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봉 감독이 실제 남녀 치정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질투의 역사>로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는 10년 만에 다시 모인 다섯 남녀가 오랜 시간 묻어 두었던 비밀을 수면으로 꺼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멜로다.

이야기는 여성 주인공 수민(남규리 분)을 중심으로 맞춰진 영화다. 대한민국의 여자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지옥 같은 것일까. 영화는 수민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난 이후 남들에게 털어놓기 치욕스러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도 수민은 계속 살아간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 상대에게 겁탈당하거나 억압당한다.

자신의 의지가 있지만 번번이 그 의지조차 누군가에 의해 꺾여 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녀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아가지만 주변 남자들은 가만히 두질 않는다. 기다림을 강요받고, 착하게 살아가지만 피해만 본다. 영화에서는 단 한 번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데 이는 곧 비극으로 이어진다.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 (주)유앤정필름

 
질투의 역사를 말하는 정인봉 감독

5명의 남녀가 영화를 이끌어간다. 사랑과 질투, 이별과 만남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다. 도미노를 열심히 쌓다가도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듯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하면서도 흐름을 방해하는 설정들이 간혹 등장한다. 

실화를 모티브로 해서 한치의 거짓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영화 <장한몽>(1969)에서 보여준 '신파극급'의 설정이 <질투의 역사>에도 담겨있다.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을 받기 위해 해외 유학을 떠나는 원호(오지호 분)와 이를 기다리던 수민 사이에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하면서 뒤틀리는 설정은 요즘 시대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 (주)유앤정필름

 
영화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정석적인 장면들의 향연이다. 컷과 컷 사이의 간격이 영화보단 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빠른 호흡보다는 천천히 대사를 하고 대사와 대사 사이에는 긴 텀이 있다. 감독의 의도적 연출이었는지 요즘 개봉하는 영화답지 않게 영화는 굉장히 정직한 배열로 구성된다. 스토리는 어디선가 일어났을 법한 일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영화다.

정인봉 감독은 <기다리다 미쳐>에서 제작 및 단역을 통해 영화계로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영화 <길>, <순애>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그는 전작 <순애>와 <길>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주는 이야기들로 관객들과 만나왔다. 이번 영화 <질투의 역사>에서 그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너라면 달랐을까?'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주인공의 상황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다면 너라고 달랐을까'라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 수민의 삶은 순탄치 않다. 뉴스에서 나올 법한 파렴치한의 구렁텅이에서 한평생을 보낸 그녀의 삶에 대한 감독의 연민이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 (주)유앤정필름

 
반찬은 많은데 손이 가질 않는 밥상

지금 개봉하기엔 뭔가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저예산으로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영화라서 그런 걸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은데 전달이 잘 안 되는 편이다.

관계의 변화, 사랑에 빠진 달콤함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한 감정은 어떤 소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집중력을 흐리기도 한다. 제목 역시 <질투의 역사>지만 이에 상응할 만한 방대한 이야기보단 다섯 명의 치정관계에 더 집중되어 있는 스토리를 보면 제목을 먼저 짓고 영화 제작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 (주)유앤정필름

 
수민을 좋아하는 선기(조한선 분)가 사랑을 차지하는 방식 또한 추악하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술에 약을 타 범죄를 저지르면서 수민을 가지려고 시도한다. 최근 일명 '물뽕' 사건의 중심에 있는 '버닝썬' 논란이 한창이다. 이를 둘러싼 논란으로 가수 정준영에 이어 승리 등의 경찰 출석이 이어지고 있는 시기에 영화 <질투의 역사>에 등장하는 선기의 범죄 행위 장면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관객이 판단할 문제다.

극 중 사랑에 빠진 남녀가 갑자기 헤어지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나중에 알려주는 방식의 설정은 다소 불편할지도 모른다. 밝혀지는 과거들은 대부분 추악하거나 기억에 지우고 싶을 정도의 악질 범죄로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머릿속에 맴돈다. 

배우 남규리, 오지호, 장소연, 김승현이 각각 수민, 원호, 진숙, 홍을 연기했다. 여기에 특별출연으로 선기 역의 조한선도 가세했다. 가수 씨야 출신의 남규리가 수민 역을 연기한다. 2008년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에서 주연으로 데뷔하여 <인생은 아름다워>, <무정도시>, < 49일 >, <데자뷰> 등에서 열연했다. 그는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수민의 연기를 잘 소화해낸다.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영화 <질투의 역사> 한 장면 ⓒ (주)유앤정필름

 
원호 역의 오지호는 데뷔 21년 차 배우다. 영화 <까>에서 단역으로 출연하여 <신입사원>, <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처용>, <연애의 맛>, <커피메이트> 등 수많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드라마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여기에 배우 장소연, 김승현이 자신의 색깔 있는 캐릭터가 <질투의 역사>에서 비중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들은 각자 사랑, 짝사랑, 질투, 우정, 원한 등의 감정과 여러 관계를 그려나간다.  

한줄평 :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슬픔을 그린 영화
별점 : ★★(2/5)

 
영화 <질투의 역사> 관련 정보
제목 : 질투의 역사(The History of Jealousy)
감독 : 정인봉
출연 : 남규리, 오지호, 장소연, 김승현
제작 : (주)유앤정필름
배급 : 와이드 릴리즈(주), (주)스톰픽쳐스코리아
관람등급 : 15세이상관람가
개봉 : 2019년 3월 14일
 
 영화 <질투의 역사> 포스터

영화 <질투의 역사> 포스터 ⓒ (주)유앤정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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