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도로공사 선수들 경기 모습 ⓒ 한국배구연맹
부상은 현대건설 선수가 당했는데, 크게 당황한 팀은 한국도로공사였다. 현대건설 양효진 선수(31세·190cm)는 지난 5일 팀 훈련 도중 블로킹을 하다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이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치료와 재활 기간까지 총 3~4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효진은 9일 치러지는 흥국생명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양효진의 부상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 건 7일이다. 그런데 하루 전인 6일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혈전을 벌였다. 이 경는 후폭풍으로 이어질 만큼 과열 양상을 띄었다.
경기 중 오심이 나와 심판이 징계를 당했고, 심판이 흥국생명에게 유리한 판정을 했다며 흥분한 일부 팬은 이재영 선수(흥국생명)의 SNS에 찾아가 폭언을 퍼부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심판 매수로 2세트를 따냈다"며 선수의 어머니까지 거론하는 패륜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정규 리그 우승을 놓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승부는 다음 날 양효진의 부상 소식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흥국생명에 어렵게 승리한 한국도로공사의 '역전 우승' 가능성이 크게 감소됐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흥국생명에 꼭 승리" 공언까지 했는데
올 시즌 V리그 여자배구 정규리그는 이제 2경기만 남겨 놓고 있다. 9일 현대건설-흥국생명(수원 실내체육관), 10일 IBK기업은행-한국도로공사(화성 실내체육관) 경기다.
그런데 아직도 정규리그 우승 팀이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 여자배구 정규리그 순위는 1위 흥국생명(승점 59점-20승9패), 2위 한국도로공사(56점-20승9패), 3위 GS칼텍스(52점-18승12패) 순이다. 이어 4위 IBK기업은행(47점-15승14패), 5위 현대건설(29점-9승20패), 6위 KGC인삼공사(21점-6승24패)가 자리하고 있다.
흥국생명이 9일 현대건설과 경기에서 2세트를 따내 승점 1점만 확보하면,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된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흥국생명에 세트 스코어 3-1 이내로 승리하고 다음 날인 10일 한국도로공사가 IBK기업은행에게 승리하면, 한국도로공사가 V리그 역사상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현대건설-흥국생명 경기가 정규리그 우승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객관적인 전력은 흥국생명이 다소 우위에 있다. 그러나 양효진의 부상이 없었다면, 현대건설의 승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대건설은 후반기 들어 강팀들을 상대로 종종 승리를 챙겼다. 그러면서 특급 고춧가루 부대로 떠올랐다. 또한 9일 경기가 현대건설의 마지막 홈 경기인데다, 흥국생명에게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공언까지 해놓은 상황이다. 현대건설이 올 시즌 유일하게 전패를 당한 팀이 흥국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은 지난 2월 24일 KGC인삼공사와 경기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올 시즌 흥국생명을 상대로 한 번도 못 이겼다. 그래서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기고 싶다"며 "선수들에게 힘내서 잘해보자고 주문을 하고 있다. 선수들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고 필승 의지를 밝혔다.
반면 흥국생명은 한국도로공사와 혈전에서 패한 후유증이 있고, 현대건설전에 반드시 2세트를 따내야 하는 부담감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우승 세리모니 준비 회의 도중, '양효진 부상' 소식 접해
한국도로공사 측도 내심 현대건설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우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정규리그 우승 세리머니 준비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양효진의 부상 소식을 접했다.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도로공사 구단 관계자는 8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양효진의 부상 소식을 7일 언론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구단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흥국생명에 승리한 다음 날 구단에서 정규리그 우승 세리머니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며 "흥국생명-현대건설 경기 결과를 보고 난 뒤, 하루 만에 준비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준비 회의를 하던 도중 양효진 선수의 부상 기사가 떴다"며 "모두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양효진이 현대건설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양효진이 최근 들어 경기력과 득점력이 최고조로 올라온 상태였기에 소속팀인 현대건설과 정규리그 우승을 노리는 한국도로공사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기록으로도 증명된다. 양효진은 8일 현재 499득점을 올려 여자배구 득점 부문 전체 6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선수 중에는 이재영, 박정아 다음으로 3위에 해당한다. 공격성공률, 오픈공격, 블로킹 3개 부문에서는 외국인 선수까지 모두 제치고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정규리그 우승 하고 못하고는 '천지 차이'... 현대건설도 부담
그러나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정규리그 우승 가능성이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에게 모두 남아 있다. 양효진의 부상 공백이 크지만, 경기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정규리그 우승은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 모두에게 중대한 사안이다. V리그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 못 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규리그 우승을 하면 챔피언결정전 직행이라는 특혜가 주어진다. 반면 우승을 하지 못하면 플레이오프전을 치러야 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체력적인 부담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때문에 현대건설도 양효진의 부상 공백과 상관없이 흥국생명과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승패는 다음 문제다. 무기력한 경기 모습을 보일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현대건설의 훈련 시스템도 자성과 재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올 시즌 황연주, 양효진 등 주요 선수가 팀 자체 훈련 도중 똑같이 왼손 손가락 인대 파열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는 해당 선수는 물론, 팀에게도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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