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행어사 '네이버만화' 페이지 캡처

▲ 신암행어사 '네이버만화' 페이지 캡처 ⓒ '네이버만화' 페이지 캡처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연재되었던 <신암행어사>가 네이버라는 플랫폼에 도착했던 것은 1895년의 시오타역에 열차가 도착했던 것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슈퍼스트링이라는 이름의 웹툰 세계관 프로젝트의 사명을 안고 도착한 이 만화는 이전의 흑백에서 벗어나 컬라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도착하였다. 이 만화는 과거의 그것과 컬라라는 것과 네이버 플랫폼에 맞춘 대사 수정 말고는 과거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데(2019.01.25. 현재까지), 이 만화의 도착이 우리에게 남긴 시사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출판만화가 웹툰이라는 플랫폼으로도 진출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과거의' 유산이 다시금 조명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출판만화가 웹툰 플랫폼과 동시에 연재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찾기 어렵지도 않다. 같은 네이버 플랫폼에서도 <국립자유경제고등학교 세실고>와 <격기3반>이 주간 챔프에서 동시에 연재되었다. 그러나 <용비불패>를 출판만화로 연재했었던 문정후가 네이버 플랫폼에 그 후속작을 공개했고 그 여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10대에서 20대가 주를 이루던 웹툰 플랫폼에, 그것도 레진코믹스처럼 구매력이 있는 20~30대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네이버 플랫폼에서 과거의 출판만화 세대인 40대를 돌아오게 한 것은 문정후라는 이름 석 자였다.

여기에 장태산이라는 거장의 손길이 <몽홀>이라는 작품을 내놓았을 때 그 과거의 향수는 정점에 달했다. 그는 연재 초반에 옛 출판만화 스타일에 맞추어 연재하다가 작품이 모바일 환경에서 보기 불편하다는 독자들의 지적을 받고는 곧바로 다음 화에 웹툰 스타일로 변경하였다. 요컨대 옛 거장이 웹툰 시장에 도착한 것은 어떠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임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웹툰이라는 플랫폼의 특징인 독자와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이는 그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작가임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논할 것은 약간은 다른 문제다. 그들이 돌아왔다는 점에는 웹툰 시장의 부흥이 예상될 것이지만 <신암행어사>의 경우에는 과거의 작품을 최근에 창설된 슈퍼스트링 프로젝트에 편입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를 같은 플랫폼에서 완결 내어 이 또한 슈퍼스트링 프로젝트에 편입한 윤인완과 양경일의 현 연재 작품에는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삶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요컨대 이것은 리메이크도 아니요 재연재인데, 말하자면 과거의 망령을 현재에 살려낸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그 망령이 구천을 떠돌지 않고 현세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에 대한 첫 번째 발걸음. 고전이란 게 시대가 변해도 통용되는 의미를 품는 것이라면 이 <신암행어사>의 이야기는 확실히 고전이다. 작품의 주인공 문수는 멸망한 나라 쥬신의 상급 관리이자 암행어사로, 세상을 떠돌며 악덕한 사람들을 혼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르로 따지면 피카레스크에 속하는 이 작품에서 문수는 선한지 악한지 구분할 수 없게 나오며, 그럼에도 그가 아니라면 더 큰 악인 아지태를 죽일 수가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때 아지태를 문수만이 죽일 수 있는 것은 문수에게 아지태의 술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인데, 여기서 우리는 악은 악을 죽일 수 없다는 피카레스크의 새로운 논리를 보게 된다.

악인이 악인을 죽이는 피카레스크의 기본 공식에서 살짝 벗어난 이 만화의 세계관에는 아지태라는 전지전능한 인물의 힘이 오직 문수에게만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부여되어있다. 이것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해리포터에게 볼드모트의 힘이 통하지 않은 것과도 마찬가지인데, 그 작품에서 해리는 착한 사람이었고 이 만화에서 문수는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문수에게는 초월적 힘인 팬텀솔져가 있고 아지태에게는 초월적 힘인 환영이 있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초월적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악인의 전지전능함은 이 만화에서 그저 겉보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과도 같은 그것을 내치고 오직 동료와 맨 신체로만 그들은 싸우게 된다.

어쩌면 이런 설정이 2018년 무렵의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초월적 힘을 제거하면 무엇이 남을지에 대한 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컨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피카레스크이며, 모든 이는 악인이라는 가정 하에 그것은 '누구라도 의롭기만 하면 마패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작품 속 설정에 대응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누구라도 악하기만 하면 초월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말하자면 세상 누구라도 권력의 자리에서는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태를 필두로 여러 타락한 이들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우리들의 회한이 담겨있다. 그 천재는 천재가 아니라 범죄자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으며,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에는 천재의 타락에 대한 비관과 권력에 대한 분노라는 양가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즉 우리는 작품 속 문수의 모습처럼 현재 권력의 자리에 앉은 그들을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문수의 껄렁한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권력자들을 기본적으로 악인이라는 형태에 넣은 후 그 마음속에서는 선함이 싹트고 있다는 식의 도덕성을 판가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연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런 일은 절대로 바라면서 살지 마!"라는 작품 속 문수의 첫 대사에 주목하게 되었을 테다. 문수가 혼란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구하며 외치는 이 대사에는 긍정과 부정이 모두 섞여 있다. 요컨대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것은 우연이고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항에 자리한 대통령 탄핵 판결이 우연이고 이와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신암행어사>의 문수가 2018년의 우리에게로 도착했다는 것에 공포와 위안을 동시에 느끼게 될 테다. '과거의 유산' 인줄로만 알았던 그것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다시금 도착했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고, 그것을 막아낸 현재에 이르러서 이 작품은 과거를 돌아보는 성격이 되었다. 그래서 이것은 공포이자 위안이고 현재에서도 '슈퍼스트링'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간의 고리일 테다.
만화 신암행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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