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웠어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1차전에서 역전패 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잘 싸웠어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1차전에서 역전패 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베트남 대표팀이 극적으로 아시안컵 16강행 막차를 타는 데 성공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18일(이하 한국시각) 2019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1승2패 승점 3점 골득실 -1(4골5실점)로 D조 3위를 기록했다. E조 3위 레바논과 승점, 골득실, 다득점까지 같았던 베트남은 페어플레이 규정에서 앞서며 본선에 참가한 24개국 중 정확히 16위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베트남은 오는 20일 B조 1위 요르단과 16강전을 치를 예정이다.

베트남은 조별리그에서 이라크와 이란에 연패를 당하고 예멘을 상대로 대량득점에 실패하면서 16강 진출이 불투명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이 레바논에게 3점 차로 패하면서 베트남이 뜻밖의 수혜자가 됐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사령탑 부임 후 출전한 가장 큰 대회에서 또 한 번 조별리그 통과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다.

본선 첫 경기부터 무너진 베트남의 A매치 18경기 무패 기록

베트남은 이번 아시안컵 직전까지 A매치 18경기 무패 기록(9승9무)을 이어갔다. 이는 세계의 그 어떤 축구 대표팀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세계기록이다. 베트남 축구팬들이 내심 베트남이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형사고를 칠 수도 있다고 기대한 이유도 바로 2년 넘게 패배를 모르는 박항서호의 최근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베트남 대표팀의 무패기록을 지나치게 고평가할 필요는 없다. 베트남의 경우 애초에 강한 상대와 맞붙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스즈키컵을 포함해 주로 동남아에 속한 약체들과 경기를 많이 치러왔다. 반면에 베트남 이전 A매치 15경기 무패를 기록했던 프랑스의 경우 러시아 월드컵 7경기 무패 우승을 포함해 수준 높은 유럽의 최전선에서 만들어낸 기록이다. '기록의 질'에서 베트남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베트남 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8강 이상의 과한 목표를 잡기보단 조별리그 통과를 1차 목표로 잡았다. 사실 베트남 축구는 참가국이 많지 않았던 초기 두 번의 대회에서 결선리그에 진출한 후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한 번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나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과 공동개최하며 자동출전했던 2007년 대회를 제외하면 무려 59년 만에 나서는 아시안컵 본선 무대다.

내심 큰 기대를 안고 아시안컵에 도전했지만 박항서호가 부딪힌 현실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베트남 대표팀은 지난 8일 이라크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전반까지 2-1로 앞서고 있었음에도 후반에 찾아온 체력저하를 극복하지 못하고 2-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베트남 축구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A매치 18경기 연속 무패 행진이 아시안컵 본선 첫 경기부터 허무하게 마감된 것이다.

12일 베트남의 두 번째 상대는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아시아 최강으로 꼽히는 이란이었다. 이란은 아시아 국가 중 피파순위(29위)가 가장 높고 작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하게 3포트를 받았던 팀이다. 베트남은 특유의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반격을 노렸지만 이란의 슈퍼스타 사르다르 아즈문에게 멀티골을 허용하면서 0-2로 패하고 말았다.

페어플레이 점수로 극적인 16강행, 더 큰 '매직'을 준비하는 박항서호

첫 두 경기에서 중동의 두 강호를 만나 연패를 당했지만 박항서 감독은 16강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예멘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필승의 각오를 밝혔다. 사실 이라크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선전했고 이란전에서도 대량실점을 면한 베트남은 예멘전에서 다득점으로 승리하면 충분히 16강 진출을 노릴 수 있었다(24개국이 본선에 진출한 이번 대회에서는 각조 3위 중 상위 4개 팀에 '와일드카드'로 16강행 티켓이 주어진다).

앞서 C조의 키르기스스탄이 필리핀을 3-1로 꺾고 골득실 0을 만들면서 박항서호는 17일 예멘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3골 차 이상으로 승리해야만 16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은 야속하게도 예멘에 2-0으로 승리하면서 자력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하는 데 실패했다. A조의 바레인과 C조의 키르기스스탄이 16강을 확정한 가운데 베트남은 현지시간으로 다음날 열리는 오만과 레바논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 됐다.

먼저 열린 오만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에서는 오만이 3-1로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오만은 후반 추가시간에 필요했던 마지막 한 골이 터지며 세 번째 와일드카드를 따냈다. 이제 조별리그 마지막 일정인 E조의 레바논과 북한의 경기 결과에 따라 베트남의 운명이 결정되게 됐다. 공교롭게도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의 운명이 북한의 손에 달리게 된 셈이다.

이번 대회 최악의 부진에 빠진 북한은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상대로 각각 0-4, 0-6으로 대패를 당했다. 똑같이 2패를 당한 레바논도 내심 북한을 상대로 대량득점을 올리며 마지막 16강 티켓을 노렸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은 레바논에 1-4로 패하며 선전(?)했다. 승점과 골득실, 다득점까지 모두 같았지만 경고를 적게 받은 베트남이 레바논을 제치고 극적으로 와일드카드의 막차를 타는 순간이었다.

베트남은 자국에서 열린 2007년 아시안컵 이후 12년 만에 출전한 아시안컵 본선무대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기쁨을 누렸다. 박항서 감독으로서는 베트남 감독 부임 후 가장 큰 대회에서 또 하나의 성과를 이룬 셈이다. 그리고 극적으로 베트남의 16강을 견인한 박항서 감독은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중국 U-21 대표팀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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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2019 아시안컵 베트남 박항서 감독 1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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