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치

기치 ⓒ 강선영

  
사람은 전부 다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에 대해 세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완전히 다른 시점에서 진술하는 영화 <라쇼몽>을 보면서 정신이 아찔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우리의 인생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니, 영화는 영화이기에 결국 시작과 끝이 맞아 떨어지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지도 않다. 앞뒤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부 다 엉망진창이고, 권선징악이란 게 과연 존재를 하는 건지 의문스러울 때도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 온통 모순과 제각각 어려움들이 가득하다.

스무 살 그 시절, 각자의 어려움을 가지고 만나게 된 그때의 기치와 나는 음악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아직은 덜 자란 소녀들이었다. 그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조금이나마 더 서로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관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그가 몇 년의 시간 동안 자신 안에 끌어안고 있던 노래들을 <온-몸>이라는 이름의 정규 앨범으로 발매한 것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아직 앨범 발매를 하기 전이었던 지난 2018년 11월 5일, 나는 기치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 찾아가 그를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치만의 여리고 단단한 아름다운 소리를 감상하며, 한편으로 조용하게 털어놓은 그의 말에도 주목해보자. 

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 Vol.4 기치

- '기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어떤 뜻인지 설명 한 번 부탁드릴게요.
​"사실 별 의미는 없는데, 나중에 굳이 붙인 게 제가 자라왔던 경상도 사투리로 '기치' 가 그렇지' 할 때의 뜻이라고 사람들한테는 말했어요. 영어로 검색을 하면서 또 알게 된 사실은 그게 몽골어로 욕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어쩐지 자꾸 알 수 없는 문자로 적힌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친구 신청을 하거나, 검색하거나 하면 저랑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가 뜨거나...(웃음)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름 상반된 뜻으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 활동을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어떤 음악을 하고 계신지 간략히 소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연을 처음 한 게 2006년에 '클럽 빵'과 '살롱 바다비'에서 였어요. 그 당시에 인터넷에서 '라디오 헤븐(Radio-Heaven)'이라는 음악카페 활동을 했어요. 실제 생활에서는 '아웃사이더'였는데 인터넷 세상으로 가면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거기에서 위안을 얻었죠.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서울에 와서 정모를 나가게 되고, 거기에서 만난 유유씨랑 (웃음) 밴드를 결성해서 공연을 시작하게 됐죠.

일단 (하고 있는 음악은) 장르적으로는 미니멀 포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솔로 2집은 일렉트로니카이고 밴드할 때는 포스트록이나 슈게이징이라서 딱히 제가 추구하는 장르는 없는 것 같은데, 혼자서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되게 미니멀한 포크 음악이 되는 것 같아요. 제 성격 자체가 워낙에 있을 것만 남겨두는 걸 좋아해서, 그림 그릴 때도 물론 색깔 쓰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정말 종이와 연필 하나만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해요. 음악 만들 때도 악기 하나를 단조롭게 깔아주고 노래로 잔잔하게 변화를 주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기치

기치 ⓒ 강선영


- 음악이나 그림을 제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나 관련된 배경에 관해서 들어보고 싶네요.
"일단 그림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 그림으로 칭찬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여섯 살, 일곱 살 때쯤이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너는 참 색감이 좋구나'라고 하셨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요. 워낙에 어릴 때 가정환경이 그렇게 칭찬에 후하지 않아서 저도 저 스스로에게 인색하고 엄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칭찬을 들은 게 강한 동기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다가 혼자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화해가면서 아무래도 만화나 록 음악 같은 '아웃사이더'들의 취미를 필연적으로 만나게 됐네요.(웃음)

음악은 되게 자연스럽게 듣다가 좀 막 아예 '음악이 난 너무 좋다' '음악이 없으면 살 수 없어'라며 열심히 들었던 게 중학생 때였던 거 같고, 고등학교 때 통기타 치는 걸 배우면서 조금씩 내 것도 만들어보자 했었고요."
 

