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폐들을 거침 없이 정조준했다.

2018년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폐들을 거침 없이 정조준했다. ⓒ MBC

 
미투, 아파트값 담합, 검찰 개혁, 1987년과 2017년 계엄문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

2018년 한 해 MBC < PD수첩 >이 주목한 주제들이다. < PD수첩 >은 연말 특집으로 12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봤다. 

지난 1년 동안 < PD수첩 >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폐를 정조준했다. 먼저 7월 24일 고 장자연씨 사건을 다루면서 관련 인물들의 얼굴과 실명을 세상에 알렸다. 

고 장씨가 불려나간 술접대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은 참으로 놀라웠다. 특히 문제의 술자리에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 경영진이 섞여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취재진은 후속 보도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 등을 지낸 권재진의 이름을 추가로 공개했다. 당연히 큰 파장이 일었다. 실명공개가 파장의 무게감을 더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실명을 거론함으로써 이 사건에 관계자들이 누구인지 보다 분명해졌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 분들이 좀 지난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분노하는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관련돼서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PD수첩' 홍세정PD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그야말로 역대급 추격전을 연출했다.

'PD수첩' 홍세정PD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그야말로 역대급 추격전을 연출했다. ⓒ MBC

 
홍세정 PD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추격전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인물이었다. 홍PD는 그에게 접근해 질문을 시도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은 'PD수첩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줄행랑쳤다. 홍PD도 뒤질세라 그를 뒤쫓는다. 그러면서 줄기차게 묻는다. 

"청와대와 뒷거래로 재판을 이용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임 전 차장은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극소수의 법관만 갈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에서 고위직에 오른 판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줄행랑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블랙코미디다. 

종교권력 성역 허문 < PD수첩 >

< PD수첩 >은 종교권력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 5월 1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조계종 설정 전 총무원장의 은처자·학력위조 의혹과 종단 내 권승들의 성폭력·도박 의혹등을 제기했다. 이어 10월 9일엔 장로교단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명성교회 800억 비자금 의혹을 파헤쳤다. 이 과정에서 경악스러운 일들이 차례차례 세상에 알려졌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조계종 호계원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경북 김천 직지사 주지로 있는 법등 스님은 수인·명인 자매 스님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았다. 또 조계종 수석부의장을 지냈던 장주 스님은 천년 고찰 불국사 경내에서 스님들이 도박판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더욱 놀라운 건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이 도박판 주인 노릇을 했다는 증언이다. 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 역시 도박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 PD수첩 > 제작진이 확인한 바 명성교회가 전국에 소유한 부동산은 23만9621㎡, 공시지가 1600억 원 규모다. 

< PD수첩 >이 조계종과 명성교회를 정조준한 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사이비 종교집단의 비리는 공중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나 JMS 정명석 교주 등이 그랬다. 그러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기성 종교의 비리를 건드린 건 흔치 않았다. 스캔들로 얼룩진 조계종과 '땅부자' 명성교회는 기성 종교의 타락을 드러내 주는 생생한 단면이었고,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존재의미를 묻게 했다. 

< PD수첩 >은 이밖에도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의혹을 고발해 영화 제작 현장 분위기를 바꿨다. 영화계 관계자는 방송 이후 바뀐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변화가 있죠. 일단 현장에서 교육들이 상시적으로 되고 있는 부분들이 있고 그렇다고 성폭력 건들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구나 하는 인식들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아직 의혹의 당사자인 김 감독이나 배우 조재현이 반성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몰고 왔음은 분명하다. 몇몇 스타 강사들이 아파트값을 부풀리고 있다는 정황을 고발하자, 국세청은 부동산 스타강사 21명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어 고 장자연씨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공기업·종교권력, 보도에도 모르쇠 

그러나 우리 사회는 바뀌는 듯 하면서도 잘 안 바뀌는 것 같다. 양승태 대법원이 저지른 사법농단 사태의 해결은 지지부진하기 그지없다. 폐쇄성을 고집하는 면에서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종교권력은 막상막하다. 방송 이후 이들은 오히려 적반하장식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난 9월 11일 < PD수첩 >은 '한국전력의 일회용 인간들'편을 통해 우리가 전기를 편하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임을 고발했다. 한국전력은 이 보도가 불쾌했는지, 하청업체에게 분풀이 중인 듯하다. 협력업체 B사장은 < PD수첩 >에 이렇게 말했다. 

"방송 이후에(촬영에 협조한) 그 지역은 그냥 아주 전멸이에요. 박살이에요. 돈도 안 주고 공사도 하나도 계약도 안 시켜주고 그런 상황이에요."
 
 'PD수첩'은 기성 종교의 타락상에 주목했다. 공중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기성 종교의 비리를 파헤친 건 이례적인 일이다.

'PD수첩'은 기성 종교의 타락상에 주목했다. 공중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기성 종교의 비리를 파헤친 건 이례적인 일이다. ⓒ MBC

  
설정 전 총무원장은 보도 이후 MBC가 불교파괴 행위를 하고 있다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신도들의 개혁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총무원장에서 물러났다. 

반면 성폭력 의혹을 받는 법등 스님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또 조계종 비리의 원천으로 지목 받고 있는 자승 전 총무원장은 동안거를 빌미로 은신해 있는 와중이다. 

명성교회는 방송을 전후해 신도들 내부결속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김삼환 원로목사로부터 교회를 물려받은 김하나 목사는 신도들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마귀 사탄이 절대로 우리 교회를 틈타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종교권력이 내부 자정보다는 결속에 더 급급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외부의 견제를 받지 않고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 등 공기업도 예외는 아니겠으나, 적어도 불통과 폐쇄성에 관한 한 종교권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왜 그럴까? 변상욱 CBS 대기자의 말에서 답을 찾아본다.

"교회는 자기 교인들만 자기를 믿어주고 따르면 돼요. 다른 교회 교인들이 뭐라고 욕을 하든지 일반 사회에 여론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이 없어요. 자기 교인들만 자기를 믿어주고 '아멘 아멘' 외치면서 따르고 헌금만 제대로 해주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지난 9월 < PD수첩 >이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고발한 지 3개월이 지나 태안서부발전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참변을 당했다. 진행자인 한학수 PD는 이 사건을 언급하며,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다. 

"도대체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기에 이런 참담한 일이 계속되는 걸까요? 탐욕스런 기업, 무책임한 정부 그리고 위험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회 시스템. 어쩌면 우리 또한 이 모든 것을 방관한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볼 때입니다.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남긴 숙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합니다." 
종교권력 명성교회 조계종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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