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인 할매> 포스터

영화 <시인 할매> 포스터 ⓒ (주)스톰픽쳐스코리아/와이드 릴리즈(주)


평균 연령 80세의 할머니들이 처음 글을 배워서 시를 쓴다. 예쁘게 그림도 그리고 어설픈 한글 실력으로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시는 여느 유명한 시인의 시보다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지니고 있다. 솔직한 자신의 진심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았기 때문이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이라는 작품 속 시의 구절은 할머니들이 살아온 세월이 담겨 있었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시인 할매>는 힘겨운 삶을 살아온 우리네 어르신들의 진심을 통해 우리에게 따스한 위안을 준다. 전라남도 곡성의 작은 마을에 살던 할머니들은 마을 도서관의 김선자 관장을 만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김선자 관장은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할머니들의 시는 2013년 성인문해교육시화전에서 장려상, 2015년 곡성문학상에서도 상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2016년에는 할머니들의 시를 모아 낸 시집 <시집살이 시(詩)집살이>가 발매되었다. 까막눈이던 할머니들은 시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시인이 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인 할매>는 세 가지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영화 <시인 할매> 스틸컷

영화 <시인 할매>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와이드 릴리즈(주)

 
첫 번째는 과거와의 만남이다. 할머니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전쟁 때문에, 가난 때문에,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교육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했다. 할머니들은 평생을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열을 올려야 했다. 젊은 시절에는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 농사로 고생을 해야 했다. 노년이 된 할머니들은 어린 시절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된다.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린다. 처음 잡아보는 싸인펜에 할머니들은 즐거움을 표한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들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에 경험해 볼 법한 순간들을 노년에 이르러 접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들이 작가와의 만남으로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처음 학교에 가는 장면이나 벽화를 그리는 장면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그런 순수함을 경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담아낸다.
  
 영화 <시인 할매> 스틸컷

영화 <시인 할매>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와이드 릴리즈(주)

 
두 번째는 글을 통해 전해지는 진심이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라는 구절이 인상적인 윤금순 할머니의 <눈>은 지나온 세월을 견뎌온 자신에 대한 위로를 담아냈다. 차갑게 쌓이는 눈을 몇 번이고 쓸어내는 계절을 보내면서도 참고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다. 죽은 남편과 아들을 기리는 시, 명절 날 보고 싶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 등 할머니들의 시는 가족과 인생을 향한 위로와 위안이 담겨 있다.
 
이런 할머니들의 시는 그 가족들에게 깊은 감동과 눈물을 선사한다. 말은 휘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자리에서 내뱉고 사라진다. 할머니들은 말이 어눌하고 느리다. 또 달변가처럼 포인트를 잡아 이야기하는 기교나 말을 포장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지만 그 진심이 자식들에게 확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시로 기록된 할머니들의 진심은 그 자식들은 물론 손자, 손녀까지 마음 한 구석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영화 <시인 할매> 스틸컷

영화 <시인 할매>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와이드 릴리즈(주

 
세 번째는 남겨진 기록이다. 김선자 관장은 시뿐만 아니라 그림, 벽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할머니들의 기록을 마을에 남기고자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면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승에 없어진 유령은 저승에서도 소멸되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잊힌다는 사실만큼 슬프고 두려운 일은 없다. 할머니들은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또 세상에 남길 수 있게 된다. 가족들이 평생 자신들을 기억할 수 있는 시와 그림을 남기게 된 것이다.
 
시를 통해 할머니들은 지나온 삶의 순간과 감정을 표현했다. 그 순간과 감정은 글에 담겨 평생 할머니들을 기억할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아내로, 그리고 어머니로 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은 시인이라는 새로운 삶을 통해 세상에 자신들의 모습을 남기게 되었다.

시는 짧은 언어에 함축적으로 생각과 감정을 집어넣는다. 그래서 시인은 많은 단어를 알아야 하고 한 줄 한 줄에 독자에게 인상을 줄 문장을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잘 쓴 시는 단 한 단어라도, 한 구절이라도 감정적인 공감이나 감명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할머니들의 시에는 8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며 느낀 감정이 담겨 있다. 글을 써야 된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짜내거나 지어낸 구성이 아닌 마음에 담아둔 오래된 말이 글에 담긴다. <시인 할매>는 영화나 드라마가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깊이와 감동을 보여준다. 까막눈 할머니들이 처음 글을 배우면서 전하지 못했던 진심들을 시를 통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올 겨울을 따스하게 녹이는 따스한 위안을 전해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시인할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