- 2011년 5월에 기치 솔로 정규 1집 < The World Is A Kaleidoscope of Colors And Sounds >, 2011년 11월에 밴드 '세계몰락감'으로 동명의 정규앨범을 내놓으셨고, 2012년 7월에 정규 2집 <해골과해골이입맞추도록>을 내놓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발매된 음반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그렇게 처음 함께 공연했던 멤버인 유유와 둘이서 (공연을) 했어요. 당시에 우리는 풀 밴드로 해보자고 해서 뮤지션 커뮤니티인 '뮬'에다가 드러머, 기타리스트를 구한다는 글을 남겼어요. 그때 지금의 김효제씨를 만나게 됐죠. 참고용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라디오헤드, 포티쉐드, 블론드레드헤드, 메시브어택라고 써놨는데, 효제가 '같은 부류다'라면서 알아보고 찾아온 거죠.(웃음)

그때 합정동 지하에 있던 연습실에서 연습을 했어요. 2011년이었는데 저는 식이장애가 굉장히 심했어요. 매일 피자 한판이랑 통닭 한 마리를 시켜서 먹고 토하고, 과자도 몇 만 원어치 사서 그날 다 먹고 또 토하고. 제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그런 날들이 반복되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스스로가 말랐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보면 진짜 말랐더라고요. 제가 키가 거의 180cm인데 그 당시에 최저 몸무게를 찍었을 때 53kg였으니까요.

1집 녹음할 때는 '유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것은 녹음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효제가 도와줬죠. 당시에는 발매할 계획은 없었어요. 그냥 녹음을 해서, 파일을 주변 사람들한테 기념 삼아 좀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효제가 '이왕에 녹음했는데 온라인으로 유통해보지 않겠냐'라고 했어요. '나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라고 말하니까 효제가 그냥 자기가 알아서 신청하고, 돈도 자기가 다 내더라고요. 그렇게 내게 됐어요. 세계몰락감 밴드 앨범은 이미 우리가 그만두기로 말이 나왔었는데, 그것도 약간 기념 삼아서 하게 됐었죠."
 

- 녹음 시기가 어떻게 됐었는지 저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각각의 시기가 어떻게 됐었죠? 밴드는 아마 1년 내내 틈틈이 녹음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요.
"제 1집 앨범은 여름에 녹음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밴드는 1년 내내 걸렸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에 저는 사실 효제 집에 얹혀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방바닥에서 제가 '크레이지 아케이드' 게임을 하고 있으면 효제가 와서 '녹음 마치지 않을래?'라고 권했어요. 그러면 저는 세팅 해준대로 가서 그냥 띵가띵가 하다가, 효제가 또 알아서 해줬어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참 복이 많았죠. 앉아서 떠먹여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효제한테서 에이블톤 라이브를 다루는 걸 배우면서 너무 모르니까 오히려 '우당탕탕' 만들고 '이왕 만든 거 이것도 발매할까?' 해서 2집도 그 이듬해인 2012년에 내게 된 거죠."

- 그러면 에이블톤 라이브는 얼마나 다루셨던 건가요?
"3개월이 채 안 됐어요. 그 당시엔 쉬는 시간에는 거의 카페에 가서 작업했어요. 그때는 카페에서 담배 피우는 게 합법이었죠. 줄담배 피우면서 작업하고 그랬어요. 집에 있으면 축 처지기도 하고, 작업할 기분이 아니라서. 카페 가서 에이블톤으로 뭔가 만드는 게 낙이었죠."

- 그렇게 작업을 하셔서, 2011~2012년에 쭉 결과물을 내놓으셨네요. 
"그때 당시에는 '아, 난 1년에 한 번씩 작업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3집을 내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죠.(웃음)"
 
 기치

기치 ⓒ 강선영

   
- (인터뷰 시점에서는 곧 발매될 예정인) 기치 솔로 정규 3집 <온-몸>의 경우에는 꽤 오랜만에 내놓는 음반인데, 앨범의 제작 과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3집은 사실 보면 노래들 자체는 되게 이미 옛날에 만들어뒀던 노래들이에요. '달항아리' 같은 노래도 2012~2013년에 만들었고, '양화대교' 같은 노래도 한 5년째 라이브에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 새로 쓴 노래는 한 개인가, 두 개밖에 안 돼요.

항상 전 뭘 할 때마다 '유작'이라는 생각을 하나 봐요. 이 앨범도 '가기 전에 이건 끝마치고 가야지' 하는 부채감이나 책임감 같은 게 있었어요. 제주도로 오면서 녹음을 편하게 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사실 찾으려면 스튜디오도 있긴 했는데, 효제를 오랜 기간 봐 왔으니까 효제랑 하는 게 편하더라고요. 그냥 제가 틈틈이 서울에 왔다 갔다 하면서 녹음을 했죠."
 

