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개최한다. 자주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리그에서 거액을 버는 프로 선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마추어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과 성적을 선수 생활의 최대 목표로 삼곤 한다. 하지만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올림픽만 바라보며 선수 생활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역별로, 국가별로, 대륙별로 크고 작은 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스포츠 팬들에게 2018년은 1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은 특별한 한 해였다. 한국에서 30년 만에 개최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6월에는 러시아에서 단일 종목 최대 이벤트로 불리는 FIFA 월드컵이 열렸으며 8월에는 44억 아시아인들의 축제인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물론 해마다 열리는 각 종목의 대형 이벤트들도 스포츠 팬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대형 이벤트들이 많았던 만큼 팬들을 웃기고 감동시킨 일도 많았다. 겨울에는 그 동안 다소 낯설었던 동계스포츠의 매력에 빠졌고 여름에는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구기 종목 축구가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가을에는 한국 최고의 투수가 꿈의 무대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과연 2018년 한 해 동안 스포츠 팬들을 웃기고 열광시켰던 최고의 순간은 어떤 게 있었을까.

스케이트장 밖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한국의 동계 스포츠
 
투구하는 김경애 선수 동계올림픽 첫 출전한 한국 여자 컬링팀이 25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결승전에서 3대 8로 스웨덴에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김경애 선수가 스톤을 투구하고 있다.

▲ 투구하는 김경애 선수 동계올림픽 첫 출전한 한국 여자 컬링팀이 25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결승전에서 3대 8로 스웨덴에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김경애 선수가 스톤을 투구하고 있다. ⓒ 이희훈

 
한국은 지난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와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한국은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트, 그리고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낸 피겨 스케이팅까지 단 3종목에서만 메달을 따내며 '쏠림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다양한 종목에 투자가 절실했다.

한국은 평창 올림픽을 대비해 취약 종목들에 외국인 지도자를 데려와 선진 기술을 도입했다. 국내 선수 발굴이 쉽지 않았던 아이스하키나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루지, 피겨스케이팅 아이스 댄스 같은 종목엔 해외 선수들을 귀화시키기도 했다.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은 한국은 8개 이상의 금메달로 종합 4위를 목표로 했다. 다양한 종목에 투자가 이뤄진 만큼 강세 종목에서만 선전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5개, 은8개, 동4개로 종합 7위(금메달 우선 기준)를 차지했다. 8개 이상의 금메달로 종합 순위 4위를 기대했던 당초 목표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은 한국의 스포츠 팬들에게 동계 올림픽의 다양한 종목들을 더욱 친숙하게 느끼게 해줬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대회였다. 실제로 한국은 역대 가장 많은 6개의 세부종목에서 메달을 수확했다.

1년 내내 눈이 오는 북유럽 국가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스켈레톤에서는 윤성빈이라는 천재 선수가 등장했고 MBC <무한도전>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다룬 봅슬레이도 은메달을 차지했다. 전국에 '영미 열풍'을 일으켰던 컬링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몇몇 종목은 올림픽이 끝난 후 지원이 급격히 줄어 들면서 다시 침체에 빠질 위기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온 국민을 열광하게 했던 컬링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11월 컬링연맹 김경두 전 회장대행과 김민정 감독으로부터 상습적으로 폭언을 듣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평창 올림픽은 한국이 동계 스포츠의 강국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이 함께 기뻐했던 한국의 독일 격파 이변
  
[월드컵] 선제골 넣는 한국! (카잔=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후반전 한국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한국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월드컵] 선제골 넣는 한국! (카잔=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후반전 한국 김영권의 슛이 골로 인정되자 한국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월드컵에서 독일은 시쳇말로 '깡패'였다. 19번 본선에 진출해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4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1954년 스위스월드컵 우승 이후 한 번도 8강 아래의 성적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물론 조별리그 탈락 같은 건 독일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탄탄한 조직력과 강한 힘, 여기에 세밀한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완벽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한 독일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러시아 월드컵 첫 경기에서 멕시코에게 덜미를 잡혔을 때도 독일은 조별리그 통과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두 번째 경기였던 스웨덴전에서 토니 크로스(레알 마드리드)가 극장골을 터트리며 극적으로 승리했고 마지막 상대는 F조에서 이미 2연패를 당한 최약체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은 한국전에서 악몽을 경험했다. 독일과 멕시코의 경기를 보며 '이 정도면 한국도 충분히 비벼볼 만 하다'던 박지성 해설위원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국은 조현우 골키퍼(대구FC)의 엄청난 선방 속에 독일의 파상 공세를 잘 막아냈고 독일은 그야말로 '때리다 지친' 상황에 몰리게 됐다. 결국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김영권(광저우 헝다)이 독일의 골망을 흔들며 선취골을 기록했다. 3분 후에는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가 나온 틈을 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터트렸다. 독일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에게 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순간이었다.

