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상> 포스터

영화 <우상>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 우상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다. 누구나 자신이 믿고 따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신념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사람이라면, 자신의 부모일 수도 있고, 자식과 같은 아랫사람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멀리 보면 사회 지도층이나 연예인들도 누군가의 우상이 될 수 있다. 그 우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자신의 해석이나 판단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다. 스스로가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혼합되어 그 대상을 믿고 숭배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자신의 삶에 서서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가 바라보고, 되고 싶은 우상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 우상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그 우상의 모습을 대단히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 우상과 평행선에 서게 되면 자신도 행복해질 거란 어떤 믿음을 자기고 최대한 그 우상이 나아가고 있는 길옆에 서길 고대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우상이란 대단한 존재다.

진심과 거짓 사이

 
 영화 <우상> 장면

영화 <우상> 장면 ⓒ CGV아트하우스

 
영화 <우상>은 도의원 구명회(한석규), 지체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중식의 조선족 며느리 련화(천우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구명회가 출장에서 돌아온 사이, 그의 아들이 음주운전 뺑소니로 중식의 아들을 죽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명회라는 인물은 차기 도지사 후보인 정치인인데 아들의 사고를 알게 된 후에는 아주 냉정하게 자수를 권유한다. 얼핏 아주 도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그는 우리가 매스컴에서 많이 보아 왔던 정치인들의 반듯한 이미지와 교차된다. 

영화 속에서 그는 아들을 교도소로 보내고 진정한 사과를 하며 연신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실제로 그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린다. 그가 하는 사과가 진심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건 아들의 사고로 인해 정치인으로서 유리한 어떤 드라마적 요소가 그의 인생에 생겼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행동이 그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영화의 중반까지 알기 어렵다.

반면 중식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되는데, 많은 것을 평생 해주었고 조선족과 결혼도 주선하고 심지어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자위를 시켜줄 정도로 가능한 모든 것을 해주었다. 아들은 중식의 우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 어떤 인물을 위해서라면 돈이 아깝지 않고 일단 행동으로 실행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들을 숭배했고 그 숭배는 며느리 련화에게로 그대로 전이된다. 아들의 죽음으로 숭배 대상을 며느리로 바꾼  것인데 그는 그 대상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련화는 영화의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인물이다. 피해자인 듯 하지만 그가 가진 사연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정말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단번에 판단하기 어렵다. 어느 날 중식에게 귀화를 할 수 있는 결혼 서류를 받아본 순간 환하게 웃는 련화의 모습은 그가 가진 결혼의 목적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 이외의 장면에서는 그가 웃거나 밝은 모습을 보기 어렵다.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련화야 말로 가장 솔직한 인물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기에 그는 영화 끝까지 영화에 예측 불가능한 긴장감을 불어 넣어준다. 가장 약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회의 가장 바닥에 있는 그는 더 잃을 것에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이 그 인물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구명회는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는 정치인으로 자신이 휘말린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번번이 중식의 저항과 조사에 막힌다. 기본적으로 구명회는 자기 자신이 갈 수 있는 높은 정치인으로서의 권력을 숭배한다. 중식은 자신이 숭배하는 죽은 아들에 대한 힘으로 그 권력에 철저히 저항하며 실종된 며느리를 찾는다. 하지만 며느리를 찾은 이후 며느리와 관련된 어떤 비밀을 알게 되는데 그 시점 이후부터 중식은 구명회와 같은 길을 걷는다.

영화 중반 병원에서 어떤 환자의 죽음을 알리는 바이탈 사인 그래프가 모두 평행선을 그릴 때, 구명회와 중식의 길도 평행선이 된다. 즉, 구명회가 아들을 위해 행동하며 판단했듯이, 중식도 며느리를 위해 똑같은 판단을 하고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렇기에 영화에서는 좋은 인물과 나쁜 인물의 선악 구도가 형성되지 않으며 모두 이중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 평행 구도를 깨버리는 건 바로 련희다. 그는 어떤 불규칙성으로 그 둘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이순신 장군을 목을 치다
 
 영화 <우상> 장면

영화 <우상> 장면 ⓒ CGV아트하우스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 이순신 장군의 목이 처참히 잘려버린 장면이 나온다. 많은 사람의 우상인 이순신 장군의 머리를 보여줌으로써 인물들이 숭배하는 존재들이 모두 망가지거나 심하게 일그러졌음을 보여준다. 각자가 본인의 위치에서 바라보던 그 대상이 자신이 생각했던 결과를 불러오지 못할 때, 그 우상을 바라보던 인물들은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갈 방향을 잃어버린다. 영화 <우상> 속 인물들은 영화 내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앞을 나아가는 것 같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우상의 문제점이 드러날 때마다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목적은 점점 희미해져 버리고 만다.

사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승리나 정준영 같은 연예인들도 많은 사람의 우상 중 하나다. 그들이 가진 이미지는 인기가 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그들을 숭배하며 믿고 따랐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그들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우상이었던 그들의 목은 잘려나갔다. 그들의 목을 잘라낸 건 다름 아닌 그들의 팬들이다. 그만큼 분노했으며, 그 목을 잘라 형체를 알 수 없게 부숴버릴 정도로 그 우상의 존재는 파괴되었다.

중식이 잘라 파괴해 버린 이순신 장군의 얼굴은 그 자신이 대상화하고 우상화했던 존재를 이제 포기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자신이 믿었던 우상들은 모두 생각과는 다르게 추악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 추악함은 중식 본인도 파괴해 버렸다. 그에게 남은 건 거의 없어 보인다. 구명회 역시 영화 말미 얼굴과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그는 망가진 우상이지만 그 자신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또 다른 우상이 되어버린다. 그가 가진 상징성은 수없이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추악한 잘못을 하고 나서 많은 것을 잃었음에도 또다시 나타나 누군가의 우상이 될 수 있는 그들은 어쩌면 중식과 같은 우민들을 수도 없이 이용하고 선동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상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영화 <우상>은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이 시대에 수도 없이 만들어지는 우상들을 고발한다.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련화 역의 천우희다. 그는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관객에게 섬뜩함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덕분에 영화가 끝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세 인물은 서로 세밀하게 얽혀 영화의 결말에는 그 관계가 폭주한다. 이렇게나 영화가 끝까지 힘을 가질 수 있는 건 세 배우의 연기가 큰 역할을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영화우상 천우희 한석규 설경구 한공주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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