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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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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사건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경찰·국세청 등의 고의적인 부실수사와 조직적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입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행히 본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18일 문 대통령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위와 같이 지시했다. 국민들이 강한 의혹을 제기하는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같은 날,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 조사를 포함해 대검찰청 진상 조사단의 활동을 두 달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장자연 사건'의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씨는 법원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윤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언급을 해 주셨고 과거사위도 연장됐다고 해서 (울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언론에 이렇게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이 저도 사람이라 심리적으로 힘든데, 가해자 보라고 계속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 정의가 구현돼서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고, 불가피하게 그렇지 않더라도 죄의식이라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씨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채 카메라 앞에 서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윤씨는 앞서 고 장자연 10주기였던 지난 7일을 전후해 KBS <뉴스9>을 비롯해 수많은 TV 뉴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연예 프로그램, 인터넷 언론, 팟캐스트 등 매체와 장르 구분 없이 인터뷰를 진행해 왔다. 자신의 SNS를 통해서 편집에 위험이 없는 생방송 위주로 출연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10일엔 또 이런 글을 남겼다. '책 홍보'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윤씨가 인터뷰에 나서는 나름의 이유와 원칙을 알 수 있는 문장이었다.

"시차 적응할 시간도 없이 단시간 많은 인터뷰를 한 것은 제가 알리고자 하는 사실을 다뤄줄 수 있는 매체라 인식하여 모든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나선다면 많은 변화가 생기고 저를 섣불리 해하지 않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왜곡되지 않는 진실만을 전할 수 있는 곳에서만 인터뷰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18일 MBC <뉴스데스크>는 윤씨를 스튜디오에 초대,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했다. 왕종명 앵커와 1대1 형식이었고 인터뷰 시간은 6분 정도였다. 뒤늦은 감이 있는 이 인터뷰가 화제(?)를 낳고 있는 이유는 윤씨의 의도대로 진실이 전해져서가 아니다. 왕종명 앵커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직접 본다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왕종명 앵커의 집착, 윤지오씨의 현답
 
18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씨.
 18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씨.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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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름을) 발설하면 책임져 주실 수 있나요?" 

잠시 생각하던 윤씨가 왕종명 앵커에게 물었다. 급작스러운 반문에 왕 앵커는 "저희가요?"라며 "여기 (뉴스 스튜디오) 안에서는 저희가 어떻게든지…"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어 윤씨는 왕 앵커의 말을 자르며 "안에서는 몇 분"이라며 아래와 같이 명쾌하면서도 쉽지 않은 답을 내놨다.

"이 이후로도 저는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검찰, 경찰에 일관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검찰, 경찰이 밝혀내야 하는 부분이고, 공표하고 말씀해 주셔야 하는 부분이 맞고요. 저는 일반 시민으로서, 증언자로서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문에 대한 현답이 아닐 수 없었다. 왕 앵커는 이날 "공개"란 단어를 몇 번씩 써가며 윤씨를 압박했다. 아니, 집요하다는 표현이 걸맞았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왕 앵커의 의도는 이 자리, 그러니까 자사 생방송 뉴스에서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해 윤씨가 봤다는 '장자연 문건' 속 이름들을 터트리라는 것. 즉, 특종을 '발설'하라는 요구였다. 윤씨가 책임을 거론한 왕 앵커의 질문이 딱 그랬다.

"그럼 이런 말씀 드려 볼게요. 윤지오씨가 검찰 진상조사단에 나가서 말하는 것과 생방송으로 진행 중인 뉴스에서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이고, 어쩌면 윤지오씨처럼 용기를 내서 나오시는, 장자연씨 죽음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생방송 뉴스 시간에 밝히는 게 진실을 밝히는 데 빠른 걸음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 안 해 보셨어요?"