- 지금은 텀블벅 진행 중이시니까, 앨범을 발매하시면서 하게 된 텀블벅 과정이나 그런 걸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열심히 앨범을 계획하고 준비했을 때는 제가 작년에 직장 생활을 했을 때예요. 사실 저는 직장에서 1년 가까이 일한 경험이 거의 처음이었거든요. 우울증이 있다 보면 아무래도 한 곳에서 오래 뭘 하는 게 힘들어요.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거 약간 재활 훈련하는 과정 같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확실히 고정적인 수입이 있으니까 계획도 좀 더 세울 수 있게 됐어요. 그때 생각한 게 '그러면 돈을 모아서 결산하는 느낌으로 3집까지 한꺼번에 내버리자'라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막상 또 고정적인 수업이 있을 때는 시간이 없으니까, 작업을 못했어요. 어차피 어느 정도 일을 하다가 그만둘 계획이긴 했는데, 직장에서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갑자기 그만두게 됐죠. 그러면서 약간 앨범이 무한정 미뤄졌다고 해야하려나, 정신적으로 추스리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었어서. 

(그 이후에 텀블벅을 진행하려고 했을 때는) 처음에는 은행에서 소액대출을 받아서 소량으로 배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음악으로 돈 버는 것에 대한 미련은 애초에 크게 없었어요. 빚만 너무 크게 안 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제가 쇼핑중독 수준으로 텀블벅을 많이 하게 됐어요. 보면서 재밌어서 '나도 이걸 한번 해볼까' 싶기도 했고, 몇 명 정도가 관심이 있는지 수요가 확인이 되니까요. 준비해서 올렸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주셔서, 다행히 발매가 될 것 같아요."
(* 인터뷰 이후 텀블벅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현재 기치의 음반과 책이 정식 발매된 상태이다.)
 

- 3집 앨범에 담겨있는 수록곡들에 관하여 좀 더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듣는 분들이 눈치채실 지 모르겠지만 나름 수록곡 리스트를 하루의 과정처럼 배치했어요. 총 9곡이고, 첫 곡이 '달항아리'예요. 이 노래가 제 생각에는 가장 중립적인 느낌이예요. 약간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 이제 들여다볼게' 하는 식으로 서문을 여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이 노래를 첫 곡으로 넣었어요. 그다음 곡 '꿈과 1/2'이 불면증에 관한 노래예요. 그 다음 '양화대교' '밤 낚시' '가요' '토끼풀 반지' 이 노래들은 모두 밤에 술 마시고 돌아다니면서 인생 한탄하고, 죽고 싶어 하고 그랬던 내용들이예요.

그다음에 '우울증 연대기'라는 노래를 올해 만들었네요. 이 노래가 엄청 '다크'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다 털어버리고 싶어서 쓴 노래예요. 슬프지는 않아요. 그냥 담담하게 '이런 일들이 있었지' 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다음에 수록된 노래가 '비밀을 간직한 채로'. 이 노래는 펜션에서 일하던 당시에 만든 노래인데, 결국엔 다 털어놔도 각자의 비밀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그냥 안고 살아가야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음으로 배치를 했어요.

마지막 곡이자 타이틀곡이 '나의 손목'이예요. 이 노래가 그렇게 막 희망적인 노래는 아닌데, 저한테는 버거울 정도로 희망적인 노래에요. '내 손목에 꽃이 필거야' 이러는데 '메시지 너무 긍정적이다' 싶었어요. 그래도 다음 방향이라던가, 앞으로의 시간들에 관해서 열어놓고 싶어서, 넣게 됐네요."
 
 기치 정규 3집 앨범 <온-몸> 커버

기치 정규 3집 앨범 <온-몸> 커버 ⓒ 강선영

 
-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의 이야기 자체도 그렇고, 앨범을 내면서 <우울증 연대기>라는 책도 같이 쓰게 됐잖아요? 본인의 우울증에 관해서 제가 알기로는 예전보다 스스럼없이 말을 하게 됐는데, 그런 식의 변화가 스스로에게도 좀 더 도움이 된다거나, 그런 부분들이 있을까요?
"그게 제가 굳이 '나 우울증 있어요'라고 얘기를 하지 않아도, 지켜본 사람들은 다 아니까요. 그리고 20년 동안 우울증이 있었던 거면 이게 제 인생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 거니까요. 정말 엄청난 거고 내 삶의 일부분인 거죠. 한국에서의 인식 같은 게 워낙 부정적이다 보니까 직장에서도 숨겨야 하고. 그런데 올해 초에 거의 반년 넘게 쉬면서 개인적으로 되게 많이 성장을 한 시간이 있었어요. 

