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 음악감독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자람 음악감독이 이야기하고 있다. ⓒ 서정준

 
"점심 때 평양냉면을 먹으러 갔다. 평양냉면이 좀 특별하지 않나. 이 음식에 한 번 발을 들였다가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다양한 평양냉면을 찾기도 한다. 제게 전통은 그렇다" (이자람 음악감독)

12일 오후 서울 JW메리어트동대문 스퀘어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국립창극단 창극 <패왕별희>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패왕별희>는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삼국지'로 유명한 삼국시대 이전, 초한시대를 배경으로 항우가 유방에게 패퇴해 우희와 함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담은 경극이다. 이번에는 그간 새로운 시도로 경극의 세계를 넓혀온 우싱궈 연출이 '트로이의 여인들' 등 신선한 행보를 보인 국립창극단과 만나 경극과 창극의 컬래버레이션을 벌인다.

우싱궈 연출, 린슈웨이 각본/안무, 김철호 국립극장장, 이자람 음악감독, 배우 정보권, 허종열, 윤석안, 이연주 등이 참석한 제작발표회는 간단한 포토타임 이후 인사말과 질의응답 등으로 이뤄졌다.

김철호 극장장은 "국립극장이 시즌제를 도입한 후 창극단이 새로운 양식과 결합된 현대적인 창극을 추구해왔다"며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트로이의 여인> 등을 언급했다.

김 극장장은 "<패왕별희>는 저희들이 2년여 전부터 준비한 작품이다. 아시아에서 공유하는 이야기인 '패왕별희'를 스토리로 해서 대만의 훌륭한 경극 연출인 우싱궈와 함께 작품을 준비했다. 향후 국립창극단 활동에 있어 소재나 활동영역 등을 세계로, 아시아로 넓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며 <패왕별희>가 기존 활동을 넘어 또다른 시도가 되리라 기대했다.

그는 "향후 이런 작업이 하나의 선례가 돼서 우리 아시아를 비롯한 타국의 전통예술과도 결합할 수 있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라며 국립창극단의 시도에 대해 성원을 당부했다.
 
 우싱궈 연출이 이야기하고 있다.

우싱궈 연출이 이야기하고 있다. ⓒ 서정준

 
우싱궈 연출은 "2년 전에 김성녀 예술감독이 오셔서 '함께 세계로 출발하자'고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길래 날 찾아왔을까 하고 의문이 들었지만, 자신감도 느꼈다. 경극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현대에 33년간 경극을 해왔고 이에 따른 자부심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의식은 세계의 모든 전통문화가 맞닥뜨린 위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는 더 용감해져야 한다. 전통이 세계를 더 많이 만나고 현대와 융합될 때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작품에 임하는 태도를 밝혔다.

그는 대만에서 경극을 작업하며 셰익스피어, 그리스 비극, 서양문학 등 다양한 소재를 경극으로 품어냈다. 그런 그에게 창극은 어떤 흥미를 주게 될까.

"한국의 전통창극을 5, 6편 정도 봤다. 제가 받은 가장 큰 감동은 소리에서 느껴진 생명력과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세계와 우주에 대한 외침이었다. 판소리는 한국의 가장 중요하고 빛나는 보물이라 생각한다. 제가 한국어는 못 알아들어도 판소리를 들으면 한국 민족 특유의 용감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패왕별희>란 작품은 2천년 전 중국 역사고 중국에서 가장 익숙한 비극인데 이 모든 내용을 판소리로 묶어서 구상했다."

이어 우싱궈 연출은 "이번 협업을 많은 분들이 걱정하는 걸로 알고 있다. 전 판소리를 깨뜨리거나 무너트리려는 게 아니다. 우선 국립극장의 좋은 시도에 경의를 표하며 판소리의 문화적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며 제 노력으로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며 창극의 가치에 높은 평가를 내리며 양측의 협업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안무이자 각본을 맡은 린슈웨이는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와는 다른 내용"이라며 경극 <패왕별희>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 <패왕별희>는 문화대혁명 시대 정치적 격동기에서 2천년전의 역사를 함께 담아낸 정치와 사랑 이야기다. 제가 어떻게 하면 이 전설적인 작품을 깰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현대적인 <패왕별희>를 만들 수 있을지 스트레스 받았다. 제 목표는 여러분이 큰 감동을 느끼고 우희와 항우라는 두 명의 인물을 영원히 기억하게끔 만들고 싶었다"며 각본가로서 초점을 둔 부분을 이야기했다.
 
 린슈웨이 안무/각본가가 이야기하고 있다.

린슈웨이 안무/각본가가 이야기하고 있다. ⓒ 서정준

 
린슈웨이는 "저로선 무척 행운이 훌륭한 이자람 감독을 만났다는 점이다. 무척 소녀처럼 보이는 감독님이지만 '역발산기개세(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라는 패왕의 스케일을 음악적으로 그려냈다. 또 중국의 4대미녀 중 하나인 우희를 그려내기도 했다"며 이자람 음악감독의 역량을 칭찬했다.

