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라남도 곡성은 고용위기를 겪는 여러 지방도시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지역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민간연구단체인 랩2050은 최근 곡성을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고용위기가 가장 취약한 곳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금호타이어가 중국 기업에 매각된 후, 곡성 공장은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고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공동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곡성을 통해 한국 제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진단하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본다.[편집자말]
 
곡성 금호타이어 공장은 중국 기업 매각 이후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곡성 금호타이어 공장은 중국 기업 매각 이후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2월 14일 전라남도 곡성. 서울을 떠날 때 보였던 파란 하늘을 이곳에선 볼 수 없었다. 곡성 기차역에서 내린 하늘은 회색의 미세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기자는 곧장 발걸음을 재촉해, 곡성군 입면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지난해부터 끌어온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찬반 투표가 열리기로 돼 있었다. 합의안에는 임금 동결을 비롯해 인원 전환배치 등 하나같이 조합원들에게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회사와 어렵사리 합의안을 이끌어낸 노동조합 집행부 역시 조합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곡성공장 입구에는 조합원 투표를 위한 기표소 2곳이 마련돼 있었다. 투표가 한창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현장은 썰렁했다. 4조 3교대로 돌아가는 작업 환경 탓도 있지만, 그동안 회사를 둘러싼 부침이 생산 현장의 활기를 앗아가 버린 듯 했다.

결국 투표 결과, 합의안은 조합원 대다수의 반대(74.7%)로 부결됐다. 회사에 대한 불신과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조합원의 두려움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잘 나가던 금타는 어쩌다?

국내 3대 타이어 제조업체 중 하나인 금호타이어는 호남 향토기업인 금호그룹의 한 사업으로 시작됐다. 전남 광주와 곡성, 그리고 경기 평택 등 전국 3곳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광주와 평택처럼 대도시 중심이 아닌 곡성에 타이어공장이 들어선 것은 지난 1989년 10월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장이 지어진 곡성군 입면은 말 그대로 산골 오지 중에 오지였다고 한다. 이런 곳에 대기업 공장이 들어선 경우 자체가 드물었고, 곡성 공장은 이후 입면과 주변 옥과면 등 곡성군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입면 출신인 정송강 금호타이어 노동조합 곡성지회장은 "지금은 큰길에서 공장까지 차로 5분이면 들어갈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버스도 하루에 한 대만 다니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광주 출신으로 1996년 회사에 들어온 한승권 곡성지회 기획실장​​도 당시를 또렷히 기억했다. 그는 "하루에 4~5대에 불과하던 버스 배차 간격이 곡성공장이 들어오고 나서 30분~1시간 단위로 바뀌었다"면서 "지금은 30대 정도 다닌다"라고 말했다.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위치한 한 자동차 정비센터에 타이어가 수북히 쌓여 있다.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위치한 한 자동차 정비센터에 타이어가 수북히 쌓여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곡성공장은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지난 2004년 당시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품질경쟁력 우수기업에 5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연간 공장가동률은 94%를 기록했고, 생산 실적도 1410만여본(타이어 갯수 단위)이나 됐다. 역설적이게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로 회사의 자금이 최저였던 2010년 전후로 전세계 타이어 시장은 최대 호황기였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 금호그룹 오너가의 경영권 분쟁과 회사의 유동성 위기는 노동자의 인건비 희생으로 돌아왔다. 임금은 삭감됐고, 상여금을 반납해야 했다.

한 기획실장은 "2005년에서 2010년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 직후까지 (타이어 업계가) 가장 호황이었다"면서 "2012년 매출이 지금의 2배였고 이익도 엄청나게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는 힘들었는데 실제로는 회사는 돈을 가장 많이 번 시기였다"면서 "워크아웃 들어가는 시점에 임금 5% 반납과 10% 삭감을 해서 실질임금이 30% 줄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 중에는 이 시기에 가장 높은 연봉을 받았던 이도 있다. 수요가 많았던 만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장을 매일 가동해야 해서 휴원근(사고자 대신 근무)이 언제나 발생했다. 이를 통해 삭감된 임금을 보전 받았다. 금호타이어는 여느 제조업과 달리 시급제가 아닌 일당제로 기본급이 주어진다. 800%의 상여금도 기본급이 아닌 온갖 수당을 붙인 전체 임금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마다 직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퇴직금 중도인출 인원수가 이를 반증한다. 노조 쪽에 따르면, 회사의 존폐가 걸린 매각이 있었던 지난해 약 300명 이상이 신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 2016년 적자가 계속되던 때에는 382명이, 워크아웃 절차가 본격 진행됐던 2012년에는 무려 845명이 중도인출로 숨통을 틔워야 했다.

젊은이들의 이탈
 
곡성군 연령별 성별 인구를 1세 기준으로 피라미드로 만들었다.
▲ 전라남도 곡성군 인구피라미드(2000-2018)  곡성군 연령별 성별 인구를 1세 기준으로 피라미드로 만들었다.
ⓒ 이종호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사원아파트. 사원아파트에 입주한 공장 노동자들이 줄어들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사원아파트. 사원아파트에 입주한 공장 노동자들이 줄어들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회사가 승승장구하던 시절에는 약 280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사원아파트도 줄을 서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1995년에 입사한 정송강 지회장은 "신입사원 시절 사원아파트가 꽉 차서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면서 "복지 차원에서 사원아파트 내 자체 어린이집도 운영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 인원이 많아 인근에 사설 유치원도 들어섰다. 그는 "사내 유치원 입학은 추첨으로 진행됐고, 떨어지면 억울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많아 사원 아파트 인근을 비롯해 입면 소재지 초등학교가 3곳이나 됐다.
  
