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은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장자연씨의 1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배우 장자연씨는 2009년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즈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언론은 우울증을 자살 이유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후 '장자연 문건'이 세상에 공개됐다. 장자연씨가 기업인과 유력 언론사 관계자, 연예기획사 관계자 등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게 문건의 내용이었다. 이에 국민들이 분노했지만 그 후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8년이 흐른 지난 2017년 말 검찰 과거사 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고 최근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9년 '장자연 문건'을 처음 보도한 임종빈 KBS 기자로부터 문건을 발견한 당시에 관해 듣고 싶어 지난 12일 그를 경기도 고양 화정역 근처에서 만났다. 다음은 임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쓰레기봉투에서 타다 만 '장자연 문건' 발견해 보도
 
 임종빈 KBS 기자

임종빈 KBS 기자 ⓒ 임종빈 제공

 
- 지난 7일은 고 장자연씨 사망 10주기였잖아요. 기자님은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최초 보도했고요. 10주기를 맞이하는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지금 이것저것 새로 드러나는 것들이 10년 전에는 저도 몰랐던 내용이고 이전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었잖아요. 그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요. 저는 그 1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그 당시 취재가 탄탄하지 못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고요. 제 할 일을 못했다는 자책감이 느껴지는 거죠."

- 기자들이 전반적으로 취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거잖아요. 왜 그랬을까요?
"사실 수사는 수사기관이 해야 하고 기자들은 그 수사 과정을 취재하는 게 일인데. 당시 수사가 부실했다는 방증이겠죠."

- 쓰레기봉투에 있는 조각난 문건을 퍼즐 맞추기를 하듯 복구하셨다고 들었어요. 쓰레기봉투를 뒤질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처음 취재한 날이 장자연씨 전 매니저인 유장호씨가 기자회견을 한 날이었는데요. 저에게 취재 지시는 (그날) 오후에 내려왔거든요. 유장호씨 사무실이 강남 쪽에 있었고 저는 강남 경찰서 출입 기자였어요. '그런 리스트가 있으니 사무실 찾아가서 구해오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복도에 쓰레기봉투가 나와 있었어요. 그걸 뒤지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사무실을 촬영하기 위해 쓰레기봉투를 옮겨야 했거든요. 옮기는 과정에서 봉투 윗부분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회의록 같은 종이가 조각조각 찢어져서 위에 있더라고요. 살짝 뒤졌더니 쓰레기봉투 안에 작은 봉투가 있었고 그 안에서 불에 그을린 문건이 나왔거든요. 그걸로 1차 보도하고 봉투를 들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 나중에 가서 봉투를 들고 나온 다음에 엎어서 뒤지게 된 거죠."
 
 KBS <뉴스 9>은 19일 고 장자연씨 문건 파문과 관련해 <장씨 유족, 언론사 대표 등 4명 고발> 등 상세히 보도했다.

KBS <뉴스 9>은 지난 2009년 3월 19일 고 장자연씨 문건 파문과 관련해 상세히 보도했다. ⓒ KBS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종이는 기계로 파쇄한 게 아니라 손으로 찢은 거였나요?
"네. 파쇄한 게 아니에요. 찢어진 문건은 테이크 아웃 커피잔 속에 있었는데 커피가 얼룩덜룩하게 묻어 있는 상태로 손으로 찢은 듯한 모습이었어요."

- 그 문건을 직접 봤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봉투 속에 불에 그을린 문건이 있었는데요. 처음 보인 문구가 '저는 힘없는 여배우 장자연입니다'였고 이름 세 글자가 보였어요. 뭐든 구해오라는 취재 지시를 받고 가서 문건을 발견했다는 안심도 들었습니다."

- 어떤 모양인지 모르니 찢긴 문건 맞추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불에 탄 문건과 찢어진 문건은 같은 건데, 불에 탄 문건 일부가 남아 있어서 어느정도 핵심적인 내용은 틀이 정해져 있었죠. 그리고 찢어진 문건도 섞어 놓은 게 아니라 찢어서 겹쳐놓은 거라 그걸 조합하는 데에는 복잡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오래 걸렸죠. 네 장 정도 조합하는 데 6시간 걸린 것 같아요."

