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등 따스하고 세련된 곡들로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 임현정. 모든 곡을 혼자 작사-작곡-편곡하고 프로듀싱까지하는 독보적인 음악성으로 대중에 좋은 곡들을 선물해왔다. 그런 그를 지난 11년 동안 볼 수 없었다.

긴 공백을 깨고 임현정은 올해 4월 돌아왔다. 무려 11년 만이었다. 가요계로 돌아온 후에는 활발한 음악행보를 보이고 있다. 4월 컴백 후 9월에는 오랜 친분의 가수 전인권과 듀엣으로 2집 수록곡 '내가 지금껏'을 리메이크했고, 10월에는 1999년에 발매한 2집 <가위손> 리마스터 앨범을 내절놓았다. 그리고 지난 15일에는 신곡 'God Bless You'를 발표했다.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깊은 울림의 이유는 그의 음악과 삶이 별개가 아니란 데 있었는데,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소공동에서 임현정을 만나 이야기 나눴다.

11년만의 복귀... 절망과 사랑 안에서의 시간들
   
임현정 가수 임현정이 새 싱글 'God Bless You'를 발표했다.

▲ 임현정 가수 임현정이 새 싱글 'God Bless You'를 발표했다. ⓒ 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 11년 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았는데 그렇다고 100% 건강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정권도 바뀌고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시점에서 자살도 많았고 뒤숭숭했다. 개인사적으로 힘든 일도 겹쳐서 심적으로 굉장한 압박감을 느꼈다. 스트레스로 몸이 안 좋아졌는데 어느 순간 숨이 안 쉬어지고 머리가 저려서 병원에 갔다. 그렇게 2012년쯤 심장이 좋지 않아서 몸을 못 움직일 정도가 됐고 휠체어로 생활했는데 38kg까지 빠졌다."

- 그렇게 길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2018년 다시 음악을 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11년 동안 일상에서 곡을 써왔고 음악은 늘 해왔다. 음악을 다시 해서 삶의 활력이 생긴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이 활력이다. '다시 음악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럴 때 마음이 뭉클하더라."

- 올해 컴백한 후에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몸이 좀 좋아진) 2017년부터 계속 녹음하고 있었다. 내년 3월에는 싱글앨범이 하나 또 나오고, 내년 중으로 6곡정도 수록한 EP앨범도 낼 예정이다. 내년에는 곡 작업에 총력을 다할 거다. 정규앨범도 그 다음해쯤 발표할 생각이다."

- 11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음악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대한 편성을 적게 하려고 한다. 꾸미지 않고 힘을 빼려고 한다. 어쿠스틱 악기로 계속 하고 싶고, 편곡을 점점 더 자연에 가깝게 하려고 한다. 그런 게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음악을 하고 싶다."

- 이번 신곡 'God Bless You' 가사가 인상적이더라. 절망 속에 있지만 사실은 사랑 속에 있었고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가사는 개인의 경험에서 묻어난 것인지.
"생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쓴 곡이다. 2015년쯤이었던 것 같다. 가사 속의 God은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아니고, 어딘가 창조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쓴 거다. 우주 자체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사에서 하고 싶은 말은, 두려운 것도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공포를 안고 있는데 '나는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을 거야' 하면 오히려 큰 압력이 된다. 충분히 두려워하는 것이 낫다." 

- 절망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신을 느꼈는지.
"그때 엘리자베스 퀴블러스 의학박사가 쓴 임사체험 책을 10번도 더 읽었고 칼 융의 책들도 많이 읽었다. 병원에 있을 때 너무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느낀 게... (지금) 살아있잖아, 라는 거다. 너무 고통스럽고 심장이 덜컹거리고 잠을 한 숨도 못자고 내일 아침에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공포가 오고, 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게 될 거란 절대 고독의 시간이었다.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나와 다른 고통이고 그런 데서 오는 절대 고독과 외로움이 심했다. 그럴 때 순간순간 기도했는데 고통, 고독, 외로움, 그리고 사랑을 동시에 느꼈다.

이 모든 걸 느끼고 있다는 건 많은 걸 하고 있다는 것임을 알게 됐다. 고통스럽고 고독하고 외롭다고 느낀 것이 고통도 느낄 수 '있고', 고독도 느낄 수 '있고', 외로움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랑 속에 있더라. 그런 상황 속에서도 굉장히 많은 걸 할 수 있는 거더라. 어떤 상황이든 내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됐다. 거기서 희망을 봤고 가사를 썼다. 신성이 늘 있다고 느꼈다. 나의 내면의 신성이, 절대적인 신성이 모든 것을 내게 준 것이다. 나의 일부는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쪽에선 빛나는 게 있었다." 

수용하는 삶
 
임현정 가수 임현정이 새 싱글 'God Bless You'를 발표했다.

▲ 임현정 지난 12일 오후 서울 소공동에서 임현정을 만나 인터뷰했다. ⓒ 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 11년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그 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원래의 나로 돌아가게 해준 시간, 천성으로 돌아가게 해준 시간이었다. 사회화와 교육화로 병든 내가 원래의 건강하게 태어난 나로 돌아갔다."

- 나만이 겪어낸 그 특별한 경험이 지금의 임현정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단순화 됐다. '어차피 죽는 거다, 죽는 게 두려움이 아닌 것이다'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산다. 음악할 때는 세밀하게 작업하지만 삶은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 

- 단순화가 주는 것은 무엇일까.
"핵심을 드러내게 해주는 것 같다. 무엇이든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음악 작업할 때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는지.
"예전에는 노래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다. 곡이 나올 때, 물론 내가 쓴 노래긴 하지만 '이건 내 결과물이야' 하는 애착의 마음이 지금은 별로 없다. 마치 세상에 있는 큰 건물처럼 누군가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것처럼, 내 노래 역시 세상에 던져진 자산 같은 것이라고 본다. 내가 만들었지만 그걸 듣는 누군가에겐 나와 다른 의미의 노래고, 그건 그 사람의 노래다. 내가 죽고 나면 그 노래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곡이다."

- 20대 때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많이 고통 받았다고 했는데, 고통은 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20대의 고통과 지금의 고통은 어떻게 다르고, 그때 고통을 대하는 태도와 지금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예전에는 사실 분노가 끓었다. 한국 사회를 보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마찰도 있었고.. 당시 기성세대가 권력층이었다. 부모가 정해진 대로 살게 되는 상황 속에서 기득권에 대한 불만이 반골기질로 드러났던 것 같다. 무엇이든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왜요?' 하는 면이 내게 있었다. 그런 질문을 싫어하더라. 그게 분노가 되더라. 그땐 엄청난 분노도 음악으로 풀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렇다고 그때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거라 보진 않는다. 다만, 그때는 내게 상처가 되는 걸 잘라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사람이든 환경이든 조건이든 그걸 정리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 지금은 아픈 게 완전히 나은 건지.
"그런 건 아니지만 몸이 좋아져서 이렇게 활동하고 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란 말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나보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순 없더라." 

-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랑. 만약 환생이란 게 있다면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그렇게 생을 거듭하며 사랑이 커지면서 진화하는 형태일 거라 생각한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을 '받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훨씬 더 기쁘다. 삶은 삶 자체로 중요하다. 매 순간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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