윤씨의 심경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윤씨가 '유일한 증언자'인지 '피해자'인지 아님 가해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왕 앵커의 '공개'와 '이름'에 대한 집착은 인터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종명 앵커는 이날 '방씨 성을 가진 세 분'을 비롯해 과거 고 장자연씨와 같은 소속사 연예인, 그리고 특이한 이름의 정치인 등의 실명을 계속 요구하며 그쪽으로 인터뷰의 방향을 집중시켰다. 인터뷰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왕 앵커의 우문에 윤씨는 자신이 왜 진상조사단에서만 실명을 포함한 진술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을 해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미행에도 시달리고, 여러 차례 이사했던 적도 있고, 결국엔 해외로 도피하다시피 갈 수밖에 없었던 많은 정황이 있고요. 귀국을 하기 전에도 한 언론사에서 전화해서 제 행방을 묻기도 했어요. 오기 전에도 교통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고. 

여러 상황상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말씀을 드리지 않는 것은 앞으로 장시간을 대비한 싸움이기 때문에 지금 말씀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분들이 명예훼손으로 저를 고소하시면, 저는 더는 증언자, 목격자라는 신분이 아닌 피의자로서 명예훼손에 대해 배상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단 1원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쏟아진 비판들, 이유 있다
 
배우 윤지오씨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 장자연씨 강제추행 관련 재판에서 증언한 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연장 소식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배우 윤지오씨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고 장자연씨 강제추행 관련 재판에서 증언한 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연장 소식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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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윤씨의 입에서 나오는 실명이, '특종'이 간절했던 걸까. 하필 이날은 MBC <뉴스데스크>가 방송 시간을 '30분 빨리, 30분 많이' 확대 편성한 개편 첫날이었다. 단독 인터뷰 역시 윤씨가 유일했다. 만약 왕 앵커가 인터뷰이에 대해, 윤씨가 그간 언론 인터뷰에 어떻게 임해왔고, 어떤 심경이었는지에 대해 조금만 '공부'를 했다면 저러한 인터뷰는 진행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제가 이제껏 언론에서 공개한 내용들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며칠 사이 저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인터뷰는 저의 유명세나 출세를 전혀 보장해줄 수 없는 오히려 제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윤씨가 SNS에 쓴 글이다. 여타 인터뷰와 비교한다면, 이날 <뉴스데스크>의 '막무가내' 인터뷰는 더욱 도드라진다. 작년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JTBC <뉴스룸> 서지현 검사 인터뷰와 비교해도 그렇다. 이미 서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가해자들의 실명을 거론해 놓은 상태였다. 그와는 별개로, 대체로 인터뷰는 서 검사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형태로 진행됐다는 인상이 강했다.

18일 하루 여러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한 진상조사단의 총괄팀장인 김영희 변호사의 인터뷰도 특기할 만하다. 김 변호사는 수차례 실명을 확인하는 인터뷰어들의 질문에 지속적으로 "조사 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며 언급을 피해갔다.

하지만, 김 변호사와 윤씨의 입장은 다르다. 여러 차례 협박을 받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힌 윤씨에게 인터뷰 내내 '실명 거론 압박'을 이어간 <뉴스데스크>의 입장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지금 윤지오씨 입장은 한꺼번에 다 얘기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두고 싸우겠다는 입장이라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는 기사를 봤는데, 충분히 존중하고 좀 더 안심하고 사회에 알릴 수 있도록 설득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MBC <뉴스데스크>가 윤씨를 '압박'하던 그 시간,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 변호사는 "윤지오씨가 기억력이 좋다"며 위와 같이 말하고 있었다. 다시 묻자. 과연 이날 <뉴스데스크> 왕종명 앵커의 인터뷰어로서의 태도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반대로, 이날 인터뷰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왜 공익제보자와 같은 이들이 도리어 피해를 입는지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트위터 등 SNS에서 쏟아진 비난은 굳이 전하지 않겠다. 자사 메인뉴스에 대한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이 날 인터뷰를 본인이 찬찬히 한 번 복기해 보길 권한다. 문 대통령이 왜 "힘없는 국민", "억울한 피해자"를 언급했는지와 함께.

같은 날, 윤지오씨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활동 연장 소식에 "국민 청원으로 이뤄진 기적 같은 일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이 글 역시 다시 한번 읽어 보길. 적어도 이 글만 읽었다면, 왕 앵커가 그리한 무리수를 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에.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 됐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아직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겠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과 처음으로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문재인 대통령님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

태그:#윤지오, #장자연,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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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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