- 그 과정이 힘들진 않았어요?
"그땐 그걸 하나씩 맞춰가는 데 성취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힘들진 않았어요."

"보도 후 <조선일보>로부터 1억5천만 원 소송 들어와"

- 이전엔 장자연씨 사건에 관해 어떻게 알고 있었나요?
"사실 저는 그전까지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왜냐면 장자연씨 주소지가 경기도 성남이었거든요. (사건) 관할 경찰서가 성남 경찰서였어요. 제 관할이 아니라서 큰 관심은 없다가, 당일 유장호씨 사무실이 강남이라는 이유로 저에게 지시가 내려와서 그때부터 알았죠."

- 그 당시 보도가 나간 후 <조선일보>에서 압박이 상당했을 거 같은데.
"당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사내 기자들에게 '자기는 아니니까 각자 맡은 일 열심히 하라'는 입장문을 배포했다고 들었거든요. 저는 당시 낮은 연차의 기자였고 문건에서 당사자로 지목된 사람이 깔끔하게 부인하니 오히려 소송보다 그게 심리적으로 압박이었어요. 직접적으로 외압을 받았다기보다 이 문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시에는 모르잖아요. 그러나 문건에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다음 날 부인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라는 심리적 압박감이 컸죠.

그리고 실제적으로 외압이 들어온 건 소송이었어요. 1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들어왔고 언론사에 <조선일보>가 직접적으로 입장문을 보냈어요. 원래는 보도자료 형태로 나오는데 <조선일보>는 이례적으로 각 언론사에 자사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압박을 문서 형태로 보냈죠."

- 충격이었겠어요.
"그렇죠. 그때 소송 처음 걸렸거든요. 당시 만 2년 갓 지난 3년 차 기자였어요. 1억 5천만 원이라는 금액은 다른 소송에 비해 적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 7천만 원짜리 전셋집에 살았는데 두 배 넘는 돈이 소송 가액으로 들어오니까 충격이었죠."

- 그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조선일보>가 원고였는데 패소했죠. 단지 <조선일보>가 2심에서 항고하지 않은 이유는 문건의 일부 내용이 허위라고 재판부가 적시했기 때문이에요. 재판부가 자기 회사 관련된 걸 허위로 인정해 줬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다음에 소송을 접었죠."

- <조선일보>가 패소했지만 일부 허위로 인정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네요.
"그건 손해배상 소송이었고, 명예훼손은 제가 개인적으로 <조선일보>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서 이걸 보도했는지 가리는 소송이었거든요. 저는 공익적 목적으로 보도한 점이 인정되어서 위법성이 조각되었던 거죠. 그래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지만, 문건에 일부 허위가 있다는 판결을 했죠."

- 2009년 수사 과정도 취재하셨을 것 같은데, 당시 수사는 어땠어요?
"그 당시 전 분당 경찰서에 상주했어요. 분당 경찰서에 수사본부가 꾸려졌고 거기에 따라 저희도 특별 취재팀을 꾸려 분당(경찰)서로 내려갔죠. 분당(경찰)서 출입 기자, 저, 다른 사회부 기자가 팀을 이뤄서 취재했는데 어린 연차인 제가 보기에 경찰이 분주했어요. 사실 경찰이 분주한 걸 처음 봤거든요. 경찰이 부실하게 수사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어요.

단지 지휘 라인에 있던 검찰에서 이 사건에 큰 의욕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는 거죠. 왜냐면 문건이라는 건 종이 네 장이 전부였고, 성접대는 밝히기 쉽지 않고, 피해자는 이미 사망해서... 검찰에서 계속 영장이 막힌다는 소리도 들었고요. 결과적으로 경찰이 7명 송치했거든요. 그러나 검찰이 기소한 건 2명이었어요. 다 무혐의와 불기소 처분을 내렸죠."

