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북> 포스터.

영화 <그린 북>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영화란 결국 가짜가 아니냐고 웃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 앞에서 한나절 넘는 시간동안도 싸울 수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영화란 가짜로 진짜를 빚는 예술이라고 답할 것이다.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 더 위력적인 가짜의 예술이라고 말이다.

이달 개봉한 <그린 북>도 가짜의 예술이 가진 힘을 믿는 영화다. 한낱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위대한 이야기꾼이고자 하는 이의 영화이며, 지어낸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 나아가 온 세상을 흔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영화다. 대저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마음이 크게 마련이고, 마음 큰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할 밖에 도리가 없다.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던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뉴욕의 유명 피아니스트와 그의 운전기사가 8주 동안 남부투어를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엔 데면데면했던 그들이 돌아와서는 더없이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었다. 흔한 이야기다. 여행과 우정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말이다.

이제 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다.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흑인이다. 카네기홀 위층을 왕궁처럼 꾸미고 사는 성공한 음악가지만 정말 가까이에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사내다. 러닝타임 내내 그가 사적으로 말을 섞는 이는 인도계 집사 말고는 아무도 없다. 함께 트리오를 이룬 다른 두 연주자와도 공적인 일만 함께 할 뿐이다. 돈 셜리는 외톨이다.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는 백인이다. 그는 브롱스에 사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다니던 직장이 몇 달 간 영업을 못하게 되어 졸지에 백수신세가 됐다. 오랫동안 나이트클럽을 관리해온 수완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척척 해결해내지만, 당장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가 않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끈끈한 가족애는 토니네 가족 역시 예외가 아니다. 토니는 오로지 가족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다. 그토록 싫어했던 흑인 밑에서 하루 종일 운전을 하는 일을 말이다.

흑인 피아니스트를 수행하는 백인 운전사
 
 자신들이 초청한 악단의 리더에게 화장실조차 쓸 수 없도록 하던 주인에게서 위선과 혐오를 발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자신들이 초청한 악단의 리더에게 화장실조차 쓸 수 없도록 하던 주인에게서 위선과 혐오를 발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의 안전을 위한 안내서 '그린북'이 따로 발행됐을 만큼 흑인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시기, 그 자신도 흑인을 싫어했던 토니가 돈 셜리와 함께 떠난 8주간의 여행이 곧 영화 <그린 북>의 중심 이야기다. 흑인이면 백인의 시중을 드는 게 당연했던 당시 남부 지방 한복판에서 흑인을 수행하며 횡단하는 백인이라니, 절로 눈길이 간다.

지금도 흥미로운 설정인데 이 광경을 제 눈으로 본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깜짝 놀라 돌아보고 밭을 갈던 농부들이 농기구를 떨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신기해하기만 하면 다행이다. 백인경찰은 특별한 이유 없이 시비를 걸어오고 급기야는 이들을 유치장에 잡아가둔다. 돈 셜리가 홀로 찾은 어느 바에선 백인들이 집단 린치를 가해 죽다 살아나기까지 한다. 돈 셜리 트리오를 초청해 공연을 맡긴 자들이 집안 화장실조차 못 쓰게 하는 형편이니, 숙소와 식당에서 거부당하는 건 그야말로 일상이다.

<그린 북>의 감독 피터 패럴리는 토니가 변화하는 과정을 코미디의 대가다운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다. 남다른 관찰력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코미디 장르에서 일가를 이뤄낸 연출자답게 정교하고 부드러운 솜씨로 영화를 채색한다. 영화 초반 토니가 흑인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단 한 컷을 통해 압축적으로 전달한 장면은 피터 패럴리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토니가 늦잠을 자고 일어난 어느 날이다. 흑인 배관공들이 토니의 집을 수리하러 오자 토니의 아내가 그들에게 음료를 내준다. 그런데 토니는 아내 몰래 이들이 마신 유리컵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눈치를 살펴 컵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배관공들이 마시고 난 컵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미묘한 시선과 이를 집어 버리는 토니의 손가락만으로 영화는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단박에 보여준다.

