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 경쟁 3인방'... 왼쪽부터 박은진, 이주아, 정지윤 선수

'신인왕 경쟁 3인방'... 왼쪽부터 박은진, 이주아, 정지윤 선수 ⓒ 박진철

 
11년 만이다. 2018~2019시즌 V리그에서 여자배구 신인왕 경쟁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언론의 주목도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속 프로구단과 V리그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 입장에서도 스타성을 갖춘 국가대표급 신인의 등장은 흥행의 필수 요건이다. KOVO 관계자도 "좋은 신인이 여러 명 등장해 이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라며 "프로 리그에선 환상적인 광경"이라고 평가했다. 

V리그에서 여자부 신인왕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2007~2008시즌이었다. 당시 양효진(현대건설·센터), 배유나(GS칼텍스·센터 겸 라이트), 하준임(한국도로공사·라이트), 이보람(한국도로공사·센터), 김나희(흥국생명·센터) 등 무려 5명의 신인이 프로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첫 경기부터 선발 주전으로 출전했다. V리그 여자부 역사상 가장 많은 신인이 프로 데뷔 시즌부터 주전을 꿰찬 것이다.

신인상은 배유나가 수상했지만, 5명 모두 기량과 활약상이 뛰어났다. 당시 여자부 득점 부문에서 양효진 13위(308득점), 하준임 14위(281득점), 배유나 15위(254득점)를 기록했다. 이어 이보람 20위(194득점), 김나희 22위(170득점) 순이었다. 배유나는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기여했고, 양효진은 팀은 최하위(4승 24패)였지만 신인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이후 성장 과정도 최고였다. 양효진은 현재까지도 V리그와 국가대표팀에서 국내 최고 센터로 평가받고 있다. 배유나도 최상급 센터로 좋은 모습을 이어 왔다.

그 이후 지난 시즌까지 10년 동안 3명 이상의 선수가 신인왕 경쟁을 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한 선수가 독보적인 활약으로 일찌감치 신인왕이 굳어지거나, 전체적으로 활약이 미흡해 경기 출전 횟수가 많은 선수가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1~2012시즌 IBK기업은행의 박정아와 김희진이 벌인 집안 싸움이 그나마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3명의 특급 신인이 치열하게 신인왕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박은진(187cm·KGC인삼공사), 이주아(185cm·흥국생명), 정지윤(180cm·현대건설)이 그 주인공이다.

각 팀이 어린 유망주를 적극 기용하는 모습도 신인왕 경쟁을 불타게 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재목감이라도 감독과 프로구단이 의지를 가지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유망주를 제대로 파악하고, 잘 성장시키는 것도 감독과 프로구단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어린 유망주는 어렵다'는 편견 또 깼다

박은진·이주아·정지윤의 신인왕 경쟁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가 있다. 신체 조건과 기량이 좋고, 성장 가능성도 높은 데다, 국가대표팀의 상황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교생 신분의 신인이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주전 멤버로 활약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사례도 드물다. 2007~2008시즌 이후 10년 동안 박정아, 김희진, 이소영, 이재영, 강소휘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재 대표팀에서도 주전급 선수들이다.

고교생과 프로팀 주전 선수는 기량과 안정감에서 차이가 크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박은진·이주아가 프로 무대에서 통할까 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성인 대표팀 경험은 있지만, 프로에서는 주전 멤버 진입도 어려울 거라는 혹평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심지어 박은진은 센터 공격수임에도 2번이나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리는 등 프로팀에서 제1 공격 옵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5일 현대건설전에서는 국내 최고 센터인 양효진과 '맞짱 대결'을 하는 듯한 활약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날 경기는 3세트만에 끝났다. 그럼에도 박은진은 17득점, 양효진은 22득점으로 각각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박은진의 17득점은 올 시즌 신인 선수 중 현재까지 한 경기 최다 득점이다. 2위는 정지윤과 이예솔(KGC인삼공사)이 기록한 13득점이다.