또 "중국에서 메이란 팡이란 배우가 있다. 여자 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로 명성을 떨친 인물인데 '우희'를 맡은 김준수에게도 한국의 메이란 팡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한다"며 김준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제작발표회 현장은 <패왕별희>라는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예계에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인지 많은 인파들이 들어서진 않았다. 하지만 창극과 경극의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덕분에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5대가(수궁가, 춘향가, 적벽가, 심청가, 흥보가)를 레퍼런스 삼아 이번 작품을 창작했다고 밝힌 이자람 음악감독은 경극과 창극이 만나며 음악적 비중이 변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100%판소리"라며 "작창 분량이 엄청나서 머리 빠질 정도였다. 1장부터 7장까지 소리 안하는 순간이 없다. 그 순간을 지루하지 않고 아름답게 하면서도 드라마와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 그냥 텍스트가 주는 영감만으론 벅차서 5대가의 레퍼런스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엊그제 첫 런을 봤다. 만들어드린 소리와 만드는 중인 경극을 함께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국립극장이 이걸 기획한 것 자체로 이건 시작됐고 경극하는 사람과 창극하는 사람이 만나는 것으로 무언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제 할일을 하고나면 뭔가가 새로 생기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연습실에서 좀 봤다. 꽃을 피우는 건 배우들의 몫인데 너무나도 잘하고 계신다. 배우들 모두 작창에 익숙해지자 경극과 새로운 시너지가 생기더라. 작창 대부분 끝나고 음악 완성하는 과정인데 이걸 잘 서포팅해서 관객들을 잘 만나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라며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존에 없던 무언가가 탄생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창극 <패왕별희> 제작발표회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창극 <패왕별희> 제작발표회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서정준

 
하지만 경극은 여전히 창극 이상으로 생소한 장르다. 관객들이 이 새로운 시도를 낯설게 느끼진 않을까.

이 감독은 "경극을 처음 봤을 때 왜 슬픈 장면인데 높고 얇은 음으로 노래할까 싶었다. 전 그게 슬프지 않았다. 그런데 경극에 축적된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계속 봤더니 과연 그 안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더라. 경극을 처음 봤을 때는 그걸 보지 못했다. 제가 이 공연에 바라고 노력하는 건 경극을 처음 보고 느꼈던 느낌. 너무 낯설게 반복된다고 느꼈던 것들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잘 음악적으로 만나게 할 수 있나 싶다"며 낯선 첫인상 속에 담긴 경극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이어 "그럼에도 경극에는 응집의 미학이 있다. 손짓 하나 눈짓 하나에 담긴 의미가 있다. 전쟁 장면도 사람들이 나와서 뛰어다니는 게 왜 전쟁일까 했는데 그 움직임에 구도와 규칙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몇 번 보니까 멋이 느껴지더라. 오랜 전통에 쌓인 멋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가 판소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줄까 싶은 느낌. 똑같은 고민을 경극을 보며 하고 있더라. 저도 너무 많은 고민 중에 중구난방으로 길을 걷고 있다"며 계속해서 고민하며 극을 만들고 있음을 밝혔다.

이 감독의 '평양냉면론'에 이어 배우들도 경극이 가진 양식미가 창극에 힘이 될 것이라 밝혔다.

허종열 수석단원은 "우리 판소리, 창극 위에 동작이 '발림'이란 건데 경극의 '발림'은 딱 정립됐다. 같은 동작이 같은 표현을 의미한다. 창극 역시 경극처럼 정립해서 5대가가 문화재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저도 처음 도전해보는데 그런 힘이 아주 좋더라. 판소리의 소리의 힘, 경극의 동작의 힘이 잘 융합되겠단 설레임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윤석원은 "예를 들면 방자가 춘향이 있는 곳에 가는데 자진모리 몇 장단에 어떤 춤을 가지고 도달한다. 몽룡이 갈 땐 또 다른 춤으로 어떻게 간다 하고 정해지는 식이다. 이렇게 창극을 규격화하면 노나 경극에도 버금갈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연출에 따라 창극 형식이 달라졌다. 그런 면이 안타깝다. 예전 일본 갔을 때 '노'를 봤는데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번에 경극은 우리 호흡법과 다르다. 소리를 위로 낸다면 우린 아래로 내리치는 호흡이라 다른 면을 걱정했는데 만약 창극이 더 정립됐다면 이번에도 더 효과적이었지 않을까 싶었다"며 창극이 발전해야하는 방향에 대해 덧붙였다.

끝으로 이연주 단원은 "우리는 우리문화로 독창성을 지닌다. 경극은 또다른 위대함을 뿜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것, 남은 남의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잘 어울려서 하나로 융합됐을 때 이게 한국 것인지 중국 것인지 논하기 전에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면 훌륭하지 않을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며 형식에 대한 우려 없이 좋은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발언을 더했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인원들은 입을 모아 <패왕별희>는 창극의 소리와 경극의 형식이 더해진 새로운 모습이 되리라 자신했다. 그들의 자신감이 실제 공연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창극 <패왕별희>는 오는 4월 5일부터 1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패왕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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