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가족:라멘샵>포스터

영화 <우리가족:라멘샵>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하나의 문화와 다른 문화가 만나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 최근에 많아진 국제결혼이나 국제 연애는 각 나라의 문화가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식이다. 한국은 최근에서야 국제결혼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도시 국가들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국가에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많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그 가정에 속한 사람들은 두 문화를 경험하고, 두 나라의 음식을 경험하면서 좀 더 색다른 무언가를 배출하기도 한다.

가족의 기원을 따라 싱가포르로 가는 주인공

영화 <우리가족:라멘샵>은 그런 두 나라의 문화가 만나는 가족의 기원을 따라간다. 아버지(이하라 츠요시)가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던 마사토(사이토 타쿠미)는 자신의 어머니(구훤)의 고향인 싱가포르로 훌쩍 여행을 떠난다. 어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요리인 바쿠테를 배우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삼촌을 찾기 위해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다. 숨겨진 가족의 인연과 역사를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고 감동을 주는 기존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우리가족:라멘샵>은 음식과 그 기원에 대해 좀 더 집중한다.

마사토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많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10살 남짓 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말수가 줄어들었고, 대화라고는 고작 식기 전에 어서 밥 먹으라는 짧은 말 뿐이었다. 그래서 마사토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이라는 실망감과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일본에서 아버지와 작은 라멘집을 운영했던 그는 아직 그만의 수프를 만들려 했으나 실패했다.
 
 영화 <우리가족:라멘샵> 장면

영화 <우리가족:라멘샵> 장면 ⓒ 주)팝엔터테인먼트

 
담백하게 담는 싱가포르 음식과 풍경

영화는 마사토가 싱가포르에 방문한 이후 보게 되는 도시의 풍경과 음식을 아주 담백하게 화면에 담는다. 사실 영화는 싱가포르의 화려한 풍경과 음식의 데코레이션에 관심이 없다.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싱가포르의 평범한 뒷골목과 그 사이 현지인들의 표정을 보여주고, 그 아름답다는 자연풍경조차 아주 평범하고 소박하게 묘사한다. 또한 음식의 데코레이션보다는 먹는 사람의 리액션에 더 집중한다.

싱가포르에서 직업을 가지고 음식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미키(마츠다 세이코)와 만난 마사토는 현지 음식들을 소개받는다. 미키가 해주는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가 음식을 한 입 물었을 때, 영화는 그의 반응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가 먹고 나서 하는 말, 표정으로 그 음식을 먹고 난 느낌이나 감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실 이건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마사토가 외삼촌을 찾고, 어머니와 인연을 끊은 외할머니를 찾아가는 그 여정에서 그들이 먹는 음식은 그들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일본인인 마사토와 외할머니는 서로 전혀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들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음식을 배우며 알아가는 가족의 기원

바쿠테라는 음식은 싱가포르에서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계열의 음식이 합쳐진 이 음식은 마사토의 부모님을 이어준 음식이고 마사토를 탄생시킨 음식이다. 그가 그 음식을 외삼촌에게 배우려는 노력은 그의 뿌리를 알아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 과장은 쉽지 않다. 딱 맞는 레시피를 찾아야 하고 요리하는 시간도 정확히 맞춰야 한다. 특히 어릴 적 그가 먹었던 어머니의 요리가 가진 맛의 비밀이 그 바쿠테 안에 숨어있다. 때문에 마사토는 그 요리를 완벽히 배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영화 <우리가족:라멘샵> 장면

영화 <우리가족:라멘샵> 장면 ⓒ 주)팝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가 나온다. 일본어를 중심으로 북경어, 광둥어, 영어 등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려 노력한다. 공통적인 대화를 할 때는 영어가 사용되지만 좀 더 깊숙한 각자의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각각의 언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사토의 어머니가 쓴 일기는 북경어로 돼있다. 그 안에 무수한 말들이 있지만 북경어를 모르는 마사토가 그걸 다 알 수가 없다. 광둥어를 쓰는 외할머니는 마사토에게 알 수 없는 광둥어를 내뱉는다. 그 말 안에는 아픈 과거의 감정들이 실려있다. 알아듣지 못해도 그 감정은 다른 언어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마사토가 자신의 부모님의 과거를 서서히 알게 되면서 과거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자행했던 일들에 대한 것을 알게 된다. 싱가포르 어딘가에 위치한 전쟁 기념관의 한 장소에서 들려오는 전쟁 피해자의 증언을 들려주는 영화는 마사토의 얼굴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감정을 알려준다. 결국 이 장면에 담긴 건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는 시각과 현재를 사는 사람들도 그걸 알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리고 그들과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과 별개로 결국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 남자와 결혼한 어머니와 인연을 끊었던 외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마사토는 그와는 별개로 자신 만의 메뉴를 개발한다. 싱가포르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접하게 된 싱가포르 음식 바쿠테와 일본 음식 라멘을 조합하여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려 노력하는 마사토는 어쩌면 온 세계에 존재하는 다문화 가정의 자식들을 대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자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힘이 좋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제결혼이나 국제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공감할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서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마사토는 현재 모든 다문화 가정이 처한 문화적 환경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만들어낸 라멘테는 그가 받은 두 나라의 영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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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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