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위치> 포스터

<더 위치> 포스터 ⓒ 넷플릭스


2015년, 진중권 교수는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혐오 문제에 대해 외국인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진중권 교수는 혐오 현상이 "문제 원인이 아닌 범인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했다. 사회에는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규명하고 싶어 하고 그에 대한 가장 빠른 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공무원들의 안일함 때문에 IMF를 겪었으나 당시 언론은 해외 여행과 수입물품을 쓰는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게 범인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15세기에 시작돼 16~17세기 절정에 이른 유럽 사회의 마녀사냥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기독교 사회는 종교 권력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이교도와 종교 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종교인들은 세상에 악마가 존재하며 그들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인 마녀가 있다는 걸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라 낙인찍고 사형을 집행했다. 마녀사냥이 통했던 이유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대였고 그 현상의 원인을 모두 마녀에게 돌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녀가 되는 대상은 혼자 사는 노파부터 마을의 건실한 청년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모함만 당하면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었다.
  
 <더 위치> 스틸컷

<더 위치> 스틸컷 ⓒ 넷플릭스

 
1692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있었던 살렘 마녀재판을 소재로 한 <더 위치>는 가장 따뜻하고 서로를 신뢰해야 될 가족 사이의 마녀 사냥을 다룬 작품이다. 17세기 중반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 청교도 마을에 살았던 윌리엄은 종교적 이견 때문에 가족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그들은 숲속에 자리를 잡고 그 땅을 개간하고자 한다. 가축을 기르고 옥수수를 심지만 마을에서의 풍족한 생활에 비하면 턱 없이 곤궁해진 윌리엄 가족. 그러던 어느 날 딸 토마신은 눈 가리고 까꿍 놀이를 하던 아기가 눈을 감은 사이 사라지자 당황한다.

아기가 숲의 악마에게 끌려갔을 것이라 여기는 가족들. 그리고 그때부터 윌리엄 가족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아들 케일럽은 누나 토마신에게 성적인 욕망을 품는다. 어린 머시와 조나스는 토마신이 악마에게 아기를 바쳤다고 말하고 염소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을 나무라는 머시에게 화가 난 토마신은 장난으로 자신은 악마라며 머시에게 겁을 준다. 하지만 이 행동은 곧 토마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윌리엄은 입을 줄이기 위해 토마신을 마을에 하녀로 보내고자 한다. 토마신은 케일럽과 함께 숲을 건너던 중 흥분한 말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케일럽은 사라진다. 돌아온 케일럽은 마치 악마가 씌인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머시는 토마신이 스스로 악마라고 고백했다는 말을 한다.

이 작품의 공포는 가족이 가족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부모는 딸 토마신이 마녀일 것이라 생각한다. 토마신의 저주 때문에 케일럽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게 부모의 추측이다. 이 추측의 근거는 과거에서 시작된다. 토마신이 아기를 잃어버렸던 그 순간을 부모는 잊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마신은 이 추악한 믿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생들을 팔아넘긴다. 기독교에서 염소는 악마의 동물로 여긴다. 토마신은 염소와 대화를 나누는 동생들이 마녀라고 주장한다.
  
 <더 위치> 스틸컷

<더 위치> 스틸컷 ⓒ 넷플릭스

 
<더 위치>는 가족 사이의 의심을 통한 공포를 야기한다. 가족들은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범인으로 서로를 지목한다. 그들 사이의 신뢰와 믿음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이 무서운 이유는 이런 가족의 붕괴가 케일럽의 병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현상의 중심에는 원인이 있다. 이들 가족 공동체의 붕괴의 원인은 경제적 빈곤에 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을을 떠났고 그 이후 가족들은 모두 열심히 일은 하지만 배부르게 살 수 없는 빈곤에 시달린다.
 
가부장제 사회였던 중세에서 가장이 제대로 가정을 이끌지 못한다는 건 그 가정의 붕괴를 의미한다. 아버지 윌리엄의 선택은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를 탓하거나 미워할 수 없기에 그들은 다른 범인을 찾게 된다. 그 범인을 만들어준 현상이 아기의 실종과 케일럽의 병이다.

그리고 권위적인 아버지는 가족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범인으로 몰린 토마신을 더욱 몰아세운다. <더 위치>는 마녀사냥의 본질을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 찾는다.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를 담아낸 이 작품은 가장 따뜻하고 믿음을 주어야 될 가족 사이의 의심과 붕괴를 통해 심리적으로 강한 충격을 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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