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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하루 앞둔 2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하루 앞둔 2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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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기로에 놓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23일 오전 10시 30분에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핵심 혐의에 관해 단순히 아랫선에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걸 넘어 직접 주도했다고 보고 있다. 개별 혐의만 40여개, 영장청구서는 260쪽에 달한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영장 기준은 도주 우려·증거인멸 우려·혐의 상당성

영장 발부 요건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와 범죄 혐의의 상당성으로 나뉜다. 피의자가 도망 혹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무죄추정을 넘어설 만한 객관적인 혐의가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전직 대법원장'으로 신분에 맞게 '도주·증거인멸 우려'가 적어 구속영장이 기각될 거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여태껏 국정농단 사건이나 MB 사건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대해 온 법원의 태도를 보면 결국 '혐의 중대성'이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법원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 등에게 '범죄의 중대성' 측면에서 "범행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라며 구속영장을 발부해왔다. 주거가 있고, 신분이 확실해 실제 도망갈 확률이 거의 없는 피의자들이다. '사법농단 1호 구속'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같은 이유로 구속됐다.

법원이 '죄가 없다'는 양 전 대법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사법농단 사건의 위법성은 이미 지난해 10월, 법원이 '공범'인 임 전 차장을 구속하며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라고 밝히며 인정됐다. 법원은 한 달 뒤 '빗장'을 걸었던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허용했다.

핵심은 공모관계 입증이다. 임 전 차장의 직속상관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공모관계의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라는 법원의 판단으로 구속을 피했다. 두 전직 대법관은 실무선에서 알아서 처리했다거나 이들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접 보고해 '패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법원행정처장들과는 다르게 엄연히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는 데다 그가 직접 '강제징용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에 옮기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 구체적인 증거와 관련자 진술 등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공모관계 입증할 검찰의 4가지 카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재판 거래" 의혹 양승태 입장발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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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증거는 혐의별로 ▲김앤장의 양승태 독대 문건(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개입) ▲물의 야기 법관 문건(판사 블랙리스트) ▲이규진 수첩(헌법재판소 비밀누설) ▲행정처 문건 '대법원장 격려금' 적시(법원행정처 비자금) 등 크게 네 가지다.

김앤장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소송 시나리오'까지 짜며 적극 재판 개입에 나섰다는 정황을 뒷받침할 증거다. 문건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친분이 깊은 김앤장 소속 한상호 변호사를 자신의 집무실과 음식점에서 2014년~2015년 동안 3차례 이상 만난 내용이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외교부 의견서 제출 절차 ▲전원합의체 회부방식 등이 논의됐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김앤장 측과 소송 실무를 먼저 정하면 양 전 대법원장이 최종 승인을 받았다고 본다.

이 사건의 단초가 된 '판사 블랙리스트'에도 양 전 대법원장의 흔적이 있다. 검찰이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문건'에는 대법원이나 박근혜 정부 관심 재판 결과를 비판하는 판사들에 관한 인사 불이익이 검토됐다. 성추행 의혹이나 법정 폭언을 일삼는 판사들이 적힌 문건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사건 무죄'를 비판한 판사 등을 함께 넣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V' 체크를 하며 관리했다.

'이규진 수첩'으로 불리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작성한 업무수첩도 직접 증거 중 하나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자주 독대한 이 전 위원의 수첩에는 소제목인 '대(大)' 아래 빼곡히 적힌 지시사항이 있다.

검찰은 '대'가 대법원장을 의미한다고 보고, 수첩 내용 그대로 작성된 행정처 문건의 지시자도 양 전 대법원장이라고 판단했다. 문건에는 헌재 결정의 권위를 하락시키기 위해 '급 낮은' 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하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또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진 2015년 법원행정처 예산은 '양승태 격려금'으로 지급됐다. 대법원은 '각급 법원공보관실 운영비'로 편성된 예산 3억 5000만 원을 각급 법원으로 내려보냈다가 2억 7200만 원을 회수한 뒤 그해 3월 전국법원장 간담회에서 적게는 1100만 원, 많게는 2400만 원까지 현금 5만 원 권으로 법원장들에게 전달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장 격려금이라고 적힌 행정처 문건을 다수 확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3차례 걸친 검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사권은 대법원장 재량이라 죄가 되지 않는다", "아랫선에서 알아서 추진해 알지 못한다"라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심사에서도 적극 방어에 나설 방침이다.

태그:#양승태, #임종헌, #박병대, #검찰, #사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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