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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일본 외무성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3.1혁명 당시 사상자 수를 언급한 데 대해 당일 즉시 "역사가들 속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고,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일을 공공연히 발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며 한국정부에 항의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3.1혁명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나 되는 202만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습니다. 7500여 명의 조선인이 살해됐고 1만 6000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기념사의 여러 내용 중 유독 3.1혁명 당시 사상자 수를 언급한 이 부분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그 정도로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자극할 만한 내용은 없었음을 방증해준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항의는 다분히 의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 3.1절 기념사에 대한 일본 당국의 항의 사실을 보도한 NHK 기사 화면
 문 대통령 3.1절 기념사에 대한 일본 당국의 항의 사실을 보도한 NHK 기사 화면
ⓒ NHK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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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일본 아베 정부의 이 같은 '한국 때리기', 또는 '한국 괴롭히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식민지 시기 강제동원과 독도에 대한 아베 총리 및 각료들의 각종 망언은 이미 예삿일이 된지 오래일 뿐더러, 명백히 일본의 군사적 도발로 볼 수밖에 없는 최근의 '초계기 사건'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노력에 대한 집요한 방해 책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외교적, 군사적 공세는 조금도 멈출 기미 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현실을 돌아보면, 과연 현재의 일본 정부에게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에 있는 이웃나라(일본식 표현으로는 '근린 국가')와 우호적으로 잘 지내려는 의향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이 같은 공세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경계하는 일본의 대외전략 역시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불발되자 일본 관리들과 기자들이 '반색'한 사실이 상징하듯 현재 일본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바라지 않으며, 그것을 위해 경주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일본은 무엇을 했는가 

다시 일본 외무성의 항의 내용을 따져보자. 이번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한 일본의 항의 메시지는 비교적 간명하다. "역사가들 속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고,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일을 공공연히 발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국의 대통령이 과거 일제의 만행과 관련해 객관적이지 않은 숫자를 언급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감정을 상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문맥으로 해석된다. 얼핏 보면, 특히 과거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사실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볼 경우, 일본 정부가 지극히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반드시 일본 측에 따져 물어야 할 지점이 발생한다. 바로 여태까지, 특히 3.1혁명이 일어난지 100년이 넘도록 3.1혁명 당시 조선인 피학살자 진상규명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라는 점이다. 3.1혁명이 일어난지 100년이 경과했는데, 당시의 사상자 수와 관련해 아직도 양국 간에 견해차가 있다면, 이는 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일본은 당시 식민통치의 주체이자 가해자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3.1혁명 당시의 피학살자 수, 더 나아가 식민지배 전반에 걸쳐 일제가 한국인에게 저지른 각종 학살 사건의 진상과 피학살자 수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우리 정부에 그런 조사를 제안한 적조차 없다. 한마디로 식민지배 시기 일본의 가해와 학살의 책임에 대해 일본 정부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도리어 일본 정부가 크게 부끄러워해야할 사안이 아닌가?

뿐만이 아니다. 설사 문 대통령이 언급한 3.1혁명 당시 사상자 수의 통계가 추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당시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학살 만행이 역사에서 지워질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아베 정부가 생각하는 객관성은, '총체적 객관성'이 결여된 지극히 단시안(短視眼)의 '통계 놀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아베 정부의 통계 조작 스캔들이 절로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또 하나의 '식민지 범죄', 일제의 조선인 학살과 사실 왜곡

여기서 우리가 통렬히 알아두어야 할 역사적 사실은, 일제가 한국인에게 자행한 학살 만행이 3.1혁명 당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대량 학살부터 시작해 1900년대 이른바 '남조선 대토벌 작전'으로 불린 의병 학살, 그리고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일종의 분풀이로서 간도일대에서 무자비하게 자행한 경신대학살(경신대참변이라고도 함),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의 조선인 대학살(관동대학살), 그리고 태평양전쟁 시기 강제 동원한 조선인에 대한 학살-이는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 조사되지 못한 영역이지만, 2018년 2월 서울시는 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 학살 영상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다. 해방 직후 우카시마호 폭침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제 식민지배 전 기간에 걸쳐 자행된 '학살'은, 일제가 조선을 지배한 주요 방식 중의 하나였다. 당시 일제 당국에게 조선인은 멋대로 죽여도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범죄 행위이며, 학술적으로 규정하자면 '식민지 범죄'이자 '전쟁 범죄'였다.

문제는, 이러한 일제 학살 만행의 진상과 피학살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려 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왜냐하면 일제는 학살 당시부터 그 진상 및 피학살자 통계와 관련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사실 왜곡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920년 경신대학살의 사례를 보자.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패배해 독립군 소탕작전에 실패한 일본군은 북간도 지역의 조선인 농민 사회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독립군의 존립 기반을 철저히 파괴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리하여 1920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에 이르기까지 북간도 일대에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본군에 의한 살육과 방화, 고문, 강간,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예컨대 1920년 10월 용정 북방 장암동에 들이닥친 일본군은 마을 주민들을 교회에 집결시킨 후 교회를 불태우고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을 모조리 찔러 죽였다. 이어 우리 독립군과 일본군이 교전했던 백운평 마을에서는 남자라면 젖먹이까지 모두 집안에 가두어 놓고 불을 질렀고, 역시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총창으로 찌르거나 기관총을 쏘아 학살했다.

