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종영한 JTBC 드라마 < SKY 캐슬 >은 시청률과 화제성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대단한 드라마다. 1%대 시청률에서 출발해 마지막회는 23.7%라는 높은 시청률로 '비지상파' 드라마의 기록을 새로 썼고, 각종 성대모사와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방영 내내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좋은' 드라마였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후반부 혜나(김보라 분)의 죽음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한 이 드라마는 강준상(정준호 분)의 뜬금없는 회개로 내리막에 접어들더니 마지막회에 이르러서는 교훈적이고 당위적인 결말로 애써 마무리를 시도한다. 예서네가 앞서 김주영 선생(김서형 분)의 코디를 받았던 다른 가족들과 달리 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 스스로 멈췄고, 나머지 세 가족도 나름의 평화를 찾았다는 점에서는 언뜻 훈훈한 결말일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하기엔 좀 찝찝한 전개다.
 
여성 주연 5명을 내세운 이 드라마가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전형적인 방식은 결국 스토리 전개에 치명적인 약점이 됐고,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교훈을 제공한다. < SKY 캐슬 >은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성중심의 서사가 반드시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것은 아니며, 도리어 도구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 SKY 캐슬 >이 겨냥한 건 '입시제도'가 아니라 '엄마'였다
 
 드라마 <SKY 캐슬> 중

드라마 ⓒ JTBC

 
모든 인물들이 하나같이 개과천선한 마지막회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었던 지점은 캐슬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극이 네 가족 외에 캐슬 밖 세상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예서네가 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의사 가족이 들어왔고, 은행 V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입시 코디는 성행 중이며 캐슬은 여전히 견고하다. 이는 마치 상류층의 입시 열풍을 그린 이 드라마가 한편으로는 사교육을 더 부추기는 지금의 현실과도 묘하게 닮아있다.
 
그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 SKY 캐슬 >은 애초에 '입시제도'를 비판하는 드라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개인의 욕망에 집중했고, 그 중심에 한서진(염정아 분)과 김주영이 있었다. 극 중에서 내내 갈등관계에 있었던 둘은 모두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엄마'였다. 작가의 의도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드라마는 이런 엄마들을 만들어 낸 사회구조적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렇게 극성 엄마들의 비뚤어진 욕심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구조와 제도는 쉽게 잊혀진다.
 
< SKY 캐슬 >에서 엄마들은 악인이 되거나 필요 이상의 대가를 치르는 반면, 아빠들의 명백한 잘못은 묵인되거나 너무 쉽게 용서받는다. 김주영의 코디를 받은 영재네에서도 죽음을 택한 쪽은 엄마였고, 가정폭력을 저지른 아빠 박수창은 마지막회에서 아들과 화해한 좋은 아빠로 등장한다. 혼외자식을 둔 강준상에게 아무도 잘못을 묻지 않는다. 정작 문제의 원인인 강준상은 빠진 채 강준상의 엄마와 아내 한서진, 딸 혜나가 서로에게 화살을 겨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후반부 혜나의 죽음 이후 갑작스러운 강준상의 변화다. 작가는 강준상에게 엄마와 아내를 교화하고, 파괴된 가정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해결사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그간의 잘못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 그 과정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였던 혜나는 강준상의 회개를 위한 수단으로만 소비됐고, 이기심 많은 악인은 한서진에서 강준상의 엄마로 옮겨갈 뿐이다.
 
그리하여 내일모레 50이 되는 중년 남성이 모든 잘못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갑자기 정의의 사도가 되어 아내를 경찰서로 이끄는 다소 황당하고 우스운 설정이 < SKY 캐슬 >에서는 당연하고 마땅하게 그려진다. 결국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예서네 가족은 극을 이끌어왔던 중심인물 한서진이 아니라, 갑자기 주인공이 된 가장 강준상을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새출발한다.
 
가족으로 회귀하는 엄마들
 
 드라마 <SKY 캐슬> 중

드라마 ⓒ JTBC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 SKY 캐슬 > 엄마들이 선택한 변화도 결국 가족을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수렴되고, 끝내 가부장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다. '자식과 상관없이 온전한 나'를 마주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좋은 엄마'가 되기를 자처한다.
 
당초 캐슬 내의 과도한 입시경쟁을 지적하는 정의로운 캐릭터로 등장해 작가의 메시지를 대신 전했던 이수임(이태란 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아들 우주의 석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로만 기능하면서 점차 캐릭터의 힘을 잃었다.

마지막회에서 구색 맞추기로 이수임의 책 <안녕 스카이캐슬>이 나오기는 했지만, 캐슬의 변화를 주도하는 결정적인 인물이 되지는 못했다. 남편 차민혁(김병철 분)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며 "당신과의 결혼을 후회한다"던 노승혜(윤세아 분)도 마지막에는 남편과의 이혼 대신 가정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캐슬에 새로 입주한 민자영의 말처럼 세 엄마들만이 '천연기념물'로 남을테고, 현실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비극이 반복됐을 때, 화살은 아마도 자식 교육을 위해 의사라는 직업까지 포기한 엄마 민자영에게로 가장 먼저 향할 것이다. < SKY 캐슬 >이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은 캐슬의 세 엄마들이 민자영을 바라보는 시선, 딱 그 정도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성을 위한 문화콘텐츠 리뷰 미디어 <치키>(http://cheeky.co.kr/2729)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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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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