거의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목표였어서, 원래 제 성격 같으면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느낌이 드니까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하루에 한편은 영화를 본다'고 정해놓아야 다이어리에 제목이라도 써놓았어요. 나중엔 그 영화 내용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도 내가 뭔가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그랬죠. 이번에 쉴 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강아지 산책 한번 했으면 하루 일과 끝이었어요. 되게 편했어요.

먹는 것도 밤에 그냥 먹고 싶으면 라면 끓여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싶으면 먹고, 그냥 잤어요. 집에서 나갈 일이 없으니까 화장도 잘 안 하고, 브래지어도 할 일이 없고, 그러면서 되게 저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막 스스로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커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판단했는데, 그 시간 동안에는 '쟤가 거울에 있네, 머리가 길었네'라는 식이었어요. 그 시기가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미투' 운동이 있고 그랬던 시기였어요. 그런 게 맞물려서 저한테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고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그런 태도."

- 지금 얘기한 내용들과 이어지는데요. 2015년 이래로 페미니즘이 한국 및 전 세계에서 다시금 중요한 화두가 됐어요. 기치님 스스로도 자신의 우울증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구조적 차별 등이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그런 생각이 약간 슬픈 게, 결국은 '내가 그 당시에 어떤 선택을 했어도, 결국 나는 이 모든 것을 똑같이 겪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서글프긴 해요. 물론 제 개인의 가족에서의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도 되게 가부장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당신도 그걸 똑같이 배우신 분이셨어요. 그리고 제가 자라던 1990년대 당시에는 워낙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던 시기였어요. 경찰을 불러도 '집안 문제'라고 해버리고. 그리고 동네에 변태도 되게 많았어요. 저기 어느 아저씨가 바지를 내리고 있는데, 보니까 만화방 주인 아저씨였던 적도 있고.

그냥 다들 무감각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제가 열몇 살 정도일 때 엘리베이터에서 서너 살 정도 많은 어떤 남자애가 갑자기 '맘에 드는데, 번호를 달라'고 했어요. 그때 제가 막 중학생이었는데 너무 순진했고, 휴대폰도 없었어요. 집 전화번호를 적어준다고 하니까 그 남자애가 그러지 말고 자기네 집이 맨 꼭대기 층인데 '따라오라'고 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따라갔어요. 그랬더니 (그 남자애가) 옥상에서 절 구석으로 몰아넣고 '너 나랑 잘래? 안자면 내 뒷주머니에 칼 있어' 그러더라고요.

그 남학생은 고등학생 정도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 저한테는 되게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그때 전 그냥 만화방 갔다가, 만화책 들고 오는 길이었으니까. 그래서 소리를 지르고 집으로 막 뛰어서 도망쳤어요. 부모님한테 '나 이런 사람을 만났다'고 말을 하니까 부모님이 되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냥 텔레비전 보시면서 '이상한 애가 다 있네, 내일 윗집에 물어 봐' 이러시더라고요. '내가 이런 일을 겪었는데, 어른들한테는 별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이게 저만의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다들 그런 경험이 있는데, 다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니까 '이게 별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치

기치 ⓒ 강선영


- 그런데 실제로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경험이 없는 여자를 저도 본 적 없긴 하네요. 저도 여고를 다녔는데, 수학여행에 가서 다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 보니 그런 화제가 나오게 됐어요. 크든 작든 성추행 당한 경험이 없는 애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중학교 때 교무실에서 청소를 하는데 교감 선생이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를 만졌다거나, 지하철에서 앉아있는데 등 뒤로 어떤 남자가 손을 넣어서 가슴을 만졌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저는 또 키가 크잖아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일단 키가 크면 눈에 띄어서 그런지 '그들'의 뭔가를 자극하나 봐요. 나는 그냥 '나'인데, 멀뚱멀뚱 서 있으면 '우와'라고 한다거나, 혹은 괜히 시비를 걸면서 '뭐야, 남자야?'라고 얘기한다거나. 

