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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식일정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2일 베트남 국경 동당역에서 전용열차에 오르긴 전 환송식에 참석하고 있다.
 베트남 공식일정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2일 베트남 국경 동당역에서 전용열차에 오르긴 전 환송식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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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민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살게 하려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평생 염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조선노동당 초급선전일꾼(선전선동을 담당하는 말단 간부)대회에 보낸 서한에 등장한 메시지다. 이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이후 김 위원장이 내놓은 첫 메시지라는 점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해당 발언은 남한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한 것이다. 김일성은 사망 1년 전인 1993년 신년사에서 "사람들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고 싶다는 우리 인민의 숙원을 실현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보다 36년 전인 1957년에 최초로 한 말이었다. 이와 관련해 김일성은 "쌀은 공산주의다"라는 유명한 구호도 남겼다. 김정일도 생전에 수령의 '유훈'이라며 자주 인용했다.  

이러한 발언은 21세기를 사는 남한 사람들에게 매우 소박하게 들린다. 21배에 달한다는 남북한의 소득격차를 드러내는 동시에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김일성은 전 국민의 90%가량이 농촌에 살며 그 대부분이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시대에 태어나고 자랐다. 죽기 1년 전 신년사에서 같은 발언을 한 것을 보면, 그의 사상은 마지막까지 전통적인 농업사회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김일성뿐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산 중국의 공산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오쩌둥과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소비에트 운동은 농민이 주체가 된 혁명이었다. 마오는 농민을 유격대원으로 만들면서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정작 그 자신은 소지주의 아들이었다. 김일성과 마오의 약속은 동아시아 농민이 수천년 동안 품어왔던 이상과 열망의 실현을 상징했다. 

하지만 이러한 농민의 후예다운 가치관은 좋은 의도와 상관없이 재앙을 몰고왔다. 마오는 참새와 파리가 해조와 해충이라며 이것들을 모두 잡아 없애야 농업생산량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주체농법'을 발명했다. 그의 교시에 따라 산비탈을 개간해 계단식 농지를 만들었고, 난방비가 들지 않는 옥수수 재배법을 장려했다. 이것은 천재의 아이디어라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김일성 사망 1년 뒤 내린 큰 폭우로 계단식 논밭이 모조리 깎여나갔다. 다닥다닥 심겨진 옥수수는 햇빛을 받지 못해 잘 자라지 않았다.

이렇게 기록적 폭우와 작황 부진으로 식량생산이 반토막 났다. 소련 해체에 의해 '원조'가 중단됐고, 이에 따라 북한경제가 붕괴됐다. 배급이 끊어지자, 대기근, 일명 '고난의 행군'(1995~1999)이 시작됐다. 많은 이들이 이때 아사했다. 1960년대 초 대약진 운동이 실패한 중국에서도 농민들이 굶어 죽었다. 국내외 엔피오(NPO) 단체는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최대 300만명이 아사했다고 밝혔지만, 실증적인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약 45~50만명이 아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북한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한다. 대약진 시기 굶어 죽은 중국인의 비율과 대략 비슷하다.   

이전에 북한 주민들은 한달에 2번씩 곡물배급소에 가서 배급을 받았고, 농민들은 추수가 끝난 뒤 1년치를 한꺼번에 배급받았다. 이것은 1958년 이래로 수십년간 실시됐다. 한데 갑자기 배급이 끊어진 것은 세상이 무너진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배급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재발명'한 것이다. 시골에선 몰래 황무지를 개간했고, 도시 사람들은 시장에 나가 장사를 했다. 처음엔 가재도구를 식량과 교환하다가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물건을 팔았다. 수완이 좋은 사람들은 더 큰 규모의 장사로 발전했다. 도소매업이 발생했고, 개인이 소유한 상점이 늘었으며, 도로엔 개인 소유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장마당에서 모이고,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북한 내에서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자 풀뿌리 시장경제의 등장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줬는지는 불분명하다. 물론 이것은 앞으로도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북한 당국은 대부분 내몰리고 내몰려서 마지못해 개혁을 실시했다. 김정은 시대에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개혁 조치는 보다 적극적이지만 부분적이고 조심스럽게 보인다. 

지난 2007~2008년 북한 당국은 시장폐쇄 조치를 내렸다. 여성들이 몰려나와 "장사를 못하게 하려면 배급을 달라. 배급을 안 줄 거면 장사를 하게 해달라"고 외치며 시위했다. 2009년 화폐개혁이 실패하자 사람들은 서슴없이 당국을 비난했다. 상점은 철시로 항의했다. 현대 북한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아직 후계자였던 김정은은 성난 민심을 봤고, 주민의 힘과 무서움을 처음으로 느꼈을 것이다. 결국 김정일은 경제정책 담당 간부 박남기를 처형해 민심을 달랬고, 시장을 무력화시키려던 조치들을 취소했다.  

북한의 현 지도자는 본인의 시대가 존속되기 위해선 경제개발이 가장 큰 과제라는 것을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통치해갈 시대가 이전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시대와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앞선 서한에서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은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당면하고도 절박한 문제이며 또한 항구적인 경제발전 전략이기도 하다"고 썼다. 오늘날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국제 분업화된 세계 경제질서에서 이런 발언은 너무나 생경하고 공허하다. '필요한 모든 것을 자국 영역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이 소박하고 위험한 생각은 할아버지대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김일성이 인민에게 약속한 "쌀밥에 고깃국"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은 일종의 평균화된 전통적 '자급자족' 사회다. 이러한 세계관이 오늘날까지 손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비현실적인 '자급자족' 구호를 외치기 보다 '제재 해제'의 선결조건인 비핵화를 실행하고, 개혁개방에 나서야 한다.

김씨 3대는 모두 유능한 정치인이고, 외교 분야에서도 뛰어나다. 반면 경제에 대해선 지식이 적어 무능하다는 평가가 김일성과 김정일에겐 일반적이다. 김일성과 유격대에서 함께 활동하고 나중에 북한 정치의 핵심 지도부가 된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무학에 가까웠고, 경제에 대해선 거의 이해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위스에서 공부한 젊은 김 위원장에게도 같은 평가가 내려져선 곤란하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나라가 무엇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북한 사람들은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에 대해 잘 안다.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자기 비판과 타인 비판으로 이뤄진 생활 및 사상 비판 모임)를 하고 두 번씩 지루한 정치학습에 참여한다. 주민의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치체제는 여전히 정체돼 양자가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같은 서한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김정은 본인을 지칭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북한 사회에서 수령은 공식적으로 김일성을 의미한다. 그가 1994년 사망했을 때 '영원한 주석'으로 명명됐고, 지난 2016년 개정된 북한 헌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모두 '영원한 수령'으로 개칭됐다. 중국과 베트남은 선대의 사상과 활동을 비판하면서 개혁개방을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북한도 진정한 개혁개방의 길에 나서려면 선대의 사상과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북한학 연구자들은 주민의 정체성이 수령에서 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예전엔 노동당에 입당해 간부가 되고 싶어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장마당에서 큰돈을 벌고 싶어한다. "벤츠를 타는 당간부를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아줌마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새 흐름에 북한의 미래가 있다. 김 위원장이 가야 할 길은 선대의 사상을 찬양하고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척한 주민들을 본받고 그들의 길을 따르는 것에 있다.

태그:#김정은, #김일성, #수령, #배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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