그러나 20년 이상 지속된 회사의 부침에 직원들이 점차 줄어들자 사설 유치원을 비롯해 2개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공장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정규직 1722명 중에 곡성소재에 거주하는 가구는 270세대이다. 이 가운데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수는 29명, 초등학생은 108명이다.

1995년에만 해도 곡성군은 인구 4명 가운데 1명 가량이 20·30대였을 만큼 젊은 도시였다. 당시 곡성의 20~39세 인구는 1만1633명으로, 전체 인구 중 27.85%를 차지했었다. 2016년 말 기준 곡성의 20~39세 인구는 5081명으로 절반 넘게 줄어들었고, 그 비중도 16.71%로 크게 감소했다. 

자연히 아기 울음소리도 줄었다. 1995년 1765명이었던 곡성군의 0~4세 인구는 2016년 719명으로 1000명 넘게 감소했다. 곡성군민 가운데 4세 이하 인구의 비중도 같은 기간 4.22%에서 2.36%로 반토막 났다. 

지난 2000년 362명이었던 곡성군 출생아수는 2017년 115명으로 고꾸라졌고, 혼인건수도 204건에서 107건으로, 초등학생수도 2169명에서 967명으로 절반 가량 떨어졌다. 반면 곡성군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은 2000년 18.09%에서 2018년 33.85%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재 곡성에 살고 있는 사람 3명 가운데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얘기다. 

공장 노동자의 평균 연령도 50대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공장에서는 '딱 봤을 때 젊은 사람이면 100미터(m) 밖에서도 광채가 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정 지회장은 "면이나 군에서 예산 확보를 위해 계속해서 회사 쪽에 직원들의 관외 이사를 막아달라는 식의 협조 요청을 한다"면서 "실제로 예전에 한창 직원들이 빠져나갈 때는 학교에서도 협조 요청 및 이사 이유를 물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떠나자 경제도 무너졌다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한 건물에 지역경제 침체로 인해 새 주인을 찾는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한 건물에 지역경제 침체로 인해 새 주인을 찾는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한 건물에 지역경제 침체로 인해 새 주인을 찾는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상인들은 “할인행사를 해도 경기침체로 인해 손님도 없고 상권이 많이 죽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31일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한 건물에 지역경제 침체로 인해 새 주인을 찾는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상인들은 “할인행사를 해도 경기침체로 인해 손님도 없고 상권이 많이 죽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곡성군의 지역내총생산(GRDP) 순위는 지난 2005년 14위에서 2016년 16위로 2단계나 하락했다. GRDP는 지역의 경제상황, 쉽게 말해 '부'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 20년 동안 곡성군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 곡성군 전체 사업체수는 1996년 2217개에서 2016년 2042개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제조업수는 242개에서 200개로, 도·소매업은 813개에서 533개로 줄었다. 반면 숙박 ·음식업수는 1996년 374개에서 2016년 399개로 소폭 늘었다. 

이와 같이 곡성군의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경제순위가 하락한 데에는 '금타의 위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10년 본사가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불어닥친 칼바람이 곡성공장까지 닿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조업 불황까지 겹쳤다. 회사가 매각되자 비용 절감 차원에서 도급협력업체 대상의 구조조정이 우선 실시됐다.

노조 쪽은 이의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4개 업체에서 하나로 통폐합된 미화업체를 꼽았다. 한 기획실장은 "도급협력업체 쪽들은 구조조정 하면서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신규 인력으로 대체해오고 있다"면서 "지난해 60억 원이었던 미화업체 계약에 책정된 금액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비용 절감을 실현했는데, 구체적인 금액은 회사 쪽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내식당의 식자재 납품 업체도 지역 업체에서 CJ 프레시안으로 4년 전 교체됐다. 한 기획실장에 따르면 당시 인근 농가에서 업체 변경에 대한 반발이 매우 컸다. 기존 업체는 지역 농산물을 주로 구매했지만 CJ 프레시안의 경우 이미 확보된 유통 경로가 있어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타의 식자재 납품 업체 변경은 인근 지역 농가 소득에 영향을 미쳤다.

한 기획실장은 "매각 이전에 회사 쪽에서 도급업체를 방만하게 운영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도급업체) 사장들이 금타 임원 및 부장 등의 직위 출신으로 비효율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업체 변경을 통한 비용 절감 정도를 알 수 없다"면서 "도급업체를 바꾸면서 고근속 근무자 고용을 승계하지 않고 신규채용으로 채우는 식으로 비용을 아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금타 공장을 다니는 지역 주민의 수가 줄었다. 정 지회장은 "곡성 지역 채용이 가장 활발했던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는 직원 중 30~40%가 인근 지역 주민이었다"면서 "추천 채용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2000명 조합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던 시기였다. 어림 잡아도 600명~800명이 곡성 주민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사정도 회사가 부침을 겪으면서 180도 바꼈다. 한 기획실장은 "설비파트의 경우 지원자격은 제가 입사하던 시기와 같을지언정 대학을 나와도 입사가 어려울 정도로 취업문이 좁아졌고, 지역 추천도 더 이상은 없다"고 말했다. 노조 쪽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비조합원 포함한 정규직 1722명 가운데 곡성주민은 313명이다.

곡성군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곡성군 전체 사업체 종사자 9096명 가운데 2086명이 금타 곡성공장에서 근무했다. 곡성에서 일하는 사람 100명 중 23명은 금호타이어 직원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후 2016년 금호타이어 곡성공장 직원은 175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곡성 안에서의 금호타이어 노동자 비중도 15.48%로 감소했다.

금호타이어와 곡성은 그렇게 같이 쇄락해가고 있었다.

태그:#창간기획, #금호타이어, #곡성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