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구단의 전력이 평준화되면서 순위 경쟁이 치열해질 줄은 예견됐지만 이 정도로 '역대급' 선두 경쟁이 벌어질 거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드람 2018-2019 V리그 여자부 이야기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GS칼텍스 KIXX,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정규리그 2/3지점에 도착한 17일 현재 승점 5점 차이로 순위가 갈렸다. 남은 10경기 결과에 따라 어느 팀이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플레이오프와는 멀어졌지만 KGC인삼공사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벌이는 '탈 꼴찌' 경쟁도 매우 흥미롭다. 인삼공사는 지난해 11월 29일 외국인 선수 알레나 버그스마가 부상을 당한 후 10경기 연속 0-3 패배를 당하며 승점을 1점도 추가하지 못했다. 반면에 11연패로 시즌을 시작했던 현대건설은 전반기 마지막 3경기에서 연승을 거두며 인삼공사를 2점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선두 경쟁만큼이나 치열한 '탈 꼴찌' 경쟁도 배구팬들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 치열한 순위 싸움 속에서 선두 흥국생명에는 8점 뒤져 있고 5위 인삼공사에게는 17점 차이로 넉넉하게 앞서 있는 구단이 있다. 바로 지난 시즌 V리그 출범 후 첫 우승을 차지했던 '디펜딩 챔피언'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다. 전반기 마지막 두 경기에서 1,2위로 전반기를 끝낸 흥국생명과 GS칼텍스를 차례로 꺾으며 저력을 과시한 도로공사는 후반기 상위권 경쟁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바나의 부상으로 시작부터 삐걱거린 도로공사의 2018-2019 시즌
 
 파튜는 여자부 6개구단 외국인 선수 중 신장이 가장 작고 나이가 가장 많다.

파튜는 여자부 6개구단 외국인 선수 중 신장이 가장 작고 나이가 가장 많다. ⓒ 한국배구연맹

 
종목을 막론하고 우승팀은 기존의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KBO리그의 한화 이글스는 우승 직후 18승을 거둔 에이스 정민철이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하면서 이듬 해 성적이 급격히 추락한 바 있다. 기존의 이효희, 정대영, 배유나, 문정원, 임명옥과 FA로 영입한 박정아, 외국인 선수 이바나 네소비치의 조화로 첫 우승을 차지한 도로공사 역시 우승멤버를 지키는 게 매우 중요했다.

도로공사는 일찌감치 2017-2018 시즌 정규리그 MVP이자 우승의 주역 이바나와 재계약을 마쳤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취득한 선수도 1명(최은지)밖에 없었다. 좋은 공격력을 갖춘 최은지가 인삼공사로 이적한 것은 다소 아쉽지만 이미 도로공사에는 V리그 최고의 토종 거포 박정아를 비롯해 하혜진, 전새얀, 유서연 등 윙스파이크 자원이 상당히 풍부했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8월 컵대회에서 이효희, 박정아, 임명옥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되고 배유나, 문정원이 부상 후 재활을 하면서 불참했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대회에 참가한 도로공사는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도로공사의 진짜 목표는 컵대회가 아닌 V리그 챔프전 2연패였고 배구 팬들도 주력 선수들이 대거 제외된 도로공사가 컵대회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V리그 시즌이 개막한 후에도 좀처럼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 이바나가 어깨부상 후유증으로 지난 시즌 만큼의 위력을 보이지 못했고 비 시즌 동안 무릎수술을 받은 배유나도 시즌 초반 부진을 면치 못했다. 현대건설의 개막 11연패에 묻히긴 했지만 도로공사 역시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체면을 구긴 건 마찬가지였다.

초반 순위싸움에서 뒤쳐지던 도로공사는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도로공사는 지난해 11월 11일 5경기에서 41득점에 그치던 이바나를 퇴출하고 지난 시즌 GS칼텍스에서 활약했던 세네갈 출신의 공격수 파토우 듀크(등록명 파튜)를 영입했다. 파튜는 도로공사로 이적하기 전 아시아의 태국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 감각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높은 평균 연령의 핸디캡을 '경험'으로 극복하는 도로공사
 
 도로공사 주전 멤버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문정원은 리베로급 수비실력으로 팀 내 기여도가 매우 높다.

도로공사 주전 멤버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문정원은 리베로급 수비실력으로 팀 내 기여도가 매우 높다. ⓒ 한국배구연맹

 
도로공사는 여자부 6개 구단 중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팀이다. 2019년 한국 나이를 기준으로 도로공사 주전 7명 중 20대 선수는 박정아와 문정원뿐이다. GS칼텍스에 갔으면 최고참이 됐을 프로 13년 차 중앙공격수 배유나가 도로공사에서는 그나마 젊은 편에 속한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 파튜마저 1985년생으로 여자부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체력적인 핸디캡이 있다는 것과 같지만 도로공사 선수들은 이 같은 약점을 '경험'으로 극복하고 있다. 실제로 도로공사는 새해 첫 경기에서 현대건설에게 덜미를 잡힌 후 이번 시즌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흥국생명과 GS칼텍스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따냈다. 2연승 과정에서 파튜가 58득점을 기록했고 베테랑 센터 정대영은 무려 13개의 블로킹을 성공시키며 중앙을 지배했다.

후위에서 보여주는 임명옥 리베로와 문정원이 수비에서 보여주는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도로공사는 주포 박정아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2인 리시브 체제'를 쓰고 있다. 하지만 임명옥 리베로와 문정원은 각각 52.90%와 50.55%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며 박정아가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도로공사는 리베로 2명을 두고 경기를 치르는 것과 다름 없다.

반면에 세트당 1.98개(5위)에 그치고 있는 블로킹은 도로공사의 최대 약점이다. 도로공사는 정대영과 배유나라는 리그 정상급 미들 블로커를 보유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문정원(세트당 0.11개)과 이효희 세터(세트당 0.07개)로부터는 블로킹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노련한 선수들을 많이 보유했음에도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범실(380개)를 저지르고 있는 것도 도로공사의 불안요소로 꼽힌다.

도로공사는 전반기 20경기 중 풀세트 경기를 7번이나 치렀다. 지금까지 소화한 세트수(80세트)도 6개 구단 중 가장 많다. 이는 분명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평균연령이 높은 도로공사에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에도 많은 역경들을 이겨내며 끝내 챔프전 우승을 만들었던 저력 있는 팀이다. 선두권에 있는 팀들이 4위로 전반기를 마친 도로공사의 추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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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도드람 2018-2019 V리그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파토우 듀크 문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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