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제 방송에 고정 출연한 이희진씨의 모습.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화면 캡처.
 경제 방송에 고정 출연한 이희진씨의 모습.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화면 캡처.
ⓒ JTBC

관련사진보기


유사수신행위와 투자 사기 등으로 수감 중인 일명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3)씨가 다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씨의 부모가 살해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체포된 살해 용의자 김아무개씨는 이씨 아버지가 자신에게 빌려간 2000만 원을 갚지 않아 이로 인한 "돈 문제로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과정에서 집 안에 있던 5억 원을 가져갔다고도 말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일부에선 이번 사건이 이씨의 투자 사기 사건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사건에 덩달아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도 단순 채무 관계로 인한 범죄, 5억 원을 노린 강도 살인뿐 아니라 이씨와의 관련성까지 포함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불법 주식거래 및 투자사기 등의 혐의로 지난 2016년 9월 초 구속됐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피해자만 211명, 피해액은 무려 271억 원이었다. 그는 결국 지난해 4월 1심 재판에서 자본시장법과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징역 5년과 벌금 200억 원, 추징금 130억 원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중엔 여윳돈뿐 아니라 전 재산·부동산·퇴직금·노후자금·자녀 결혼 비용·보험해약금, 심지어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올인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피해 복구는 불투명하다.

18일 1심 판결문을 인용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피살된 어머니 황아무개씨는 아들 이씨가 설립한 투자회사의 대표였다. 황씨는 주식매매대금 등의 돈 관리를 맡고, 이씨를 대신해 증권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황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범인 동생 이희문(31)씨는 현재 구속기간 만료로 풀려나 있는 상태다. 이씨 본인은 일당 1800만 원을 감하며 노역 중으로 알려져 '황제노역'이라는 성토가 나오고 있다. 이씨는 "벌금을 낼 돈이 없다"며 판결에 불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 재산을 쏟아붓고 이혼·실직 및 가정 파탄을 겪는 등 피해자의 고통은 극에 달했지만, 정작 가해자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이러한 경제 범죄는 살인·폭력 같은 강력범죄 못지않게 피해자 본인과 가족을 깊은 고통의 나락에 빠뜨린다. 하지만 강력범죄에 견줘 처벌 수위가 높지 않다 보니 출소 뒤 범죄가 반복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금전 사기'나 '다단계' 등의 유사수신행위 범죄 피해자가 줄지 않는 이유다.
  
방송사 내부에서조차 더는 출연시키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한국경제TV에 출연한 이희진씨
 한국경제TV에 출연한 이희진씨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이러한 사기 피해자는 동정받기보다 뻔한 수법에 속은 순진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잘 알아보지 않고 왜 그런 것에 속았느냐'는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두 번 상처를 받곤 한다. 지난 2016년 사건 직후 언론에 출연해 목소리를 낸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이씨를 출연시켰던 방송을 믿었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이씨를 출연시키고, 그를 주식 전문가로 내세웠던 언론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일까. 이씨는 2014년 12월부터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2016년 9월까지 한 경제 전문 방송에 출연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모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5개월간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2016년엔 케이블 채널의 음악 방송에도 나올 만큼 인지도를 쌓았다.
 
이희진씨는 2014년 12월부터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2016년 9월까지 한 경제 전문 방송에 출연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모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5개월간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2016년엔 케이블 채널의 음악 방송에도 나올 만큼 인지도를 쌓았다.
 이희진씨는 2014년 12월부터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2016년 9월까지 한 경제 전문 방송에 출연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모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5개월간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2016년엔 케이블 채널의 음악 방송에도 나올 만큼 인지도를 쌓았다.
ⓒ TV조선 캡쳐

관련사진보기

 
지난 2016년 10월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이씨가 출연했던 모 경제 방송 내부에서 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니 더는 출연시키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제보자의 육성에 따르면 "이제 그만 출연시키자고 했을 때, 이미 회원수가 올라가자, 인터넷 유료방송 쪽에서 계속 출연시키자고 했다"고 주장해 출연이 지속됐다.

