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그 시작이 어딜까 혼자 고민해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영화 <우상>을 연출한 이수진 감독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우상>의 구상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수진 감독의 말처럼 <우상>은 아주 평범한 교통사고에서 출발한다.

자진해서 이코노미 좌석으로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녀올 정도로 청렴한 도의원으로 널리 알려진 구명회(한석규 분)는 다른 정치인들에게 끊임없이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 혹은 압박을 받고 있다. 적당히 거절하는 기색을 보이나 그 또한 싫지 않은 눈치다. 구명회는 비록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의사 출신 정치인이긴 하나 이렇다 할 연줄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

영화 '우상' 스틸 사진 ⓒ CGV아트하우스

 
그러던 중 구명회는 아들이 자신의 차로 뺑소니 사고를 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집으로 시체를 가져왔음을 알게 된다. 구명회는 자신의 정치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뺑소니 사고 정도로만 사건을 축소시킨 채 아들을 자수하게 만든다.

한편, 아끼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시체로 돌아오자 절망에 빠진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은 이내 아들과 함께 있었던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며느리는 사고 당일의 진실을 알고 있을까? 며느리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유중식은 경찰에 도움을 청해보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사고 당일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최련화의 모습이 담긴 CCTV가 발견되고 최련화는 뺑소니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 최련화를 찾아야 할 처지가 된 구명회와 유중식은 나름의 방법으로 최련화를 찾기 시작한다. 또 최련화는 그대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처음 교통사고로 시작했던 일은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당신의 우상은?

지난 2월 막을 내린 제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됐던 영화 <우상>이 오는 20일로 개봉을 확정짓고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7일 열린 <우상>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은 연기한 인물들의 우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우상' 한석규, 하고 싶었던 역할 배우 한석규가 7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우상> 시사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은 남자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은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가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제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을 통해 해외에서 먼저 공개된 바 있다. 20일 개봉.

▲ '우상' 한석규, 하고 싶었던 역할 배우 한석규가 7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우상> 시사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은 남자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은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가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제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을 통해 해외에서 먼저 공개된 바 있다. 20일 개봉. ⓒ 이정민

 
이에 대해 구명회 역의 한석규는 "탐욕"이라고 답했고 유중식 역의 설경구는 "핏줄", 천우희는 "우상을 갖지 못할 정도로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는 인물"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정치인 구명회는 도지사 자리(탐욕)를 위해 질주하고, 유중식은 자신의 아들(핏줄)을 위해 질주하는 반면 최련화는 과거와 현재에 자신이 벌이거나 벌어진 일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쫓기며 생존 자체가 지상 최대의 과제인 인물로 그려진다.

<우상>은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고 있고, '과연 유중식의 아들이 죽은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세 인물이 각자 밝히는 것으로 전개된다. 143분, 2시간 23분이라는 상업영화 중에서도 꽤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이나 순간 순간 관객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는 등장인물들 덕분인지 지루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실제로 배우 한석규는 기자간담회 당시 <우상>의 치밀함을 칭찬하면서 "143분이라는 시간이 모자란 영화였다"고 평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예상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는 등장인물 때문에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설경구)고 난해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기자간담회가 끝난 직후 여러 관계자들은 SNS를 통해 "불친절한 영화"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

영화 '우상' 스틸 사진 ⓒ CGV아트하우스

 
관객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후벼파는 이수진 감독의 연출은 <한공주>에 이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15세 관람가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 점에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미스터리의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인으로 나오는 극중 인물들 간의 대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관객들의 감상에 다소 방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시사회에서도 "다수의 대사를 놓쳤다"는 평이 많았다. 비유가 많아 관객들이 해석할 여지가 많은 만큼 대사를 좀 더 잘 들리게 편집했다면 어땠을까.
 
 영화 '우상' 스틸 사진

영화 '우상' 스틸 사진 ⓒ CGV아트하우스

 
한 줄 평: 날카로운 핀으로 143분 동안 객석을 찌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별점: ★★★☆(3.5/5)

 
영화 <우상> 관련 정보
각본/감독: 이수진(<한공주> 각본/연출)
출연: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제공/배급: CGV아트하우스
제작: (주)리공동체영화사
공동제작: 폴룩스(주)바른손
러닝타임: 143분
관람등급: 15세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3월 20일
우상 한석규 천우희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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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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