1920년 12월 6일에는 연길현 와룡동에 살던 교사 정기선(鄭基善)을 끌고가 심문하던 도중 그의 얼굴 가죽과 두 눈을 칼로 도려내는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여 살해했다. 또 연길현 약수동에서는 살해된 시신을 다시 불태운 후 강물에 던졌으며, 부녀자를 잡으면 강간을 한 후 살해했다. 연길현 소영자(小營子)에서는 25명의 부녀자가 일본군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이상의 관계 사실은 황민호·홍선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22 : 3.1운동 직후 무장투쟁과 외교활동>, 독립기념관, 143~147쪽 참조) 이 과정에서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명동학교를 비롯해 북간도 일대의 조선인 학교, 교회가 거의 대부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경신대학살 관련 사실을 일제의 입장에서 왜곡 보도하고 있다.
▲ 1920년 12월 5일자 <매일신보>기사 경신대학살 관련 사실을 일제의 입장에서 왜곡 보도하고 있다.
ⓒ 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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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이 같은 일제의 학살 만행은, 북간도 일대에 거주하던 외국인 선교사, 의사들의 노력으로 국제사회에 일부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는 관련 사실을 왜곡, 호도하는 '가짜 뉴스'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학살 만행을 목도한 영국인 선교사의 목격담을 "유언비어"라 치부하는가 하면, 일본 육군성의 일방적 발표를 인용하며 아에 사실 관계 자체를 부인하고 나섰다. 가령 <매일신보> 1920년 12월 5일 자의 '토벌대에 대한 오전(誤傳)'이라는 제하의 기사는 '토벌대가 잔학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전연 거짓말이다'라는 부제를 달고, 일제의 학살 만행 관련 소식을 '오전', 즉, '가짜 뉴스'라 치부한 다음 도리어 일본군의 주둔이 현지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

심지어 이때 일본군은, '장암동 교회 학살 사건'에서 드러나듯 이미 불태워진 채 매장된 피학살자의 사체를 얼마 후 다시 땅에서 파내 재차 불태우기조차 했다. 학살 증거를 은폐하기 위한 간악한 술책이었다. 당시 일제 당국의 태도가 이러했으니, 오늘날까지도 식민지 시대 일제가 자행한 학살 당시의 정황과 통계를 정확히 알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문 대통령의 3.1혁명 당시 사상사 수 언급을 문제 삼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과연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이로써 확연할 것이다.

일본의 '항의 망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 이대로 좋은가

그런데 여기서 좀 더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이번 '항의 망발' 사실을 전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이다. 3월 4일 오전 2시 01분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필자가 "일본 문 대통령 항의"라는 검색어로 관련 기사를 검색한 결과 총 17건이 확인되는 바, 이 중 <남도일보>와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사는 모두 일본의 항의 사실을 중계하는 데서 그치고 있을 뿐, 이에 대해 적실하게 반박하거나 비판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중앙 5대 일간지(조선, 중앙, 동아, 경향, 한겨레)의 사설에서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당국이 3.1절 기념사 당일 즉시 한국 정부에 항의한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현상이다.
 
3월 4일 오전 2시 1분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일본의 '항의 망발' 관련 국내 언론 기사를 검색한 결과
▲ 3월 4일 오전 2시 1분 현재 일본의 "항의 망발"에 관한 국내 언론 기사 검색 결과 3월 4일 오전 2시 1분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일본의 "항의 망발" 관련 국내 언론 기사를 검색한 결과
ⓒ 윤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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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역할이란, 단순히 '사실 중계'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의 평균적 정서 또는 여론을 대변하는 것 역시 언론의 역할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당국의 '항의 망발'은, 우리 국민 일반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사태임에 분명함에도 이를 반박하기는커녕 최소한 '논란이 예상된다' 정도의 기사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은 무척 기이한 현실이 아닌가.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되며,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이 기자 사회에서 작용하고 있는 탓일까. 아니면, 민족주의(속칭 '국뽕')의 분출에 대한 경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탓일까.

물론 일본의 도발이나 망발에 대해 이성적으로,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성적, 전략적 대응'은 어디까지나 정부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다. 언론이 그러한 정부의 역할까지 떠맡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의 생각과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 집단이다. 또 언론이 그러한 우리 사회의 여론과 정서를 대변함으로써 일본 당국과 여론에 확실히 주의를 환기시켜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일본에 대한 감정 표출을 억제하는 담론에는 일견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의식 역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도발이나 망발에 대한 적실한 반박과 대응을 과연 민족주의의 분출로 볼 수 있을까? 현재 한일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일본 정부가 과거 식민지 범죄와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범죄와 전쟁 범죄를 규명하는 일은, 민족주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을 비롯해 일제의 범죄에 의해 각종 피해를 입었던 과거 20세기 동아시아 민중의 실태를 명명백백히 밝혀 그러한 반인륜적 범죄의 재발을 경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100년 전 지금,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식민주의에 맞서 단순히 피압박 민족으로서 싸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의, 인도, 평화, 평등과 같은 인류 보편의 사상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를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100년 전 선조들의 뜻을 이어 일본 정부가 그 책임을 다할 때까지 일본의 식민지 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해 엄중히 추궁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체제 수립을 향한 여정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태그:#3.1절 기념사, #문재인 대통령, #일본 외무성, #경신대학살, #식민지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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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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