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 Netflix

 
2016년 tvN 드라마 <시그널>이 방영된 이후 벌써 3년이 지났다. 당시 시즌2에 대한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이어졌을 만큼, <시그널>은 '범죄 수사물'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젖힌 작품이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이미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범죄 수사물의 클리셰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시그널>은 '과거'와 '현재'로 시·공간적 지평을 넓히며 사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 냈다. 무엇보다 '과거'의 시점을 보여주며 '현재'의 부조리를 '비판'한 김은희 작가는 '장르물'의 대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런 김은희 작가의 다음 선택은 <시그널2>가 아니라 뜻밖의 '좀비물'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콘텐츠를 공개했다. 김은희 작가의 신작을 연출한 건, 영화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었다. 김은희와 김성훈 감독의 컬래버레이션, 거기에 최근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주지훈과 돌아온 류승룡, 믿고 보는 배두나가 힘을 합쳤다. 이들의 이름값만으로도 이미 <킹덤>은 충분히 화제를 모으고 있다. <킹덤>은 과연 그 이름값을 해냈을까?
 
최근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좀비는 해외에서 이주한 캐릭터다. 서아프리카의 민간 신앙에서 유래된 '좀비'는 영화 감독들의 상상력과 만나 박진감 넘치는 캐릭터들로 변신했다. 영화 < 28일 후 > <새벽의 저주> <레지던트 이블> <월드워Z>와 드라마 <워킹 데드> 등 작품들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을 만큼, 장르물의 대표적 콘텐츠가 되었다.

해외에서 유행하던 '좀비' 소재는 지난 2016년부터 스멀스멀 우리의 장르물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통해 '좀비'라는 생소한 장르는 우리나라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이어 부진한 성적을 남겼던 영화 <창궐>에 이어 영화 <기묘한 가족>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익숙함이 만나니 새로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 Netflix

 
<킹덤>은 조선 선조 때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창궐'하는 좀비와 그 '원인'이 되는 부도덕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좀비'라는 낯선 캐릭터를 어떻게 우리 정서에 맞게 표현할 것인가. 이게 우선 작품 성공의 중요한 관건이 된다. 해외 '좀비물'은 방사능이나 화학 바이러스 감염 등 환경적 요인을 통해 설득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킹덤>은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약초에서 그 답을 찾는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불온한 권력으로부터 바로 <킹덤>은 시작된다.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의 조씨 일가는 실질적으로 조선을 지배하는 외척 가문이다. "이씨 위에 조씨 있다"는 말을 백성들이 공공연하게 할 정도. 그럼에도 혈통으로 왕조가 이어진다는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조학주는 자신의 딸인 중전(김혜준 분)이 적통 세자를 출산할 때까지 왕의 죽음을 미루기 위해 '생사초'를 이용한다.
 
하지만 살아난 왕은 궁궐의 연못을 '시체'로 메울 만큼 매일 밤 인육을 탐하는 '좀비'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 동래부에서 왕을 진찰하기 위해 온 '명의' 이승희 의원의 수하가 왕에게 희생 당한다. 이승희 의원이 수하 단이의 시신을 수습해 '지율헌'으로 데려오면서 동래부에 좀비가 본격적으로 창궐하게 된다. <킹덤>은 역사 속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괴질이라는 '역병'에서 좀비 창궐의 원인을 찾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 Netflix

 
여기에 알현조차 할 수 없는 아버지 왕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온 세자 이창(주지훈)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 이창은 그의 수하 무영(김상호)과 함께 진실을 알기 위해 동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좀비가 된 백성들을 막고,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녀 서비(배두나)와 의문의 인물 영신(김성규)을 만나게 된다. 또한 백성들의 굶주림은 뒷전으로 하고 권력에만 연연하는 지방 관리들과 토호 세력과도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좀비물'이지만 <킹덤>은 정치 드라마이기도 하다. 극중에서 세자 이창은 '살아남기 위해' 조학주에게 저항한다. 중전이 아들을 낳으면 즉시 이창은 세자에서 폐위되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 그는 백성을 외면하지 않는, "조학주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아직 정체는 모호하지만 안현대감(허준호)가 이창을 도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을 합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 드라마에 '역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붙듯 창궐하게 된 '좀비' 장르물을 더한 <킹덤>은 세계 각국의 드라마들이 모인 '넷플릭스'에서도 신선하게 느껴질 법 하다. 물론 앞서 개봉한 영화 <창궐>을 차치하면, 우리나라 장르물에서도 새로운 도전이다.
 
무기력한 왕과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세자의 대립 구도는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그리 새롭지 않은 서사다. 그런데 <킹덤>은 뻔한 갈등 구조에 조선 후기를 장악했던 외척을 등장시키고 백성들을 '좀비'로 만들면서 신선하게 변주한다. 게다가 6화 엔딩 즈음에서는 밤만 되면 죽은 듯이 활동을 멈추던 좀비들에게서 새로운 변수가 발견됐다. 이는 시즌2에 대한 기대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엇갈린 평가, 그리고 과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 Netflix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시즌1은 총 6부작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1, 2화에서 드라마는 좀비의 역습을 다소 장황하게 그려낸다. 권문세족의 손아귀에 좀비가 될 정도로 무기력한 왕과 그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동래까지 '잠행'을 감행한 왕세자. 그런 왕세자를 '역모'로 모는 조학주의 음모까지. 그 진행은 익숙하지만 느리고 헐겁게 느껴진다.
 
좀비의 '창궐'에 흥미를 느낀 시청자라면 흥미롭게 6부를 완주해낼 수 있겠지만 <싸인> <유령> <시그널>에서 보여준 김은희 작가의 치밀한 스토리를 기대한 애청자라면, 6부를 완주하는데 끈기가 필요할 듯하다. 왕세자 일행과 서비, 영신 등이 한 팀이 되고, 동래를 떠난 이들이 상주에서 안현대감과 만나 다음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시즌1이 끝나버린다.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시즌제로 흥미와 호기심을 이어가려는 시도는 좋지만, 과연 한 '시즌'에 걸맞은 충실한 내용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즌제 드라마는 첫 시즌에서 등장인물에 대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뻗어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킹덤>의 시즌1은 안타깝게도 캐릭터를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중전을 비롯해 서비 등 몇몇 캐릭터의 연기력 논란도 한 몫했을 수 있다. 또한 조학주와 왕세자 이창의 관계 역시 흔한 '사극' 속 권문세족과 젊은 세자의 갈등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점 역시 아쉬운 일이다. 익숙하고 어설픈 캐릭터들 사이에서 안현대감이나 영신의 존재는 단연 주목받고 있다. 이는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은 덕분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스틸 컷. ⓒ Netflix

 
또한 좀비를 백성으로 해석한 점도 <킹덤>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킹덤>은 전란 후 끼니조차 잇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권력으로부터 수탈당하는 백성들의 역습을 '좀비'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좀비'를 자칫 불의한 권력을 처단하는 정치적 드라마를 그려내기 위한 도구로만 이용할 수 있는 위험도 만든다. 이성을 잃은 '좀비'이기에 주체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 과연 이런 딜레마를 <킹덤>은 어떻게 극복해 낼까. 시즌2의 어깨가 무겁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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