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2019년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부천영화제

 
오는 6월 개최되는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올해 단편영화 공모를 취소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반발한 국내 단편영화 배급사들은 성명을 발표해 "납득할 수 없다"며 공모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내 영화인들 역시 단편 공모 취소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모 취소 사과에 단편에 대한 모욕 반발
 
부천영화제는 지난 5일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문을 통해 단편 공모 취소 입장을 올렸다. 올해 개최 일정이 예년보다 2주 앞당겨지면서, 국내 대표적인 단편영화제인 미쟝센단편영화제와 일정이 겹치게 됐다는 이유였다.

부천영화제 측은 "단편 영화인들의 축제와 영화인들에게 혼란을 빚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접했다"면서 "개최 일정 변동에 따라 BIFAN과 미쟝센단편영화제가 뜻하지 않게 입을 수 있는 여러 부정적 영향들을 심사숙고한 끝에 올해에 한해 한국단편공모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제 일정을 변경하면서 동시기에 개최되어 오던 미쟝센단편영화제를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은 커다란 불찰"이라며 "미쟝센단편영화제 측에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3월 5일 현재까지 단편 부문에 출품한 영화인들에게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다 발전적인 공모 및 상영방식 등을 마련해 단편영화 및 젊은 영화 인재의 발굴과 육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시행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7일 발표된 단편영화배급사들의 성명서

7일 발표된 단편영화배급사들의 성명서 ⓒ 단편영화배급사모임

 
하지만 국내 단편영화 배급사들은 발끈했다. 인디스토리, 시네마달,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포스트핀, 센트럴파크. 퍼니콘, 호우주의보, 필름다빈 등 8개 배급사는 7일 항의 성명을 내고 부천영화제에 공모 재개를 요구했다.

배급사들은 갑작스러운 공지에 유감을 나타나며 "타 단편영화제와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단편 공모를 취소한다는 발표는 납득할 수 없고, 공지문 어디에도 창작자에 대한 사과와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부천영화제의 태도를 비판했다.
 
특히 "공모 취소는 한국 영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에 대한 모욕이며, 100년에 빛나는 한국 영화사를 퇴보시키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또한 "열정적으로 단편 영화를 만든 감독과 스태프뿐 아니라 단편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땀과 노력을 일거에 무시하는 처사로 국내 3대 영화제이자 장르 영화제로서 위상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영화제는 영화의 관객 창작자가 모두 어우러질 때 빛날 수 있고,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영화제의 소유물이 아니며 단편영화는 영화제의 들러리가 아니다"라며 "영화제 간 알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8개 배급사는 "이렇듯 창작자의 권리가 무시되는 행태 속에서 한국영화와 영화제의 발전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며 부천영화제의 공모 재개를 촉구했다.
 
단편영화 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일은 영화제들의 이상한 타협으로 젊은 단편영화 감독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고 있는 처사"라며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독립영화계 내부에서는 "두 영화제가 창작자를 대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것"이라며 "영화제를 개최하는 본질에 대한 숙고와 이번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제 해결하려다 더 큰 문제 만들어
 
문제의 발단은 부천영화제가 개최 일정을 변경하면서 다른 영화제의 일정을 살피지 않은 데 있다. 부천영화제 사무국장을 역임한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부관장은 "영화제 일정이 겹치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영화제가 이런 저런 곤란한 일들이 겪게 될 수밖에 없는데, 부천영화제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출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5월부터 6월까지는 국내 영화제들이 가장 많이 열리는 시기 중 하나인데, 부천영화제가 전후 사정 고려 없이 개최 일을 변경하면서 연쇄적인 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큰 영화제의 개최 일정은 변경은, 개최 시기가 겹치게 된 영화제로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출품작 수급과 관객 동원, 상영 및 부대행사 등에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수년 전에도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영화제가 일정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겹치는 작은 독립영화제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규모가 큰 영화제의 일정 변경은 영화제들 간 조율이 필요한데, 부천영화제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최 시기를 변경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는 셈이다. 부천영화제 측이 미장센단편영화제 측에 공개 사과를 밝힌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국내단편영화배급사들이한자리에 모여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지난 6일 국내단편영화배급사들이한자리에 모여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 원승환

 
그렇더라도 단편 공모 취소는 더 큰 문제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부천영화제의 판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원승환 부관장은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던 방식이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버렸다"며 "두 영화제 간에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공모 취소가 되면서 단편영화 제작자, 배급사, 관객 모두의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영화제들이 연중 이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제작된 한 편의 영화는 다양한 영화제를 거치는 게 기본이다. 감독이나 영화 제작배급사들은 만들어진 작품을 여러 영화제에 보낸다. 영화제들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영화제에만 보내는 경우도 있다. 주목되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출품은 자유지만 작품 선정은 영화제들의 몫이다. 월드 프리미어에 민감한 규모 있는 영화제들은 초청 조건으로 첫 상영을 요구하기도 한다. 두 개 이상의 영화제가 같이 선택하고 싶은 작품은 서로 간의 조율을 거치거나 감독이 어느 영화제에 갈지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단편영화가 연중 수백 편이고, 작품의 장르와 성격이 다른 상태에서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공모를 중단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화마다 가고 싶은 영화제를 선택하면 그만인데, 공모가 취소되면서 부천영화제에 출품했거나 출품을 예정했던 감독들은 당혹스럽게 됐다. 부천영화제는 장르 영화제를 표방하기 때문에 그 성격에 맞는 작품들이 주로 출품 신청을 한다.
 
올해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신철 집행위원장이 영화제 경험이 부족한 데 따른 지적도 나온다. 개최 일정 변경부터 이번 공모 취소 등은 국내 영화제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부천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공모 취소 공지를 낸 입장에서 이를 번복하기가 쉽지 않게 보이지만, 해외 출장 중인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이 돌아오면 논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부천영화제 단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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