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주 MBC 앵커

임현주 MBC 앵커 ⓒ MBC

 
"많은 분에게 '자각하지 못했던 것에 놀랐고 고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SNS로 메시지도 많이 오고 전 세계 언론사에서도 연락이 많이 온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뿐만 아니라 홍콩, 일본, 사우디에서도 기사화됐다. 안경 자체의 의미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여성에 대해 알게 모르게 금기시되고 있던 걸 깼다는 것이 아시아권 보수적 문화와 맞물려서 반응이 있는 것 같다."

지난해 4월, MBC 뉴스를 진행하며 안경을 착용해 화제를 모았던 임현주 아나운서. 그는 설날을 앞두고 <스포츠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안경 착용 직후 쏟아진 반응에 대해 위와 같이 전했다.
 
임 아나운서는 당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서도 "금기시했다기 보다 아예 머릿속에 안경을 낀 여성 앵커라는 이미지가 없었던 것 같다"며 "컬링의 '안경 선배'가 화제가 됐고 '여자도 안경 낀 모습이 멋있네'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나도 그럼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안경 쓰면 왜 안 되지?" 화제 모은 임현주 앵커의 결단 http://omn.kr/qz0a).
 
실제로 BBC를 비롯해 임현주 아나운서의 이 '액션'은 외신에도 수차례 소개됐다(그 중 BBC의 로라 비커 특파원은 지난해 12월 한국 여성들의 '탈코르셋' 운동을 소개하는 "Why women in South Korea are cutting 'the corset'"이란 기사에서 임현주 아나운서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응은 전 세계 방송계 역시 다를 바 없는 남성 위주의 분위기와 여성들이 몸소 겪어야 하는 보수적인 문화를 엿보게 한다.
 
임현주 아나운서는 또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후 기사화가 되면서 전화를 엄청 받았다. 거의 다 여자 기자님이었고, 너무 반가워하시더라. 보도국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아니까 어떻게 꼈냐고 물어보셨다. 기사에 응원 댓글도 많이 달렸고 이후 당당하고 편안하게 안경을 끼게 됐다"고 밝혔다. 여성 기자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한층 더 응원을 보냈다는 임 아나운서의 이야기는 여성들의 연대라는 측면에서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안경 쓴 여성 아나운서'에게 쏠린 이목이 증명하는 방송 내 성차별
 
이 같이 임현주 아나운서를 둘러싼 반응은 방송가에서 여성들이 처한 차별적인 환경과 위치를 가늠케 하는 일례라 할 수 있다. 남자 앵커들에게 당연시 되는 안경을 여성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는 관심과 주목 자체가 이를 역설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상파와 종편, 뉴스 채널 구분할 것 없이 남성과 여성 뉴스 진행자 간의 현격한 나이 차이는 두말할 나위 없을 테고 말이다(관련 기사 : 방송 뉴스 남녀 앵커 나이 차이, 왜 많이 나나 했더니 http://omn.kr/1ge22).
 
지난 2017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 국민의 62.6%는 여성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또 성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우선 과제로 남성의 낮은 돌봄 참여(23.4%)와 낮은 여성 임금(22.7%)에 이어 대중매체의 성차별·편견·비하(16.4%)가 꼽혔다. 국민들 중 다수가 성차별 해소를 위한 방송의 역할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7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발표한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실태조사' 결과는 바로 이러한 국민들의 인식을 토대로 한 시의적절한 조사 결과와 권고 사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방송 전반에 점철된 성불균형과 성차별적 환경, 그 실태는 심각함을 넘어 남녀 혐오 문화의 근원지로 지적받을 만했다.
 
더욱이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등으로 사용자 주목도가 이양되고 있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무시 못 할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울러 기존 미디어가 내포한 성차별적 표현과 성불균형에 가까운 환경이 고스란히 유튜브 등 신생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임현주 아나운서를 전 세계 언론이 주목케 했던 뉴스 속 성차별 실태는 어땠을까.
 