제가 느끼는 게 두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한국에서 (여자로서) 평균 이상의 키로 살아가는 게 굉장히 스트레스가 되는구나. 외계인 취급받는구나'라는 거였어요. 다른 하나는 '보통 남자보다 내가 키가 크니까, 나는 오히려 성희롱 경험이 적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남자애들이 저를 만만히 안 봤으니까.

그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이면서, 저는 되게 자연스럽게 우울증에 걸릴 토양이 됐다고 봐요. 우울증에 안 걸릴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우울증에 안 걸렸으면 그게 되게 이상한 일이었을 거예요. 제가 종교에 심취하거나, 지금 막 '페미니스트 다 이상해, 정신병이야' 이런 말을 하고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 아닐까요? 

지금의 제 모습이 저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너무 우울의 정석, 교과서를 따라온 느낌이랄까? 제 인생을 축약해서 보면, 되게 제 인생이 '우울증의 표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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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치 ⓒ 강선영

  
- 서울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2015년 무렵에 제주도로 내려가서 거주를 하시게 되었죠. 제주도에서 거주를 하면서 생긴 생활적인 변화, 작업적인 면에서의 변화 등이 궁금하네요.
"이것도 우울한데(웃음) 제주도에 왔던 건 사실 전 남편과 새롭게 새로운 곳에서 뭔가 시작을 해보고 싶어서 온 거였어요. 사실 전 남편 직장 때문인 게 제일 컸죠. 저는 워낙 이사 자주 다니고 그랬으니까요. 다른 데서 생활해보고 싶어서 따라왔다가 헤어졌죠. 

그런데 그때 제가 한 생각은 '여기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똑같이 또 살겠구나' 싶었어요. 실제로 그때 죽으려고 했는데 그때 한 생각은 '그냥 여기서 죽던가, 별로 미련이 없으니까. 아니면, 뭐가 되건 간에 여기에서 혼자 있어보자, 시도를 해보자'였어요.

그래서 당시에, 집에서 쫓겨난 다음에 숙식을 제공해주는 직장을 찾다 보니까 펜션 같은 데를 찾게 됐고 거기에서 일을 하게 됐죠.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되게 유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 이전에는 주로 일을 하면 사무직이나 예술 관련 일을 했어요. 그런데 이건(펜션 일은) 정말 배운 것은 하나도 쓰잘데기 없는 단순 육체노동이니까요. 그런데 거기에서 오는 배움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잡념 없이 몸을 계속 쓰는 거니까, 피곤해서라도 잠이 와요. 안 쓰던 몸의 근육을 규칙적으로 쓰는 일이니까 그게 뇌하고도 연결이 되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우울증 있는 사람들한테 중요한 게 규칙적으로 뭘 계속하면서 일상의 토대를 만들어줘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계속 일을 하니까, 그런 배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청소 노동에 관해서는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라는 걸 알았고 되게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보통 청소 노동자나 다른 비슷한 서비스 업종을 다른 말로 '그림자 일'이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데서 사람들이 일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꺼리는 일들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그 일을 직접 하면서부터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게, 제 세계관에 다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되다 보니 보통은 음악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일'과 '음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음악으로 먹고살고 싶지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재수 없을 수 있는데, 그냥 저는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할 수 있다고 해도. 일단 저는 공황장애가 있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거든요. 아무리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별로 즐길 수가 없어요, 그걸. 그리고 나 자체도 공연장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 음악 듣는 것도 제 편한 방에서 들을 때가 제일 좋고. 그런 핑계거리가 있고요.

솔직히 말해서 저 스스로도 저를 프로라고 여기지 않거든요. 이것도 공연의 태도랑 연결이 되는 건데, 물론 열악한 상황에서는 뽑아낼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죠. 하지만 어느 정도 상황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을 항상 보여주는 실력 혹은 공연의 질을 유지하는 게 프로의 중요한 능력과 자세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러기에는 감정 기복도 너무 심하고,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감이 많아서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저는 지금 삶에 만족해요. 너무 제 시간을 뺏기지 않는 선에서 정해진 일을 하고, 정해진 급여를 받고. 남은 시간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쉰다는 느낌이예요.

