바르다 특별전에서는 발표 당시 '누벨바그의 진정한 첫 번째 영화'로 격찬받았던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을 포함, 최근작인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까지 총 11편의 바르다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영화를 사랑했고, 후배 영화인들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바르다의 온화한 미소를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로 기억될 듯 하다. 
아녜스 바르다 세 개의 단추 여성 누벨바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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