여성 앵커는 30대 이하, 남성은 40대 이상
 
"뉴스아이템을 전달함에 있어 여성앵커는 가벼운 주제를 주로 다루는데 반해, 남성앵커는 정치, 국방 등의 다소 무겁고 사회적인 위기와 관련된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아이템 소개에서 여성앵커와 남성앵커 간의 이러한 역할 분담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우리사회의 고정관념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7일 인권위가 발표한 '방송의 양성평등 제고를 위한 정책 권고' 결정문 내용 중 일부다. 작금의 뉴스 환경이 이랬다. 단순히 나이 차를 넘어 뉴스 가치의 경중에도 차별적 요소가 다분했다. 정치와 국방 등 주요한 뉴스는 (메인) 남성 앵커가, 그 외에 사회, 경제, 생활정보, 날씨 및 해외 뉴스를 여성 앵커가 전달했다. 전체적인 뉴스 소개 비율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줄어들었지만, 뉴스 아이템의 가치에 있어 남성이 주요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남녀 간 나이차도 현저했다.
 
인권위 분석에 따르면, 7개 채널 저녁종합뉴스의 여성 앵커는 10명 중 8명이 30대 이하(80.0%)였고, 남성앵커는 10명 중 9명이 40대 이상(87.7%)이었다. 2015년과 비교하면 여성앵커 중 40대가 늘어나고 남성앵커는 30대가 진입하는 변화가 있었으나 나이 든 남성앵커와 젊은 여성앵커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 밖에 오프닝 멘트 역시 남성앵커가 전담하는 경우가 65.7%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뉴스를 진행하는 경우 여성앵커가 오프닝 멘트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김주하 앵커가 진행하는 MBN을 제외하고, 남성이 주요 뉴스를, 여성이 그 외의 뉴스를 전달하는 환경이 공고하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뉴스 외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남성 진행자 비율은 90%, 여성은 10%였다. 출연자(총 198명) 중 여성은 21명(10.6%)에 불과했다. 이처럼 시사토크 진행자와 출연자가 주로 남성이라는 점은 정치적이거나 시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는 주로 남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 할 수 있다."
 

남성 출연자가 여성의 두 배 이상인 '예능 프로그램' 
 
 KBS2 설 파일럿 프로그램 < 6자회담>의 한 장면

KBS2 설 파일럿 프로그램 < 6자회담>의 한 장면 ⓒ KBS2

 
이런 차별적 분위기가 비단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한정된 상황일까. 인권위는 48개 드라마를 분석한 결과 "드라마 속 여성 등장인물 중 전문직 비율은 21.1%인데 비해 남성 등장인물 중 전문직 비율은 47.0%로 높았다"며 "일반직, 비정규직, 무직 등은 반대로 여성 등장인물 중 50.6%를 차지하나 남성은 35%였다. 극 중 남성은 주로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이나 여성은 남성의 지시를 따르는 보조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직업만 놓고 봤을 때, 남성은 사회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많은 반면 여성은 남성의 지시를 따르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다수가 출연하는 예능의 경우, 진행자와 출연자를 구분하지 않고 분석한 결과 남녀 평균 출연자 수는 남성이 여성의 2배 이상이었다. 반면 그나마 남녀 진행자 모두 방송인 전문 진행자와 언론인이 대부분인 생활 교양 프로그램은 남녀 진행차의 연령 차이가 줄고 직업적 분포도 차이가 크지 않아 상대적으로 남녀 진행자가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차별적 환경을 감시하고 개선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남녀 구성원 실태는 어땠을까. 인권위는 "방통위 위원 5명 모두 남성이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위의) 위원 9명 중 여성은 3명에 불과하다"며 "방통위 위원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한국방송공사 이사 11명 중 여성은 2명이다"라고 밝혔다.
 
또 인권위는 "방통심위가 임명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은 모두 남성이었다가 2018년 8월 여성 2명이 이사로 선임됐으며, 한국교육방송공사 이사도 9명 모두 남성이었다가 2018년 9월 여성 4명이 이사로 선임됐다"고 덧붙였다.
 
방통위와 방통심위의는 물론 방송문화진흥회 등 한국교육방송공사 등 한국의 방송을 이끄는 기관 대다수의 위원과 이사들이 남성들로 구성돼 있었고, 몇몇 기관은 그나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 여성 이사진이 선임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방통위‧방통심의위위원, 공영방송사 이사 임명 시 특정성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방송통심위원회 위원장에게 관련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의 또 다른 권고 사항은 이랬다. 실효성은 둘째 치더라도, 작금의 방송사들이 양성 평등 실현을 위해 필요한 사안들이 주를 이뤘다.