한국 덕분에 극적으로 16강 진출이 확정된 멕시코의 축구 팬들은 경기가 끝난 후 한국 대사관으로 몰려가 주한 멕시코 대사를 무등 태우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4년 전 독일에게 1-7로 패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브라질과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독일에게 발목을 잡혔던 잉글랜드의 축구 팬들도 독일의 침몰에 열광했다. 그만큼 '세계 축구의 지배자'였던 독일의 패배는 세계적으로 놀라운 뉴스였고 그 역사의 순간을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었다.

인맥 축구 논란 잠재운 김학범호의 '해피엔딩'
 
이승우 골골골!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에서 이승우가 첫 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손흥민 선수가 함께 기뻐하며 이승우 선수 뒤를 따르고 있다.

▲ 이승우 골골골!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 한국과 베트남의 경기에서 이승우가 첫 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손흥민 선수가 함께 기뻐하며 이승우 선수 뒤를 따르고 있다. ⓒ 연합뉴스

 
역대 최초로 월드컵 무대에서 독일을 이긴 아시아팀이 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손흥민과 조현우 등 월드컵 스타들은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 없었다. 1991년생 조현우와 1992년생 손흥민은 어느덧 20대 중반을 훌쩍 넘겼고 아직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출전했지만 8강에서 온두라스에게 0-1로 패하며 병역 혜택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손흥민을 비롯한 한국의 몇몇 젊은 선수들에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병역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지난 2월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김학범 감독은 손흥민을 비롯해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황희찬(함부르크)과 이승우(엘라스 베로나)를 모두 소집해 모을 수 있는 최고의 전력을 꾸렸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황의조(감바 오사카)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인맥 선발 논란이 나오는 등 과정이 결코 매끄럽진 않았다.

하지만 한국 아시안게임 축구 대표팀은 자카르타에서 실력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우며 그토록 기다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J리그에서 활약하며 국내 축구 팬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황의조는 7경기에서 두 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무려 9골을 터트렸고 손흥민은 1골 5도움으로 한국의 공격을 후방지원했다. 이승우 역시 이란과의 16강전 쐐기골에 이어 한일전으로 치러진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스타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아시안게임 이후 한국 축구의 인기와 기세가 급격히 올라갔다는 점이다. 한국은 아시안게임 이후 열린 6번의 평가전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국내에서 열린 4번의 평가전은 모두 매진될 정도로 축구 팬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주역이었던 황의조와 황인범(대전 시티즌), 김민재(전북 현대) 등은 A대표팀에서도 주전급으로 자리 잡으며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의 활약을 기대케 하고 있다.

'꿈의 무대' 월드시리즈 선발 마운드에 오른 코리안 몬스터
 
  2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진행된 2018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 류현진이 공을 던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진행된 2018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 류현진이 공을 던지고 있다. ⓒ EPA/연합뉴스

 
LA 에인절스의 외야수 마이크 트라웃은 현존하는 최고의 야구선수로 꼽힌다. 30개 이상의 홈런은 우습게 때려낼 수 있는 파워와 통산 타율 .307의 정확한 타격, 게다가 188cm 106kg의 거구임에도 2012년 도루왕(49개)에 올랐을 정도로 엄청난 주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2020년까지 30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이 보장돼 있지만 트라웃의 실력을 고려하면 오히려 적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그 대단한 트라웃도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팀 성적이다. 트라웃은 빅리그 데뷔 후 8년 동안 타율 .307 240홈런 648타점 793득점 189도루를 기록하고 있지만 정작 가을야구 경험은 단 한 번(2014년) 밖에 없다. 물론 월드시리즈에도 나가보지 못했다 에인절스는 트라웃의 맹활약에도 상대적으로 투수력이 약했고 이 때문에 지구 라이벌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적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LA다저스)은 행운을 타고 난 사나이다. 류현진이 빅리그에서 활약한 6년 동안 다저스는 한 번도 빠짐 없이 가을야구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류현진은 부상에 허덕이던 기간을 제외하면 꾸준히 가을야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고 선발 마운드에 오른 것은 류현진의 실력과 성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던 류현진은 올 시즌 사타구니 부상에도 7승3패 평균자책점 1.97로 대활약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꾸준히 선발로 등판했다. 그리고 류현진은 지난 10월 25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하며 한국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선발 마운드를 밟았다. 비록 불펜의 방화로 자책점이 4점으로 늘어나며 패전투수가 됐지만 류현진의 월드시리즈 선발 등판은 국내 야구팬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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