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블비> 포스터

영화 <범블비>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디셉티콘과 전쟁에서 위기에 몰린 오토봇의 리더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쿨렌 목소리)은 B-127(딜런 오브라이언 목소리)에게 지구로 가서 오토봇 조직을 재편성하란 임무를 맡긴다. 지구에 온 B-127은 인간과 디셉티콘의 공격을 받아 기억을 잃고 낡은 비틀로 변신하여 은둔하다가 우연히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 분)를 만난다. 찰리는 B-127에게 '범블비'란 이름을 지어주고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범블비를 뒤쫓던 디셉티콘 셰터(안젤라 바셋 목소리)와 드롭킥(저스틴 서룩스 목소리)이 오며 지구는 위험에 처한다. 

2007년 <트랜스포머>가 보여준 변신 로봇은 <반지의 제왕>의 골룸, <아이언맨>의 슈트, <아바타>의 판도라와 함께 2000년대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대표한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은 <트랜스포머>의 시각 효과에 열광했고 그 결과 7억 달러(한화 약 8천억 원)라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속편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는 8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3편 <트랜스포머 3>(2011)과 4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는 각각 11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흥행 성적과 반비례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편이 거듭될수록 각본은 앙상해졌고 폭발의 수치만 올랐다. 2017년에 개봉한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6억 달러라는 시리즈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마침내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종말을 고했다.

영화 <범블비>는 로봇 완구 '트랜스포머'를 소재로 한 여섯 번째 작품이다. <범블비>는 '트랜스포머'의 캐릭터인 범블비를 주인공으로 삼았기에 '스핀오프' 혹은 '프리퀄'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범블비>는 전작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시리즈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리부트'로 제작됐다.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범블비>의 연출은 폭발과 액션으로 대표되는 마이클 베이 감독에서 <파라노만>(2012)과 <박스트롤>(2014)을 제작하고 <쿠보와 전설의 악기>(2016)를 연출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단순한 감독 교체가 아니다. 액션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졌던 '트랜스포머'를 성장 영화로 바꾸겠다는 변화를 의미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부터 <범블비>까지 프로듀서로 참여한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는 "많은 사랑을 받는 범블비를 한층 더 깊이 있고 다채롭게 그려냈다"면서 "찰리와의 관계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완전히 새로워진 이야기를 통해 범블비와 사랑에 빠질 기회를 선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메가폰을 잡은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범블비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충실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범블비>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싸움, 십대 청소년의 첫 자동차가 변신 로봇이란 상황, 변신 로봇을 추적하는 군인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범블비가 라디오의 음악을 이용하여 의사 표현을 하는 설정 등에서 <트랜스포머>(2007)와 상당히 닮았다. 각본가 크리스티나 호드슨은 <트랜스포머>를 존중하는 바탕 아래 몇 가지 키워드를 활용하여 <범블비>를 썼다. 그리고 '트랜스포머'의 이야기이자 '범블비'의 이야기이고 '찰리'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첫 번째 키워드 '우정'이다. <범블비>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전투에 초점을 맞추던 전작들과 달리, 인간 찰리와 로봇 범블비의 유대 관계를 중심에 놓는다. 전투 시퀀스는 두어 차례에 불과하고 규모나 로봇 숫자도 전작보다 소박한 수준이다. <범블비>에서 찰리와 범블비가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1982)의 소년 엘리어트와 외계인 이티의 우정이 떠오른다. 마치 '트랜스포머'로 다시 만든 <이티>, 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DNA를 담은 '트랜스포머' 같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성장'이다. 찰리와 범블비는 닮은 구석이 많다. 둘은 외롭다. 또한, 기억하기를 거부하거나(찰리) 잃은(범블비) 존재다. 닫힌 상태였던 둘은 우정을 통해 마음을 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기억과 목소리를 되찾는 건 곧 자아의 획득이다.

극 중에서 영화 <조찬 클럽>(1985)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마지막엔 범블비가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단지 19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함이 아니다. 겉돌던 아이들이 마음을 터놓고 관계를 형성하며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다는 <조찬 클럽>처럼 <범블비>도 선언한다. 찰리와 범블비가 서로를 의지하며 내일로 전진한다고.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세 번째 키워드는 '여성'이다. 이전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여성은 조연이거나 시각적 소비에 머물렀다. <범블비>는 남성이 중심이 되었던 전작을 탈피하여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찰리는 남성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부딪히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다.

<범블비>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와 <고스트버스터즈>(2016)에 이어 여성이 중심에 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다.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씨네플레이'와 나눈 인터뷰에서 <코렐라인: 비밀의 문>을 제작할 적에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지원을 받고자 문을 두드렸으나 "여자 주인공은 애니메이션에서 있을 수 없다. 단, 요정이거나 공주라면 가능하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먼저 해결하면 다음 번엔 반응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범블비>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한 의미 있는 도전인 셈이다.

네 번째 키워드는 '눈'이다. 과거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숱한 로봇을 등장시켰지만, 그들에게선 어떤 생명력도 느껴지질 않았다. 감정을 제대로 묘사하는 장면 없이 오로지 전투 장면을 위한 CG로 소비되었을 따름이다. <범블비>는 다르다. 아마도 로봇 애니메이션의 걸작 <아이언 자이언트>(2000)에게 영감을 받은 듯 보이는 범블비의 '눈'엔 감정이 실려 있다. 범블비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표현하는 존재다. 영화는 범블비의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영화 <범블비>의 한 장면

▲ <범블비> 영화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섯 번째 키워드는 '1980년대'다. <범블비>의 시간적인 배경은 1987년이다. 왜 1980년대로 갔을까? 우선 <범블비>의 전개가 휴대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1980년대에 알맞다. 미드 <기묘한 이야기>가 일으킨 1980년대 복고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트랜스포머> 애니메이션은 처음으로 방송되었던 시기가 1984년임을 기억한다면 영화가 첫 '트랜스포머'의 시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범블비>는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문제 제기로 볼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줄곧 제작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형편없는 블록버스터를 만든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더 포스트>(2017)로 현재의 언론을 조명하고 <레디 플레이어 원>(2018)으로 현재의 인터넷을 다루었다. 이젠 <범블비>로 현재의 할리우드를 돌아본다. 그리고 '엠블린' 영화들과 <이티>를 기억하며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범블비>는 변신 로봇의 즐거움, 우정과 성장으로 써내려간 서사,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 1980년대 풍경과 근사한 사운드 트랙으로 프랜차이즈 팬들에게 향수와 새로움,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이런 리부트는 대환영이다. 25일 개봉.
범블비 트래비스 나이트 헤일리 스테인펠드 존 시나 피터 쿨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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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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