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연수

배우 하연수가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로 오는 16일 관객과 만나기 시작한다. 상업영화 첫 주연작으로 그는 극중 홍장미(유호정)의 청년기를 연기했다. ⓒ 엠씨엠씨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미지와 실제 대화를 나눴을 때 하연수는 꽤 차이가 있었다. 대중은 드라마 <감자별 2013QR3> 등에서의 발랄한 모습, SNS상에 그가 올린 몇 가지 글로 기억하기 마련. 밝으면서 때로는 당찬 이미지는 그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사실 이런 이미지가 곧 개봉할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에도 일부 이어진다. 극중 홍장미(유호정)의 청년기 역할로 노래를 곧잘 해 가수 데뷔를 앞둔 제조업 노동자다. 가난한 환경에서 웃음과 꿈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분명 긍정 에너지를 전하기 충분해 보인다.

한 꺼풀 벗어내다

상업 영화로 첫 주연이다. "오로지 유호정 선배님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했다"며 "제 할당량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라고 진지하게 촬영 당시 각오부터 밝혔다. 

"유호정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워낙 많은 분의 로망이지 않았나. 책받침 여신이시기도 했고. 그래서 장미의 딸(채수빈) 역을 하고 싶었는데 장미 역할로 오디션을 본 상태였다(웃음). 제 입장에선 이 영화는 엄마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작품인 게 좋았다. 선배님의 어린 시절을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긴 했지만,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는 역할이기에 감히 해보겠다고 했다."

설정상 하연수는 1970년대로 들어가야 했다. 재봉틀에 온종일 매여있는 노동자면서 일과 후엔 그 나이 또래 발랄한 장미 모습을 표현했어야 했는데 스스로도 "1970년대를 겪어보지 못해 고민이었"다며 걱정했을 정도. 실마리는 실제 하연수의 어머니에게 있었다.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당시 옷차림과 분위기를 느꼈고, 그때 유행했던 옷들을 입어 보며 나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의 한 장면. ⓒ 엠씨엠씨

 
"감독님께도 그때 분위기에 대해 많이 묻기도 했다. 의도하신 바가 있을 테니까 엄청 의지했다. 촬영 때도 일부러 옛날 촬영 방식을 사용하신 것 같더라. 솔직히 제가 옛날 노래를 많이 알아서 그게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웃음). (영화의 제목이 된) 민혜경 선생님 노래도 물론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시원한 창법인데 전 구슬이 또르르 굴러가듯 불러야 하더라. 근데 들으셔서 알겠지만 제가 허스키하잖나. 어떻게 봐주실지 걱정이다.

<감자별>에서 제가 발랄하면서도 생활력 있게 나왔는데 물론 그런 모습이 있긴 하지만 꽤 진지한 편이다. 그때도 제 안에 있는 걸 엄청나게 끌어온 것이다. 음치에 몸치기도 하다. 노래를 잘하는 느낌이 났어야 했는데 처음엔 왜 절 캐스팅하셨지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절 믿어주셨던 것 같다."


이유 있는 불안함
 
 배우 하연수

"제 입장에선 이 영화는 엄마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작품인 게 좋았다. 선배님의 어린 시절을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긴 했지만,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는 역할이기에 감히 해보겠다고 했다." ⓒ 엠씨엠씨

 
2013년 데뷔 이후 드라마 주연과 영화를 넘나들며 마냥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하연수는 꽤 깊은 내면의 고민을 갖고 있었다. 연예계 일을 하기 전까지 그는 미술 작가 지망생이었다. 예술중학교, 애니고등학교 역시 본인이 선택한 진로였다. 이후 우연히 피팅모델 일을 하게 되며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 "나름 치열하게 10대를 보냈다"며 하연수는 "중고등학교 모두 열심히 준비해 시험을 본 뒤 들어간 학교였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이 일의 특성상 늘 선택받아야 하잖나. 일이 없을 때 공허하기도 했고, 배우라는 타이틀이 없는 난 뭘까? 누구일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 일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까 두려워졌다. 태어날 때부터 이 일을 한 게 아니지 않나. (데뷔 직후엔) 일하는 저와 본래 저를 잘 분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체성을 못 찾고 흔들리다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못 디딜 만큼 힘들 때가 있었다. 정말 큰 마음 먹고 나가서 햇빛을 받으며 걷는데 '맞다 나 걷는 거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잘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같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다르잖나. 이 중에 뭘 택하는 게 맞는 것일까? 한국에서 연기자라는 정체성만 갖기엔 너무 허무하더라. 그래서 일 안 할 땐 제가 어렸을 때부터 했던 그림도 그렸고, 최근이지만 사진도 찍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스스로 채우는 게 행복이더라. '그래 난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해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보다 일단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더라."  


그래서 하연수는 틈나는 대로 여행을 떠났고, 지난해 말부턴 주말에 민화를 배우러 다닌다. "어렸을 때는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 노력이면 커서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며 그는 "근데 제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돈을 벌기엔 무리가 있는 환경이었다"고 속마음을 공개했다. 부여잡고 있던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렸을 무렵 배우 일이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 

"마찬가지로 지금 시기가 (신인에서 막 벗어나는 때이기에) 배우로서 중요한 때라고 많이 말씀해주시는데 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시기다. 일에 대한 욕심 이전에 저란 사람의 정체성을 갖고 싶다. 제가 사실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성격인데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연기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지만 일과 절 분리해서 사람으로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배우 하연수

"정체성을 못 찾고 흔들리다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못 디딜 만큼 힘들 때가 있었다. 정말 큰마음 먹고 나가서 햇빛을 받으며 걷는데 ‘맞다 나 걷는 거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 엠씨엠씨

 
상처받지 않을 자유

이렇게 내면적으로 불었던 폭풍을 겪었기에 겉으로 나오는 행동 역시 투박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최근까지 이어진 몇 가지 구설수. 여기엔 일부 매체가 맥락을 삭제한 채 그의 말만 실어나르면서 논란을 부채질 한 경향도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말을 그대로 잘 써주시면 다행이지만 기자 분들의 선택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제게 물어보시면 전 나름 성실하게 대답하려 한다. (그 답으로 인해) 절 부정적으로 보신다고 한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속상할 때도 있지만 모든 게 마음 같을 순 없으니. 제가 자신감은 없는데 약간의 자존감은 있다. 사실 있다가도 없긴 하다. 심한 말에 상처받긴 하지만 그렇게 바라볼 자유가 있듯 저 역시 상처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제되지 않은 말과 맥락이 사라진 논란보다 하연수에겐 앞서 언급했듯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 중요해 보였다. 대중 또한 그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짧게 인용되는 그의 말을 잠깐 지우고 그를 바라보자. 김현식, 유재하 님의 노래를 혼자 부르며 울기도 하고 틈틈이 찍은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내기 위해 직접 파주 인쇄소를 찾아 종이를 보러 다니기도 한다. 적어도 거저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고 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올해 해보고 싶은 일로 그는 소박하게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라 답했다. 뚜벅이 여행을 하다 자유롭게 그리고 더 멀리 이곳저곳을 다니며 영감을 얻는 그의 모습이 상상됐다.
 
 배우 하연수

"연기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지만 일과 절 분리해서 사람으로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 엠씨엠씨

하연수 그대 이름은 장미 유호정 최우식 이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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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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