사실 이렇게 생각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예전에는 '내가 음악을 하지 않거나, 그림을 안 그리면 무슨 쓸모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경계성 인격 장애가 있는데, 그 증상 중에 하나가 사고의 비약이라서, 너무 극단적이에요.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뭔가 하나만 삐끗하면 그때부터 망상이 심하다고 해야 하나. 어떤 사람이 어떤 제스처를 보이는데 그게 거절이었다면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한다.' '나는 쓸모없어. 이 세상에서 버려졌어.' 하면서 걷잡을 수가 없어져요.

​쉬는 동안에 이런 점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봤어요. '굳이 꼭 뭔가 해야 오늘 하루가 가치가 있나? 내가 꼭 매일매일 나한테 증명을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봤는데, 그래도 별일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 세상은 나한테 하나도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게 되게 자유로워진 느낌이었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구나. 

지금까지도 사실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인간이 그런 게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항상 공연 끝나고 나면 불만족스럽고, 그런 기억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지금은 음악에 모든 것을 걸고, 나의 존재 의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덤덤해요. 우울증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솔직 담백하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게 되고, 좀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 예전보다 조금은 더 거리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네요.
"제가 제 스스로를 좀 더 큰 그림으로 볼 수가 있으니까,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기치

기치 ⓒ 강선영


- 그래도 앞으로도 뭔가 음악을 할 만한 동력은 계속 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요. 진짜, 그만하고 싶은 게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노래들이기도 하고, 노래 자체가 너무 진지한 노래들이다 보니까, 심적으로 한번 부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악몽을 꿀 정도로 힘들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앨범 발매가 되면 그냥 공연도 별로 안 하고 싶고, 그냥 멀리 떠나보내고 싶어요. 딱히, 뭔가 만들고 싶다거나, 그런 것도 없고.

그런데 뭔가 작업을 한다면, 다른 좀 더 즐거운 걸 해보고 싶어요. 즐거운 걸 한다고 해서, 밝은 메시지를 주는 그런 건 못할 것 같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고. 어느 정도 선에서 약간 장난스러운 느낌? 괴짜 같은 느낌? 그런 실험적인 걸 해보고 싶어요. 아니면 메탈 밴드의 보컬이라거나, 뭔가 좀 안으로 꾹꾹 담는 건 그만하고 싶고, 분출을 하고 싶어요. 좀, 마음이 가볍게." 

- 음악 외에 최근에 갖고 있는 다른 취미나 관심사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네요.
"하나는 저조차도 예상 못 했던 건데, 운동이에요. 확실히 제가 육체노동이 주가 되는 일을 하다 보니까 몸의 감각에 좀 더 사람이 깨어진다고 해야 하려나? '내 몸에 이런 근육이 있었나?' 하면서 생활 근육이라고 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돼요. 이건 다른 여자들이 특히 공감할 것 같은데, 몸이라는 게 항상 아름다워야 되고, 관리되어야 되고, 숫자에 좌지우지되고 그런 거였는데, 몸의 형태를 그 자체로 좀 더 보게 돼요. '아, 여기가 근육이 좀 올라왔네?' '여기가 좀 단단해졌네?' 하면서요. 그게 약간 뇌의 새로운 부분을 공부를 하면서 익히는 거랑 비슷하다는 감각을 많이 가졌어요."

- 일 외에도 뭔가 다른 운동을 한다거나, 그런 게 있을까요?
"딱히 운동이랄 건 없는데, 스트레칭하고 아령 드는 정도? 그 느낌이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 뭔가 버틴다는 거에 육체적으로 가깝게 되는 느낌. 개인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결국에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령 같은 걸 들고 있으면 좀 더 와닿는 거죠. 이렇게 뭔가, 안간힘을 쓰면서 해본다는 느낌?"

- 그러고 보니 정규 3집 앨범 타이틀 명도 <온-몸>인데, 그런 식으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을 예전부터 많이 하셨나요?  
"그냥 이걸 쭉 훑어보면 결국은 하나의 주제로 요약이 되는 것 같았어요. 결국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데, 제가 그렇게 싫어하고 경멸했던 나 자신이란 존재. 그런데 올해 초에 쉬면서 거울을 보면서 종종 했던 게 '네가 나로 태어나서 고생이 참 많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몸이라는 게 그 말 그대로 신체적인 몸의 의미도 있지만, 뭔가 우리가 이해심 많은 사람들한테 '저 사람 그릇이 넓다' 이런 표현도 쓰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엔 마음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달항아리'라는 그릇으로 비유했듯이 (몸이라는 게) 뭔가를 담아주는 용기이고, 나는 여기에 들어있는데 여기에서 죽을 때까지 못 나가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그 앨범에 결국에는 나 자신과 화해를 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근육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과 더불어서, 몸의 여드름 자국이나 손목의 자해 흔적들, 그런 것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훑어보는 거죠. 약간 그릇의 무늬를 보는 것처럼. 웃는 표정의 주름살 같은, 이런 게 다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다는 흔적인 거니까요."

