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출신 한국계 미국인 배우 켄 정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 배우 중 성공한 축에 속하는 명사 중 하나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행오버2>(2011), <트랜스포머3>(2011),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 등으로 친숙한 켄 정은 MBC <일밤-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아래 <복면가왕>)의 미국판 FOX <더 마스크르 싱어>의 메인 패널단으로 활약한 바 있다. 이에 화답하는 의미에서 지난 1월 방영한 <복면가왕>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하여 방청석을 놀라게 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 켄 정의 모습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 켄 정의 모습 ⓒ MBC

 
여전히 인종 차별의 벽이 만만치 않은 미국에서 이민자 가정 출신 동양인 배우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굳이 그의 입을 빌려 듣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소수자 출신 백만장자를 자처하는 켄 정은 미국에서도 꽤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의사가 되었고, 배우로도 제법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의사로 활동한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ABC 시트콤 <닥터 켄> 시리즈의 기획자 및 주연으로 참여했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자로 우뚝 솟았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연출한 존 추 감독이 디렉터로 참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로그램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아래 <켄 정>) 켄 정에 관해 다루었다. <켄 정>에서는 평범한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켄 정이 의사가 되고, 유명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을 통해 흥미롭게 펼쳐진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로 만난 켄 정, 이건 아니다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 있어 까다로운 안목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난 넷플릭스가 켄 정을 단독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만으로도, 미국 내 켄 정의 인지도와 스타성, 혹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안겨준 영향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출연진 전원이 아시아계 배우들로만 구성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성공은 백인 중심으로 이뤄진 미국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싱가포르의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볼거리 또한 아시안 슈퍼 리치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식을 재고시켰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한 장면. 한국계 미국인으로 의사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켄 정의 인생 이야기를 다뤘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한 장면. 한국계 미국인으로 의사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켄 정의 인생 이야기를 다뤘다. ⓒ 넷플릭스

 
현재 미국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꼽히는 켄 정 또한 미국 백인들이 동양인에게 가지는 흔한 편견, 예컨대 한국 아이들은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과 '과잉 보호 때문에 공부만 잘하지 제대로 놀 줄 모른다' 등의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켄 정은 시종일관 시건방져 보이는 표정과 태도로 일관한다. 그는 공연을 보러온 백인 관객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농담도 서슴지 않고 던진다. 

애초 19세 이상 관람가로 제작된 것과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이라는 프로그램 부제만 봐도 켄 정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코미디쇼에 임했는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캐릭터를 잘 놀 줄 아는 한국 출신 괴짜 부자로 설정했다고 한들, 그가 방송에서 스스럼없이 내뱉은 혐오 표현까지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켄 정은 <켄 정> 초반에 베트남 출신 자신의 아내의 성인 '호'가 영어로 '창녀'를 뜻한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여성 성기를 생선 입처럼 생긴 외계인으로 비유하는 등 아내 혹은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방청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고자 한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한 장면. 한국계 미국인으로 의사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켄 정의 인생 이야기를 다뤘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한 장면. 한국계 미국인으로 의사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켄 정의 인생 이야기를 다뤘다. ⓒ 넷플릭스

 
세계에서 가장 예민하고, 아시아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성격이 급하다는 한국인을 지적하는 내용도 있다. 자신의 아버지의 사연을 빌러 자식의 성공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한국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 또한 켄 정의 개그 소재 중 하나다. 베트남 사람들은 대마초를 한 한국인 같다는 말도 한다.

우리도 안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더 심한 동양인 비하가 많다는 사실이 말이다. 어쩌면, 동양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폄하, 비하 발언을 했다는 것에서 웃음코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외모, 정체성을 비하하는 개그 코드가 비단 미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우뚝 선 배우지만... 혐오표현까지 이해해야 할까

몇 년 전만 해도 공중파의 대표적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남들보다 과체중이거나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은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가 유독 눈에 띄었다. 장애인, 여성, LGBT, 외국인 이주자 등 소수자에 대한 배려 또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시민단체 및 시청자들의 끊임 없는 문제 제기로 이에 대한 표현들이 많이 순화된 편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여전히 SNS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넘실대는 수많은 혐오 표현과 맞닥뜨리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켄 정이 <켄 정>에서 여성, 동양인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지속한 것은 아니다. 그는 동양인 이민자, 여성 외에도 백인 남성 관객을 공개적으로 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인종 차별 정책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저격'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말미에는 유방암을 극복하고 의사로 성공한 자신의 아내에게 공개적으로 찬사를 보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한 장면. 한국계 미국인으로 의사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켄 정의 인생 이야기를 다뤘다.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켄 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 한 장면. 한국계 미국인으로 의사에서 할리우드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켄 정의 인생 이야기를 다뤘다. ⓒ 넷플릭스

 
켄 정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믿고 싶다. 방청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켄 정> 방송 초반 여성과 동양인에 대한 비하 표현을 잠시 하긴 했지만, 사실 그는 미국 내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또한 아내를 성적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동등한 동료, 파트너, 사회인으로 대하는 한국계 미국인 남성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켄 정이 애초 누군가를 비하할 의도 없이 웃음을 위해 한 발언이라고 한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혐오 표현들이 그저 개그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이런 모습들이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이라고 멋지게 포장될 수 있을까. 인종 차별의 벽을 넘어 성공한 소수자로 우뚝선 켄 정의 인생 역정은 귀담아 들을 만 하지만, 여러 의문을 남게 하는 <켄정: 크레이지 리치 코리안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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