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꺼내놓기란 누구에게나 어렵고,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가족은 없다지만, 무릇 '가족사'란 내밀하고 복잡하며 구구절절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자식 입장에서는 가족의 모든 역사를 속속들이 다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가세가 기울게 된 사정'과 같은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소규모 건설업이라 불리는 '집 장사'로 중산층에 합류한 이 가족은 IMF 외환위기 이후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쉴 새 없이 '건물'이 올라가던 1980년대 도시개발의 붐은 가족에게 큰 부를 안겨줬지만, 가난이란 그보다 훨씬 강력하고 끈질긴 존재여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은 요원하다. 그러는 사이 엄마의 홈비디오 속 사랑받던 외동딸은 자라서 영화감독이 되었고, 자신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에 가족사를 담기로 한다.
 
그렇게 과거를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감독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가족사가 한국 경제사와 긴밀하게 닿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는 스스로도 구질구질해서 내내 도망치려 애썼던 '가족'을 굳이 카메라에 담고 영화로까지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버블 패밀리>는 '아파트 키드'로 자란 한 청년이 자신의 가족을 '버블 패밀리'로 명명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부동산'으로 연결된 가족사 
 
 영화 <버블 패밀리> 포스터

영화 <버블 패밀리> 포스터 ⓒ 무브먼트

 
이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단연 '부동산'이다. 가정 경제가 망하기 전이나 후나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과거 부동산 호황기의 단물을 맛봤던 부모는 '거품'이 사라진 지금도 재기를 꿈꾸며 여전히 부동산에 집착한다. 딸의 눈에는 월세에 허덕이면서도 기어코 강남땅을 벗어나지 않는 부모가 답답할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를 향한 모든 욕망이 집중되는 '강남'은 부모에게도 (실현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부동산 한 방' 꿈을 이루어 줄 마지막 희망인 것이다.
 
부동산으로 흥하고 부동산으로 망한 이 가족이 살 궁리를 위해 기대는 곳은 결국 다시 "부동산"이다.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엄마는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싶어 하고(물론 돈은 없다), 아빠는 개발 계획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일쑤다. 딸은 이런 부모를 도통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막상 아빠의 빚을 알게 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모 명의의 땅을 찾아본다.
 
또, 엄마가 사둔 땅을 두고도 "내 학비나 내주지"라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언젠가 개발되면 땅값이 오를 거라는 엄마의 말에 내심 기대한다. 그런 스스로를 보며 자신도 그렇게 원망했던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딸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발 딛고 있는 이 땅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시선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컷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컷 ⓒ 무브먼트

 
영화는 엄마와 감독 자신을 통해 그동안 한국 경제사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을 중요한 주체로 소환한다. 또한, 엄마가 찍었던 홈비디오와 딸의 촬영으로 각각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엄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시선을 드러낸다. 이는 그 자체로 한국 경제사를 해석하는 특별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사실 이 가정의 실질적인 가장은 '아빠'가 아닌 '엄마'였다. 아빠가 울산의 화학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당시 처음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던 쪽은 엄마였고, 가세가 기운 후에도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아빠의 빚도 대신 갚아왔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아빠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카메라의 시선은 촬영 전까지 5년 동안 연락도 안 하고 지냈을 정도로 멀어진 부녀의 심리적 거리감이 반영되어 있다. 아빠는 딸의 영화 제작비를 투자금으로 쓰자고 하는가 하면 자신의 빚에 대해서는 "신경 쓸 거 없다"며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아빠의 모습은 한국 경제가 그동안 강력하게 신봉해 온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신화를 무너뜨린다.
 
딸이자 감독은 이 지점을 포착해내면서 자신의 가족사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확장해 나간다. 박정희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정부의 도시개발 정책이 한 가족에게 미쳤던 영향을 낱낱이 보여줌으로써 과거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했던 '버블경제'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여성 감독이 자신의 사적 경험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때 흔히 받는 비판을 영리하게 비껴간다(물론 그와는 별개로 이 비판의 유효성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큐가 왜 '사적'이면 안 되며, 이런 비판은 유독 '여성 감독'들에게만 제기되는지).
 
청년 세대의 눈으로 본 '집'의 의미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컷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컷 ⓒ 무브먼트

 
영화는 중간중간 서로를 향한 가족들의 날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애써 '화목한 가족'으로의 포장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딸은 부모를 서서히 이해해 나간다. 가족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강력한 '구조'가 있었고, 이 구조는 현재 청년 세대인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경험 차이를 생각한다면 '부동산'을 바라보는 부모와 딸의 시선 차이는 어쩌면 당연했다. 평생을 일해도 내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다는 것은 금수저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남의 일일 뿐이다. 부모가 빌라에서 나와 다른 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오자 "로또 말고 희망이 있냐"던 딸의 말은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부동산' 환상을 좆으며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많은 가족들이 실은 모두가 '버블 패밀리'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다 '거품'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욕망까지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는다. 거품이 사라진 도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이 강렬한 욕망들은 어디선가 또 다른 거품이 되어 다시 '버블 패밀리'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건 '부동산' 그 자체가 아니라 부동산의 탈을 쓴 욕망의 허상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콘텐츠 리뷰 미디어 <치키>(http://cheeky.co.kr/2618)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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