방송의 후광과 파급력을 배경으로 이씨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돈 번다" "현금을 준비하세요" "원금 보전을 약속한다" 등 '홈쇼핑' 방송처럼 집요하게 투자를 유도했다. 이는 모두 방송에 나와 한 발언들이다. 그는 원금 보전을 해주겠다고 여러 차례 말하면서 강한 믿음을 심어줬지만, 주식이 폭락해 투자자가 항의하면 나몰라라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해당 경제 방송에 투자자들은 월회비 90만 원대를 내고 유료 회원으로 가입, 이씨의 방송을 시청했다. 방송사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에서 해당 방송은 그가 문제가 있다는 내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연을 막지 않았고 수익을 나눠 가졌다.

사건 당시 경찰이 확인한, 회수 가능한 그의 재산은 수입차 3대와 통장 잔고 20억 원뿐이었다. 그러나 앞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직접 입수한 유료 회원 명단을 근거로 이씨가 5000명 이상의 회원 수를 확보했고, 해당 방송과 5 대 5로 수익을 나눴다고 가정하면 최대 한 달에 2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분석했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방송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이 확보한 이희진씨 프로그램 관련 모 경제방송사 유료회원 명단. 제작진은 수익을 이씨와 방송사가 5 대 5로 가져갈 경우 한달 수익이 20억원 가량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수익 배분 구조는 해당 방송사의 대외비이므로 밖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이 확보한 이희진씨 프로그램 관련 모 경제방송사 유료회원 명단. 제작진은 수익을 이씨와 방송사가 5 대 5로 가져갈 경우 한달 수익이 20억원 가량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수익 배분 구조는 해당 방송사의 대외비이므로 밖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 JTBC

관련사진보기

 
사실 그의 범죄 행위는 새로울 것이 없는 익숙한 패턴이다. 범죄 피의자가 방송을 이용해 자신을 포장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송에 나와 명성을 떨쳤는데 알고 보니 사실과 다르더라 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피해는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방송사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금융 전문가는 본인의 방송 출연담을 기자에게 직접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관련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경력도 매우 출중했다. 그는 한 방송사로부터 투자 전문가로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방송에 나갔다. 막상 출연을 하니 방송사를 신뢰하기 어렵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해서 1회 출연을 끝으로 더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방송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경제 전문 방송사였다. 이 전문가는 이후 사람들에게 금융 및 투자지식을 전하는 책을 여러 권 썼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컨설턴트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웠다. 기자가 만난 소위 전문가들은 그 분야가 무엇이든 진짜 전문가는 방송에 함부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이씨를 출연시킨 방송사들도 항변할 수 있다. 피디(PD) 및 방송 작가 개개인이 자신의 경험치 내에서 출연자의 경력과 의도를 일일이 파악·검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식 투자 전문가의 경우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방송사는 출연자가 방송에 출연해 책임 있는 발언을 할 만한 사람인지 잘 검증해야 하고, 이것은 언론과 방송제작의 기본 윤리라고 할 수 있다.

방송도 연대 책임 지도록 하는 판결 나와야
 
지난 2016년 10월 방송된 JTBC 시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이희진씨가 경제 방송 유료회원 수익금 등을 무기명 채권이나 장외 주식에 투자해 은닉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2016년 10월 방송된 JTBC 시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이희진씨가 경제 방송 유료회원 수익금 등을 무기명 채권이나 장외 주식에 투자해 은닉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 JTBC

관련사진보기

 
마찬가지로 사건 해결엔 법원과 검찰 등 공적 기관의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다. 검찰은 이번 부모 살해 사건으로 불거진 이씨 부모 명의로 된 은닉 재산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답변할 의무가 있다. 피해자 모임이 개설한 카페에 따르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 이씨를 상대로 피해자 단체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씨 개인에 대한 민사소송도 필요하지만, 방송사를 피고로 한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도 검토해 볼 수 있다. 만약 방송사가 이씨에게 '공신력'을 줬다면, 피해자들이 언론사에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법정에서 다퉈볼 만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 언론 전문 변호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법원이 이씨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그를 출연시킨 방송들도 연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방송사가 좀 더 책임 있는 방송을 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아울러 투자자 개인의 책임 의식도 중요하다. 돈을 벌려면 남을 믿고 투자금을 맡기기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방송사의 검증 시스템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피디나 작가 등 방송국 관계자 개인의 검증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보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태그:#이희진, #청담동주식부자, #증권방송, #부모살해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