센터 공격수는 포지션 특성상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리기가 매우 어렵다. 대부분 라이트와 레프트가 주 공격수와 주 득점원 역할을 한다. 실제로 센터 공격수가 팀에서 제1 공격 옵션 역할을 한 경우는 V리그와 대표팀에서 최고 센터로 평가 받았던 정대영, 양효진 정도밖에 없었다.

박은진의 최대 강점은 중앙속공과 이동공격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큰 키와 점프력을 활용한 공격 타점이 높고, 빠르고 파워가 강하다. 중앙속공과 이동공격만큼은 현재 V리그 전체 선수 중 최상급 수준이다. 박은진은 8일 기준으로 V리그 여자부 속공 부문에서 정대영, 김희진, 양효진에 이어 전체 4위(46.9%)를 달리고 있다. 이공공격 부문은 전체 2위(47.8%)에 올라 있다.

신인 센터가 '팀 제1 득점원'... 매 경기 엎치락뒤치락 '흥미진진'
 
 .

. ⓒ 김영국

  
이주아도 1~2위를 달리는 선두권 팀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센터 자리를 꿰찬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동공격과 수비력 등 기본기가 좋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동공격 부문에서 박은진에 이어 전체 3위(46.9%)를 달리고 있다.

정지윤도 무서운 기세로 현대건설의 주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센터 공격수로는 단신이지만, 공격 파워가 강하고 2단 연결 등 기본기가 좋다. 윙 공격수 역할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풍부하다.

이처럼 신인 3인방의 스타일이 각양각색이고, 매 경기마다 활약상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그러면서 배구팬들의 흥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V리그 개막 직전과 시즌 중반까지는 이주아가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9월 실시된 2018~2019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됐다. 박은진은 2순위로 KGC인삼공사에 지명됐고, 정지윤은 4순위로 현대건설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주아는 V리그 개막 이후에도 1위 팀인 흥국생명의 주전 센터 자리를 꿰차면서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지윤도 현대건설이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빠르게 기회를 잡았다. 선발 풀출전 기록은 지난해 10월 28일로 3인방 중 가장 빨랐다. 그러나 3라운드 중반까지는 팀의 연패와 함께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올해 들어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신인왕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박은진은 3인방 중 가장 늦게 주전 자리를 꿰찼다. 외국인 선수 알레나의 부상 이후 KGC인삼공사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3라운드 중반에서야 선발 투입과 풀출전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풀출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단숨에 경쟁자들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팀 내 최다 득점을 2번이나 기록했고, 경기당 평균 득점, 공격 성공률, 세트당 블로킹 성공, 유효 블로킹 부문에서도 이주아, 정지윤보다 수치가 높다.

국가대표팀의 경험·안목, 프로에서 꽃피우다  

물론 세 선수가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블로킹에서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빠르게 간파하고 대응하는 리딩 능력, 수비에서 '잔 볼' 처리와 2단 연결 등에서 정교함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누가 먼저 수준급으로 올라서느냐에 따라 평가는 또 달라진다.

대표팀의 기둥인 양효진, 김수지도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갖추고 출발한 건 아니다. 신인 3인방과 비슷한 과정을 밟아 왔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을 통해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박은진과 이주아는 고교생 신분으로 지난해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핵심 국제대회에 성인 대표팀 1군에 발탁돼 출전했다. 네이션스 리그와 아시안게임에서는 출전 기회가 적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차세대 국가대표 센터감임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이들이 프로 무대에서 겁 없는 활약을 펼치는 배경에는 대표팀에서 쌓은 경험과 안목이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김연경을 비롯한 쟁쟁한 선배 언니들과 훈련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

현재 여자배구는 대표팀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양효진(31세·190cm), 김수지(33세·188cm)의 후계자가 시급한 상황이다. 양효진과 김수지는 한국에서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장신 센터다. 

그런 시점에서 장신의 신인 센터가 2명이나 동시대에 출현했다는 점, 프로 무대에서도 주전 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성장을 주목하는 이유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배구 V리그 신인 김연경 KOVO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비록 모양이 틀려도 왜곡되지 않게끔 사각형 우리 삶의 모습을, 동그란 렌즈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