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칼보다 포크> 포스터.

다큐멘터리 <칼보다 포크> 포스터. ⓒ 넷플릭스

 
나는 유튜브를 자주 본다. 유튜버들이 도전하는 분야가 다양해서 계속 보게 된다. 1인 크리에이터들은 '먹방'(먹는 방송), '겜방'(게임 방송)부터 화장법을 알려주는 방송, 장난감을 리뷰하는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먹방'은 1인 방송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원조 콘텐츠이면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변함없이 사랑 받고 있는 '스테디 셀러'다.

'먹방'에서는 치킨, 피자, 햄버거 등 대부분 인스턴트 음식이나 고기를 먹는다. 심심한 소스를 넣은 채소 샐러드로 '먹방'을 보여주는 일은 당연히 드물다. 대부분의 '먹방' 크리에이터들은 많은 양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한다.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 침을 흘리며 보고 있게 된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입 안에 넣을 때 생기는 '기분 좋은 느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상을 보고 나면 입맛을 다시며 배달 어플리케이션에 손이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여러 식품 브랜드에서 '먹방' 크리에이터들에게 협찬 상품을 제공하며 광고를 부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너무 익숙해서 당연해져버린 '먹방' 콘텐츠는 우리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음식 속 자본의 카르텔
 
 다큐멘터리 <칼보다 포크>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칼보다 포크>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칼보다 포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위기의 식탁을 구하라>는 우리가 열광하는 '먹방' 유행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즐겨 먹고, 또 '먹방'의 주요 메뉴이기도 한 패스트푸드는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상품이다.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 '빅맥'은 최저임금 대비 빅맥 가격을 뜻하는 '빅맥 지수'로까지 만들어질 만큼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이는 글로벌 자본의 영향력이 세계 곳곳에 미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패스트푸드의 원조이자 천국인 미국에서는 비만과 당뇨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칼보다 포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비만, 당뇨병 등 성인 질병으로 연간 1200억 달러(한화 약 134조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NCHS)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신장과 체중의 비율을 계산해 과체중 여부를 표시하는 체질량지수가 미국인 남성은 평균 29.1, 여성은 28.2로 모두 '비만' 범주에 속한다.

다큐멘터리는 비만의 원인으로 햄버거의 주 재료인 가공육을 꼽는다. 가공육으로 만든 식품은 심장병을 유발하고 우리 혈관의 내벽을 손상시킨다. 우리는 물론 패스트푸드가 몸에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햄버거 패티, 소시지 등 가공육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여기에는 자본의 카르텔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이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 그들이 승리한다.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찬반 여론이 뜨겁다'고 퉁치면 된다.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에 따르면, 미국 농무부가 매 5년마다 미국인들을 위한 식단 지침을 작성하는 자리에는 미국 육류 협회는 물론 맥도날드까지 참여한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식품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에서는 식품 자본들이 대중매체로 특정한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을 미국 정부가 묵인하거나 허용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변호사 마크 케네디(Mark Kennedy)는 미 농무부의 유제품 검증 프로그램은 치즈가 듬뿍 들어가 있는 특정 업체의 피자를 검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홍보하는 데 1200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말한다. '우유는 몸에 좋습니다', '저녁 식사엔 쇠고기를' 등과 같은 메시지를 내보내는 광고도 미 농무부의 검증 프로그램을 통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검증 프로그램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2008년 세계 낙농업계는 규제당국에 대한 로비를 통해 유지방의 유해성이 드러나지 않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중환자 전문의인 밀튼 밀즈(Miltion Mills)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73%, 아시아인의 95%는 장의 유당분해효소 결핍 때문에 유당의 분해와 흡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유당불내증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낙농업계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만을 후원해 왔으며, 미 언론은 그렇게 나온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유제품을 찬양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과연 이러한 미국 자본의 흐름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환경을 망치는 주범... 지속가능한 음식 생산 방식은?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고기는 물론 인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식품이고 또 맛있는 음식이다. 그러나 과도한 '고기' 소비는 환경파괴와도 무관하지 않다. 동물성 식품의 열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같은 양을 식물성 식품에서 만드는 것보다 10배 이상의 화석 연료가 더 든다고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가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결과물이다.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소들에게 주는 곡물은 세계 인구보다 20억 명 더 많은 87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아직 전 세계는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소를 키우기 위해 자원이 과잉되게 집중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공장식 축산'의 민낯이다. 언제까지 이 방식을 지속할 수 있을까. <위기의 식탁을 구하라>가 제시하는 질문이다.

자본이 만든 거대화된 식품생산 시스템은 운반의 용이함과 저렴한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지속가능한(sustainable) 대안이다. 인류는 독자적인 식품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엄연히 대기업이 돈을 벌어들이기 더욱 쉬운 시스템에 가깝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식품체계가 환경을 손상 및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점은 우리가 알지만 외면하고 있는 지점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왠지 귀찮고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익성도 유지하고 환경적인 지표도 개선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맷 리프만 아이오와 교수의 이야기는 환경훼손이 심해지고 있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이것은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한 문제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이 하나의 틀로 자리 잡아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문화가 농업체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며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셰프 댄 바버(Dan Barber)의 말처럼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소비자는 그저 완성된 식품을 구매해서 먹는 것 뿐이라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느끼기란 힘들다. 하지만 그 '완성된 식품'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먹기 위해서는 이 다큐가 말하고 있듯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이것이 사람이 하는 문제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네 식탁에서 사라진 '관계'를, <위기의 식탁을 구하라>는 지속가능한 음식 생산 방식의 한 부분임을 강조한다. 일리노이 주에서 농사를 짓는 마티 트레비스(Marty Travis)는 단순히 자신이 생산한 작물을 식당에 납품하는 비즈니스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에 집중한다. "채소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관계"라는 마티의 말이 인상적이다.

'광적인 푸디즘'... 사회적인 논의부터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포스터.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포스터. ⓒ 넷플릭스

 
물론 이 다큐멘터리들의 결론은 어떤 견고한 정답이라기보다는 논쟁과 토론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무엇이 정답인가'보다 '어떤 것이 더 나은 방식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영국의 문화평론가 스티븐 풀(Steven Poole)은 세계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광적인 푸디즘'이라고 정의했다.
 
"음식은 더 안전하면서도 남부끄럽지 않은 쾌락의 수단이자 편안하게 길들여진 도취로 향하는 열쇠다."
 
그는 "당신은 당신이 먹는 음식이 아니다(You aren't what you eat)"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잘 알려진 표현인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에 대한 비판이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중이 만들어낸 격언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그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광적인 푸디즘'이 먹는 것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제거한 상태에서 작동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편 2015년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먹방(mokbang)' 열풍을 보도하며 "국가 전반의 경제 불황으로 인한 불행감의 확산,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먹방' 열풍 이면에 대해 조명하고 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중요한 일이다.
 
결국 우리 모두 좀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음식 속 자본의 카르텔을 비판하고 지속가능한 음식 생산 방식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고민하고 성찰할 기회를 뺏긴 와중에 자본이 개입한 산업이 우리의 건강을 잠식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음을 세 편의 다큐멘터리는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푸디즘'에서 점차 벗어나 더 나은 이야기가 오갈 때다.
#넷플릭스 #푸디즘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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