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엔 부자의 모습

꾸엔 부자의 모습 ⓒ 이종성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와 급격하게 가까워진 나라 베트남. 하노이나 호치민을 여행하다보면 우리나라 관광객 수가 상당수임을 것을 알게 된다. 수도 하노이의 명소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 부근에는 무려 2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빙밍(Binh Minh)이란 재즈클럽이 있다.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아 클럽도 운영 중인 꾸엔(Quyen)씨 부자는 척박한 베트남 재즈 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명예로운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아버지 꾸엔 반 밍(Quyen Van Minh)씨와 아들 꾸엔 티엔 닥(Quyen Thien Dac)씨 모두 색소폰 연주자로 같이 3장의 앨범을 베트남에서 발매하고 라이브 활동도 병행하며 돈독한 관계의 '부자 뮤지션'으로 정평이 나있다.
 
갖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꾸엔 부자. 후배 음악인들이 지금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음악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 현실로 다가섰으면 하는 바람을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갖게 됐다.
 
마치 형제와도 같은 꾸엔 부자와 12일 저녁 8시 하노이 소재 방밍 재즈클럽에서 가진 인터뷰를 정리했다.

베트남 재즈의 과거와 현재 같은 꾸엔 부자
 
 꾸엔 부자의 모습

꾸엔 부자의 모습 ⓒ 이종성

 
- 각자 소개를 해달라.
"올해 65세가 베트남 재즈 1세대다. 지금까지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 중이고, 베트남어로 '일출'이란 뜻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빙밍>이란 이름의 재즈 클럽을 열었고 지금도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아버지처럼 나 역시 색소폰을 미국 버클리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에서 전공했고 베트남에 돌아와 뮤지션의 삶을 살고 있고, 아버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아 클럽 사장으로서 일도 겸하는 중이다."
 
- 꾸엔반민씨는 '베트남 재즈의 대부'라고 들었다.
"30대 이전까지는 재즈, 클래식 및 베트남 전통음악을 혼자 커버해 연주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1988년 비소 밴드를 결성하고 같은 해 '베트남 뮤지션 협회(Association of Musicians in Vietnam)' 창립을 주도하면서 내 음악보다는 각각의 연령대 뮤지션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이 보다 나은 여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1994년이 돼서야 내 음악을 할 수 있었고 창작곡도 써나갈 수 있었다. 그 해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Opera House)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 사이 여러 재능있는 내 아들을 포함해 젊은 재즈 아티스트가 탄생된 것도 큰 보람으로 남아있다. (웃음) 1996년 친구들과 함께 팀을 구성해 색소포니스트로서 활동을 했고 정부의 으로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클럽을 1997년 10월에 열어 22년 동안 여러 곳을 거쳐서 마침내 지금 이 자리에 정착했다."
  
 아들 꾸엔 티엔

아들 꾸엔 티엔 ⓒ 이종성

 
-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됐나?
"우선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나의 인생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쉬운 것보다 분명 어렵고 고단한 일들이 더 많이 있었고 그것들을 잘 견뎌내고 극복해 지금의 자리에 계신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음악을 향한 열정의 원천은 바로 재즈
 
- 지금까지 몇 장의 앨범을 발표했는지?
"CD와 DVD를 합해 14장이 발매됐다. 1999년 <버쓰 1999(Birth 1999)>가 첫 앨범인데, 경력에 비해 늦은 편에 속하지만 베트남 음악시장을 고려했을 때 양호한 편이다.(웃음) 아들과 함께 음악작업을 해 발표한 세 장의 앨범이 가장 소중하다."
 
"베트남 대중가요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즈음반을 찾는 수요층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재즈의 경우 라이브 공연을 가진 후 현장에서 판매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판매 방식이다,"
  
 아버지 꾸엔 반민

아버지 꾸엔 반민 ⓒ 이종성

 
- 각자 뮤지션으로서 황금기는 언제였나?
"20대 시절이었던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반이 내게 뮤지션으로서 황금기였다. 가장 혈기왕성하게 연주하고 거칠 것 없이 무대를 즐겼었다."
 
"올해 마흔 살이 됐지만 내겐 아직 황금기가 오지 않았다.(웃음)"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 무대가 있다면?
"2005년에 가졌던 아들과의 합동 콘서트였다. 공연 제목이 <아버지와 아들>이었는데 당시 같이 낸 음반 수록곡으로 라이브 연주를 함께 한 후 감격에 겨워 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은 답답한 현실, 그래도 미래를 꿈꾼다
 
-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나?
"아버지처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이 된다는 것에 누구보다 기뻐했고 환영해 주셨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마국 버클리 음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장학금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친분을 통해 알게 된 지인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매년 장학금을 받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소중한 축복이다.(웃음)"
 
- 베트남 재즈 시장의 규모와 현실은 어떤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즈를 학교나 사설기관에서 배우는 학생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미래의 실력있는 베트남 출신 음악인들이 더 배출될 거라 믿는다. 다만 대중은 그보다 훨씬 느리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인내하고 개척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거다."
 
"지금 우리 재즈클럽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공연이 열리고 있다. 관객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외국 관광객과 현지 베트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0년 넘게 클럽을 운영하면서 여전히 재즈를 즐기는 사람은 변화가 많지 않다. 그리고 민간자본에 의존해 이 장르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데는 한게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지금 운영 중인 재즈클럽 상황은 어떤가?
"3년 전부터 좋아졌다. 아버지로부터 경영권을 인수받은 후 탁월한 실력을 지닌 뮤지션들을 많이 영입하는데 주력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둬 안정적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공연 중인 아버지 꾸엔 반민의 모습.

공연 중인 아버지 꾸엔 반민의 모습. ⓒ 이종성

 
3대를 잇는 재즈 명가의 탄생 기대
 
- 다음 세대에서 재즈 아티스트 탄생을 기대할 수 있나?
"그렇다. 티엔닥의 아들이 재즈를 좋아한다. 다가오는 9월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손자가 성장하면서 변심하지 말고 3대째 재즈 가문의 대를 잇겠다고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격스런 일이 될 거다.(웃음)"
 
"현재 베트남 교육환경에서는 재즈를 전문적으로 배우기에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나와 할아버지처럼 색소폰 연주를 하고 싶어 하는데 아들이 꿈을 키워가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 새 앨범 계획이 있나?
"아버지의 첫 번째 앨범 <버쓰 1999>을 새롭게 재해석할 계획을 구상중이다. 2019년이 음반발매 2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해서 최고의 뮤지션들을 초빙해 명성에 흠집을 안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공연 중인 아버지 꾸엔 반민의 모습.

공연 중인 아버지 꾸엔 반민의 모습. ⓒ 이종성

 
- 한국에 이번 인터뷰가 소개된 후 공연제의가 온다면?
"행복한 소식이 될 거다. 한국에도 음악하는 친구들이 여러 모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현재 싱가폴, 일본, 홍콩, 마카오, 캄보디아를 잇는 투어공연이 예정돼 있는데 한국도 그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들을 포함해 베트남의 젊은 재즈뮤지션들이 해외를 무대로 활약을 펼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 재즈는 어떤 의미인가?
"내 삶 그 자체다. 매일매일 연습하고 연주하고 재즈는 내 인생이다."
 
"재즈는 내겐 도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것 같고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연마하게 만드는 존재, 바로 재즈다."
망방재즈클럽 꾸엔부자 하노이 22년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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