"실체에 근접한 진실이 밝혀지길"

- '장자연 문건'이 유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기자님도 말씀하셨던데요. 이 문건 이외에 유서 형식의 글은 따로 없었던 건가요?
"제가 입수한 문건은 총 네 장이었고 유서는 없었어요. 문건이 유서는 아니었고요. 누구도 유서를 그런 식으로 쓰진 않아요."

- 유서가 없었다면 왜 자살로 결론 난 거죠?
"자살 사건도 유서 없는 경우는 많아요. 제일 중요한 건 자살 현장에 외부 침입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인데 그런 부분에서 없다고 나온 거 같아요."

- 이후 고 장자연씨 사건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먼저 검찰에서 수사의지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죠. 사실 지금 밝혀지는 것들을 보면 그때 얼마든지 밝혀질 수 있었던 것들인데요. 검찰이 수사 의지가 없어서 수사를 부실하게 했으면 직무무기인 거고, 외압에 의한 부실수사가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핵심적으로 밝혀야 할 부분인 거죠.
 
‘장자연 사건’ 참고인 조사 마친 배우 윤지오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로 알려진 고인의 동료배우 윤지오씨가 12일 오후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장자연 사건’ 참고인 조사 마친 배우 윤지오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로 알려진 고인의 동료배우 윤지오씨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권우성

 
그리고 12일 윤지오씨가 검찰 출석해서 새로운 내용을 진술했더라고요. 사실 문건 자체는 중범죄자를 기술한 게 아니에요. 성 접대와 술 접대 수차례 받은 인물 누가 있는지 밝혀져야 할 부분이 많은 거죠. 문건에 나온 실명은 몇 개 안 돼요. 그리고 <조선일보> 같은 경우에는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돼 있어요. 그리고 '조선일보 방 사장 아들인 스포츠조선 방 사장'으로 되어 있어요. 확실하게 이름이 안 나오고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인물이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야죠. 방상훈 사장이 자기는 아니라고 했는데, 누구인지에 대해 아예 언급이 없었거든요. 이게 가장 핵심인 거죠."

- 윤지오씨 증언에 따르면 해당 문건에 국회의원 이름이 있었다고 했거든요. 기자님이 입수한 문건에는 그런 부분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윤지오씨에 따르면 문건은 총 7장이고 제가 입수한 건 그 중 4장이었던 거죠. 나머지 3장 가운데 한두 장이 진짜 리스트인 거 같아요."

- 국민이 왜 이 사건에 대해 관심 가져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장자연 사건이 이상한 부분이 많은 사건인 건 맞아요. 제일 이상한 건 장자연씨가 돌아가시기 1년 전 통화 기록 자체가 통째로 사라졌잖아요. 수사기관에서 증거로 제출된 통화기록 1년 치를 쉽게 빼낼 수 있는 거대 권력이 그동안 손을 뻗치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누군지 몰라요. 현실 속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려운 일을 쉽게 해내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이 사건 뒤에 있고. 그게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수사기관이 잘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하는 거죠."

- 마지막으로 하실 말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이 사건이 발생하고 1년 동안 사회부에 있으면서 나름 열심히 취재했지만 사회부를 떠난 후 9년 동안 이 사건과 거리를 두고 살았거든요. 그리고 10년이 지나 초기 수사가 부실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고 취재도 덩달아 부실했다는 게 증명되어서... 제가 이런 말하는 게 부끄럽지만, 윤지오씨처럼 용기내는 몇몇 사람에 의해서라도 실체에 근접한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탤런트 장자연 자택서 숨진채 발견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에 출연 중인 탤런트 장자연씨가 7일 오후 7시34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자택에서 목매 숨진채 발견됐다.사진은 지난달 27일 백상예술대상에 참가한 장자연씨.

배우 장자연의 생전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임종빈기자 장자연 KBS노조 장자연문건 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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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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