"이와 함께 방송사 스스로 양성평등 수준을 평가해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갈 수 있도록 방송평가 항목에 방송사 간부직 성별 비율 신설, 양성평등 실천 노력 추가 점수 부여 등 방안을 권고했다. 방송 콘텐츠 내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 재생산 방지와 양성평등 제고를 위해 미디어다양성 조사에 시사토크 장르 포함, 등장인물 성별에 따른 역할분석 등 정성적 평가 도입, 방송 콘텐츠 제작자에 미디어다양성 조사결과 공유 등도 권고했다.
 
방통심의위 위원장에게는 일방의 성이 열등 또는 우수하다는 관념이나 성별 고정 역할에 근거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방송사례를 모니터링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자문기구 설치를 권고했다."

 
공영방송 KBS의 <거리의 만찬>이라는 좋은 예
 
"여전히 많은 방송사에서 남녀 앵커 사이에 나이 차이가 많게는 33년까지 난다.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방송사는 JTBC다. JTBC <뉴스룸>의 경우 손석희 앵커와 안나경 앵커의 나이 차이는 33년이다. MBN <주말 뉴스>의 경우 최일구 앵커와 정아영 앵커 사이에 나이 차이가 26년이 나며, TV조선 <뉴스9>의 경우 신동욱 앵커와 오현주 앵커 사이에 22년의 차이가 난다. MBC <뉴스데스크> 왕종명 앵커와 이재은 앵커는 15살 차이가 나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방송 뉴스 남녀 앵커 나이 차이, 왜 많이 나나 했더니> 기사 내용 중 일부다. 지난 1월 1일 개편을 단행한 KBS 주요 뉴스 앵커들의 남녀 간 나이 차는 18년, 19년, 12년이었다. MBN 김주하 앵커 단독 진행을 제외하고, 지상파와 종편 가릴 것 없이 이러한 나이 차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고정불변의 형식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예능에서도 여전했다. 설 연휴 기간이던 지난 5일 방송된 KBS2 < 6자 회담 >은 이경규, 김용만, 박명수, 장동민, 김희철 등 남자 연예연이 5명 외에 여성 출연자는 장도연이 유일해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파일럿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아재 예능'과 다를 바 없는 남성 위주의 출연자 구성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KBS <거리의 만찬> 스틸컷

KBS <거리의 만찬> 스틸컷 ⓒ KBS


토크쇼 형식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남성' 예능과 차별점도 없었고, 장도연의 출연은 그나마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반면 여성 진행자들로 이뤄진 시사 교양프로그램이 호평을 이어가는 경우도 존재한다. 지난해 7월 파일럿 방송 이후 11월 정규 편성된 KBS1 <거리의 만찬>이 그 좋은 예다.
 
현장 토크쇼 형식인 <거리의 만찬>은 방송인 박미선, 시사평론가 김지윤, 아나운서 김소영이 진행한다. 해직 KTX 여승무원들을 필두로 이슈와 관련된 여성들을 직접 만난다. 이를 통해 여성, 노동, 장애인, 교육, 청소년 등 뉴스로만 짧게 접할 만한 사회적 이슈들을 여성의 시각으로, 따뜻하고 공감 넘치는 시선으로 담아낸다.
 
"각기 다른 분야의 '세 여성'이 시사 현장을 직접 찾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사 프로그램"이란 제작진의 선명한 의도는 비단 양성평등 구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풍성하고 섬세한 시선과 시각을 담아내는 차별화되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호평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인권위의 이번 '방송의 양성평등 제고를 위한 정책 권고'를 방송을 제작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이들이 경청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연한, 그리고 공고한 방송의 성차별적 환경에 대한 적나라한 분석이 담겨 있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차별적인 환경을 인식했을 때야 비로소 관성을 깨부수는 현실적인 노력이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현주 아나운서의 안경 착용이 불러 일으킨 반향 역시 같은 맥락 아니겠는가.
인권위 성차별 권고 방송보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