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던 2016년 여름. 제31회 리우 하계올림픽에 참가했던 손흥민은 올림픽 대표팀이 8강전에서 온두라스에 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당시 경기에서 결정적 기회를 다수 놓쳤던 손흥민은 눈물을 흘렸다.

당시 소속팀 상황도 좋지 못했다. 2015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엘 04 레버쿠젠을 떠나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으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입성한 손흥민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빠른 템포의 EPL 무대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치며 교체 선수로 밀려났다.

1년 동안 서서히 추락하던 손흥민에게 VfL 볼프스부르크가 손을 내밀었다. 뛰고 싶은 손흥민의 마음까지 더해져 볼프스부르크 이적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토트넘의 반대로 분데스리가 컴백은 무산됐다.
 
도르트문트 상대로 결승 골 터뜨리는 손흥민 손흥민(토트넘, 오른쪽)이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르트문트(독일)와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에서 팀의 첫 골을 넣고 있다. 이날 후반 2분 결승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4경기 연속골을 뽑아내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 도르트문트 상대로 결승 골 터뜨리는 손흥민 손흥민(토트넘, 오른쪽)이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르트문트(독일)와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에서 팀의 첫 골을 넣고 있다. 이날 후반 2분 결승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4경기 연속골을 뽑아내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 AP/연합뉴스

 
궁극적으로 이는 토트넘과 손흥민 모두에게 '신의 한수'였다. 손흥민은 절치부심 끝에 토트넘 두 번째 시즌부터 팀의 주요 자원으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토트넘이 자랑하는 공격수로 성장했다. 지난 3년 간 많은 것이 변한 손흥민이다.

향상된 오프 더 볼 움직임

토트넘 입성 첫 해에 손흥민의 최대 약점은 단연 '오프 더 볼(Off the ball)' 움직임이었다. 쉽게 말해 공을 잡지 않았을 때 움직임이 좋지 못했다.

항상 공 근처를 멤돌며 패스를 받기 원했던 손흥민이었다. 동료의 위치와 팀 전술을 고려하지 않은 손흥민의 움직임은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다. 패스를 받아도 불리한 위치에서 공을 잡은 탓에 소유권도 쉽게 잃었다. 손흥민이 부진한 경기 직후에 손흥민의 오프 더 볼 움직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으레 들려왔다.

놀랍게도 손흥민은 한 시즌 만에 약점을 개선했다. 무리해서 공 근처로 가 패스를 요구하지 않고 동료의 움직임을 활용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기인 스피드와 슈팅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서 공을 잡기 시작하자, 우리가 알던 손흥민이 돌아왔다. 벤치 멤버였던 손흥민이 2016년 9월 EPL '이달의 선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였다.

공이 없을 때 움직임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14일 오전 5시(한국시각)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이를 증명한 손흥민이다.

후반전 초반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서 올라온 얀 베르통헌의 크로스를 기민한 움직임으로 낚아채 멋진 발리 골을 넣었다. 자신의 마크맨이었던 거구의 수비수 닥-악셀 자가두를 무력화 시키는 영리한 위치 선정이었다.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도 손 꼽히는 중앙 수비수인 자가두를 오프 더 볼 움직으로 무너뜨릴 정도로 성장한 손흥민이다.

'손기복'에서 '손꾸준'으로

비단 EPL에서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손흥민은 꾸준하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판을 받았다. 잘 풀리는 날에는 2~3골도 가볍게 터뜨리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는 철저히 침묵했다. 경기에 따라 기복이 있다는 의미로 '손기복'이라는 오명도 따라왔다.

이러한 비판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6-2017 시즌을 기점으로 경기마다 경기력의 격차를 줄이기 시작한 손흥민은 지난 시즌부터는 시즌 내내 꾸준한 실력을 뽐냈다. 한 경기에서 여러 골을 몰아치기보다 여러 경기에 골을 나눠 넣기 시작했다. 골을 넣지 못한 경기에서도 위협적인 몸놀림으로 호평을 받았다.

'손기복'은 진작에 벗어난 손흥민이다. 이번 시즌은 꾸준함 그 자체인 '손꾸준'이다.

기록으로도 증명 중이다. 손흥민은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뛴 최근 11경기에서 11득점 5도움을 기록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그 경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생산했다. 무엇보다 11골을 9경기에 나눠 넣었다. 근래의 득점 페이스와 순도는 EPL을 넘어 유럽 전체에서도 눈에 띄는 기록이다.

거의 매 경기 토트넘에서 '승리의 파랑새' 역할을 하고 있는 손흥민이다. 3~4경기 연속골은 이제 가볍게 달성하는 선수가 됐다.

달라진 위상

본래 우수한 속도와 슈팅력을 갖춘 선수가 오프 더 볼 능력과 꾸준함마저 장착했다. 당연히 손흥민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상한가를 치고 있다.

지난 새벽 있었던 토르트문트전 손흥민의 활약에 감화된 영국 언론 BBC SPORT는 "손흥민은 유럽 최고 선수이며 월드클래스다. 그는 월드베스트에 선정돼야 한다"며 극찬을 보냈다. 물론 자국 클럽 팀 선수의 놀라운 활약에 다소 흥분한 경향이 있더라도, 공신력 높은 BBC에서 유럽 정상의 상징과 같은 월드베스트를 언급했을 정도로 손흥민의 가치는 높아졌다.

손흥민은 이제 EPL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를 받는다. 과거 EPL 최고의 공격수로 불렸던 앨런 시어러와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무수한 찬사가 매 경기 직후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고,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불리고 있다. 아직 만 27세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박지성의 입지를 거의 따라잡았고, 심지어 '전설' 차범근을 추격하고 있다. 아직은 선수로서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넘어설 수 없지만, 길고 긴 손흥민의 남은 축구 인생을 고려하면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도르트문트전서 '결승 골 폭발' 손흥민의 세리머니 손흥민(토트넘, 왼쪽)이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르트문트(독일)와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에서 팀의 첫 골을 넣은 뒤 양팔을 펼치는 세리머니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이날 후반 2분 결승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4경기 연속골을 뽑아내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 도르트문트전서 '결승 골 폭발' 손흥민의 세리머니 손흥민(토트넘, 왼쪽)이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르트문트(독일)와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에서 팀의 첫 골을 넣은 뒤 양팔을 펼치는 세리머니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이날 후반 2분 결승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4경기 연속골을 뽑아내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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