결코 겹칠 수 없을 듯 보였던 두 세계가 마침내 포개어질 때
 
 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돈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 분). <그린 북>은 얼핏 평범한 설정의 로드무비로 보이기 쉽지만 지적인 흑인과 무지한 백인의 구도와 같은 뒤집기를 통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돈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 분). <그린 북>은 얼핏 평범한 설정의 로드무비로 보이기 쉽지만 지적인 흑인과 무지한 백인의 구도와 같은 뒤집기를 통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CGV 아트하우스

  
흑인을 혐오했으나 어쩔 수 없이 그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선 토니는 남부의 사내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직 피부색깔을 이유로 돈 셜리를 모욕하고 폭력을 가하는 백인들에게서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을 본 것이다. 타인에게서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그 불편한 경험 속에 무려 8주 동안이나 놓여 있던 토니가 변화하는 건 필연에 가까운 일이다.

영화는 누구보다 가족과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토니가 마침내 돈 셜리를 자신의 친구로 받아들이기까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애정의 드라마인 동시에 이해의 드라마로 그려진다. 함께한 여정 속에서 토니는 돈 셜리에게 가해진 모욕과 폭력이 그가 흑인이 아니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키는 친구가 되기를 선택한다.

예고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영화는,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버디무비이자 로드무비다. 영화의 끝에서 관객들은 마음 따뜻한 감동을 안고 어쩌면 뜨거운 눈물까지 흘릴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와 같은 감동과 눈물도 극장을 나서면 금세 식어버리고 말 거라며 웃어버릴지 모른다. 예술을 업으로 삼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피터 패럴리 감독 역시 그와 같은 회의주의자들을 수도 없이 만나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감독은 영화가 그저 영화로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멋스런 방식으로 웅변한다. 이 따스한 영화를 한 층 빛나게 한 이 장면은 토니가 제 별명인 '떠버리 토니(Tony Lip)'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별명인지에 대해 돈 셜리에게 떠벌이던 순간이다.

떠버리란 별명이 결국은 거짓말쟁이란 뜻 아니냐고 묻는 돈 셜리에게 토니는 떠버리(Bullshit artist)와 거짓말쟁이(Liar)는 다르다고 반박한다. 거짓말쟁이는 거짓을 전할뿐이지만 떠버리는 다른 이를 믿게 만드는 것이니 훨씬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다.

"Liar가 아니라 Bullshit Artist라구요"
 
 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흑인이란 이유로 양복점에서 옷을 입어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상황 등을 겪으며 토니(비고 모텐슨 분)는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처지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 <그린 북>의 한 장면. 흑인이란 이유로 양복점에서 옷을 입어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상황 등을 겪으며 토니(비고 모텐슨 분)는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처지에 공감하게 된다. ⓒ CGV 아트하우스

  
어쩌면 이 장면이야말로 피터 패럴리 감독이 영화를 바라보는 방식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거짓으로 지어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를 움직여내는 영화의 힘, 그것이 피터 패럴리가 <그린 북>과 같은 영화를 찍어낼 수 있었던 비결일지도.

여전히 피부색으로, 성별로, 재산과 학력, 생김과 나이로, 그밖에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것들로 인간을 구분 짓고 혐오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은 나머지 가끔은 나조차 그와 같은 색으로 물드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좌절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실망하고 나빠지는 무엇에 절망하는 것이다. 그러다 급기야는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여기 결코 닿지 않을 것만 같던 두 개의 세계가 마침내 포개지는 순간으로부터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가 있다. 그는 진정으로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만나게 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희망적인 균열이 일어나리라고 확신에 차 말한다. 영화 속 토니가 그렇듯 자신감 있게, 걱정이나 슬픔은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말이다.

비록 그것이 떠버리의 헛소리(Bullshit)에 불과할지라도 믿고 싶어지는 건 그가 진짜 예술가(Artist)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만큼은 세상이 틀림없이 바뀔 거라고 믿게끔 하는 위대한 예술가 말이다. 세상에 그런 예술가들이 많아진다면, 지구는 틀림없이 더 멋진 곳이 될 텐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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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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