- 그러면 그 외에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요?
"다른 하나는 타투인데, 처음에는 그림의 연장으로 봐서 당연히 그림 그리는 것의 일환으로 관심이 항상 있었는데, 몸이라는 화두랑 겹쳐지면서 그게 연결이 됐죠.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단순히 실용적인 그런 이유도 있어요. 뭔가,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나중에 생계유지가 될 텐데, 그림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게 저한테 정서에 맞고, 또 좋아하기도 해서. 지금은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거나 하진 않고, 저 스스로에게 실습을 하고 있죠. (웃음)"
 

- '최근의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곡을 골라서 라이브 영상을 찍기로 했는데, '달항아리'를 골라주셨습니다. 노래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달항아리'는 공연하면서도 많이 반복해서 말하고 다녔는데, 그 태도가 되게 좋아요. 요즘 SNS에서 유행하는 말로 대체를 하자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느낌? (웃음) 요즘 자기 계발서 같은 걸 보면 다 위로해주는 말이잖아요. 그런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불완전함에 대한 수긍, 혹은 긍정."

- 최근에 본인 음악 말고 즐겨듣거나, 추천하고 싶으신 음악이나 뮤지션이 있을까요?
"그걸 생각을 해봤는데, 사실 올해 초부터 책 읽고 음악 듣는 것을 거의 안 하긴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보니까. 그래도 찾아듣거나 본 걸 훑어보니까, 공교롭게도 다 여자 음악가거나 여자에 관한 내용이라거나 그래요. 요즘 제 관심사는 '여성'인 것 같아요. 그런 걸 일부러 찾아볼 때 마음가짐이 뭐냐면, '몇 천 년 전부터 이미 남자들은 여자의 목소리를 일부러 안 듣고 있었는데, 일부러라도 찾아들어야지' 이런 마음도 있고, 그냥 제가 못 들었던 목소리를 지금이라도 찾아서 듣고 싶은? 그런 게 있어요.

다 여자 싱어송라이터인데 에디 프론트(Eddi Front)가 최근에 되게 좋았고, 작년부터 좋아했던 트립합 여자 싱어송라이터로 '렘지(Ramsey)'라는 분이 있어요."

- 음악 외에 인상 깊게 본 영화라거나 책 등이 있으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네요.
"독립출판물은 항상 관심이 많아서, 틈틈이 보고 있는데 요즘 되게 관심 있고 재밌게 봤던 게 '계간홀로'라고 연애를 권하는 사회에 대한 책인데, 처음에 만드신 분 의도로는 '왜 자꾸 연애하라고 고나리질하냐' 그런 거였는데, 이게 거의 십몇 호까지 나오면서 점점 논의가 발전이 돼서, 무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퀴어에 대한 논의도 있고,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한 것도 있고 한데, 만드신 분의 톤 자체가 코믹해서 웃겨요."

- 그러고 보니 이번에 앨범 텀블벅을 하면서 독립출판도 같이 하시게 됐습니다. 
"저 스스로가 저는 마이너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저랑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서 보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그리고 약간 삐뚤어진 마음도 있긴 한데, 너무 유명한 건 보기가 싫어요. 어떤 생각이 드냐면, '저들은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필요 없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라도 이름 없는 것들을 보살펴야지' 이런 마음이 있어요."

- 그러면 본능적으로 인기 있거나 그런 것들에 끌리지가 않나요?
"네, 예를 들어 해리포터 같은 건 애초에 보지를 않아요. 음악도 너무 유명하면 그냥 안 듣고. 그런데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촉 같은 게 있잖아요. 이건 진국이다 하는 건 따로 있잖아요? 라디오헤드 같은(웃음) 그런 건 즐기죠. 그런데 너무 대세이고 그런 건 '굳이..?' 하는 마음이 든달까, 그러네요."
 

- 본인의 음악 중에서 추천하시고 싶은 노래를 3곡 골라주세요.
​"이건 추천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하는 게 편할 것 같은데,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1집의 '이끼'라는 노래를 좋아하고, 2집의 '해골스프', 3집에서는 '토끼풀 반지'. 뭔가 워낙에 다 단출한 노래들이긴 한데, 그 중에서도 더 완전 심플하고, 심심할 정도인 노래들이예요. 이게 정말 나답다,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다, 싶어요.

1집의 '이끼' 가사 중에 '문드러진 마음을 위해 노래할 거야'라는 부분이 있는데, 저는 이게 항상 제 모토라거나, 자세라고 생각해요. 마이너한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그런 마음인거죠. '남들한테 항상 환영받는 게 아니라, 그늘진 것들을 위해서 글을 쓰고, 노래를 해야지. 들여다봐야지'라는 마음이예요.

2집의 '해골스프'는 우울증이 없을 때 장난기 있는 제 성격을 좀 잘 드러내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 '해골스프'의 경우에는 목소리를 아주 많이 쌓는다거나 하는 오버더빙을 시도했잖아요? 그런 부분이 좀 장난기 있게 표현됐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항상 제가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만약에 내가 우울증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왔을까?'예요. 우울증이 없을 때가 워낙 드물지만, 그래도 좀 떠올려보려고 하면 내성적이긴 하지만, 되게 웃긴 걸 좋아하고, 장난기도 있어요. (그런 게) 우울증에 가려진 원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익살스럽고 그런 사람인데, 대부분의 시간들은 우울증 때문에 많이 닫혀있고, 표현을 잘 안 하는 거죠.

3집의 '토끼풀 반지'의 경우에는 '우울증 연대기'와 같이 가장 최근에 만든 두 개의 노래 중에 하나인데, 예전에는 가사를 쓸 때 너무 직설적인 걸 일부러 피했거든요. 되게 돌려 하거나 은유를 쓰거나. 그런데 여기 가사를 보면 '막걸리'라든지, '담배', '엄마' 같은 되게 전형적인 단어들? 생활감이 묻어나는 단어들이 계속 나와요. 

제 생각에는 일을 하면서 그런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생활인으로서의 그런 체감? 항상 몽상가였는데, 지금은 좀 더 노동 계급의 얼굴을 보게 된 거죠. (웃음) 이렇게 말하니까 거창하지만."

-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직설적인 표현들이 나오는 건가 보네요?
"그런 거 같아요. 예전 같으면 그런 것도 되게 부끄러워하면서 말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뭐, '어쩔 건데?' (웃음)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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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치 ⓒ 강선영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공연, 음반 등)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내년에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고, 희망사항이지만 타투로 좀 더 수입을 벌 수 있게끔 제 스튜디오를 운영해보거나, 견습을 해보고 싶어요. 계획은 그냥 건강하게 사는 거예요.

목표는 주변 사람들한테 잘 하고 싶고, 더 표현을 많이 하고 싶고, 병원 꾸준히 다니면서 약을 더 줄여보고, 자갈이랑 우도 산책도 많이 시키고 더 추억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개들을 보고 있다 보면 사는 게 유한하다는 게 딱 느껴지니까, 그런 다짐을 많이 하게 돼요. 

그리고, 항상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동경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예전의 저는 표현은커녕 혐오 때문에 거울도 제대로 못 보는 상황이었으니. 지금은 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서, 나중에는 제 몸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아무거나, 뭔가 춤이라거나. 몸을 쓰는 느낌을 좀 더 받아보고 싶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정치관이나, 도덕성에 대한 가치 기준 이런 게 있는데, 제가 노래를 하거나 그림 그릴 때 항상 분리를 잘 시켜놨단 말이죠. 앞으로는 그런 걸로 목소리를 좀 더 분명하게 내보는 걸 해보고 싶어요. 그게 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좀 더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사회)운동이 될 수도 있겠고. 뭔가 사람들과 접촉을 하면서 큰 구조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너무 내 안의 감정들이나, 그런 것들에 휩싸이느라 버거웠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분리를 시키면서 그 구조나 시스템을 보게 돼서, 아빠도 피해자였다는 걸 보게 되니까요.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것도 되게 평범한 말이긴 한데,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보통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평온하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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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때때로 글을 쓰기도 하는 작업자.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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